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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철의 다시 만난 미술-모지스와 루소가 전하는 위로

by 진순희

"늦게 핀 꽃이 더 오래 향기롭다"


– 모지스와 루소가 전하는 위로, -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정우철의 다시 만난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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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이 어머니!
“봄에 피는 꽃도 있지만, 겨울에 피는 꽃도 있어요.
우리 채원이는 어쩌면 늦가을에 피는 꽃일지 몰라요.”


학부모 상담을 하며 제가 자주 전하는 말입니다. 조급해하는 어머니들 앞에서 저는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어떤 꽃은 서둘러 피지만, 어떤 꽃은 기다림 속에서 더 깊고 진한 향기를 머금고 피어나니까요.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정우철의 다시 만난 미술』은 그런 이야기로 가득한 책입니다.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사실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중에서도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삶에 대해 말해줍니다.



52-14_GrandmaMoses-OldCheckeredHouse_front.png?type=w1 출처: 〈1853년의 옛 체커드 하우스〉(1945–46), 그랜마 모지스소장: 넬슨 앳킨스 미술관 (The Nelson-Atkins Museum of Art), 캔자스시티



모지스 할머니, 붓을 든 인생의 두 번째 봄



애나 메리 모지스.

우리는 그녀를 '모지스 할머니'라 부릅니다. 그녀는 농장일과 아이들 돌보기에 한평생을 바치다, 70세가 훌쩍 넘어서 처음 붓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며, 인생의 놀라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그림 실력이 멋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멋졌던 모지스의 그림은, 그녀가 살아낸 고된 삶을 따뜻한 추억으로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가난했고, 고생했고, 예술과는 거리가 멀던 삶이었지요.

하지만 그녀는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그것들을 화폭 위의 따뜻한 농촌 풍경으로 그려냈습니다. 눈 덮인 들판, 연기 피어오르는 굴뚝,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 겨울 장면들. 모지스의 그림은 마치 기억의 이불처럼, 우리를 포근히 감싸줍니다.


%EC%95%A0%EB%82%98_%EB%A9%94%EB%A6%AC_%EB%A1%9C%EB%B2%84%ED%8A%B8%EC%8A%A8_%EB%AA%A8%EC%A7%80%EC%8A%A4_%E4%BD%9C_%E2%80%98%EB%A7%88%EC%9D%84%EC%B6%95%EC%A0%9C(1950).jpg?type=w1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의 〈Country Fair〉 (1950), 출처: 2009년 소더비(Sotheby’s)경매에서 1,082,5000 USD에 낙찰



‘좀더 젊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모지스 할머니는 삶으로 말합니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아래의 두 그림은 국민 할머니 화가라 불리는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 의 작품입니다. 〈마을 축제〉(1950)와 〈설탕 졸이기〉(1944)는 그녀 특유의 순박하고 정겨운 농촌 풍경을 담아낸 대표작으로, 모두 Sotheby’s 경매에 출품된 기록이 있는 작품입니다. 참고로, 〈마을 축제〉는 2009년 경매에서 100만 달러 이상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1944%EB%85%84_Sugaring_Off_%EC%B6%9C%EC%B2%98__Sotheby's.jpg?type=w1 〈Sugaring Off〉_설탕 졸이기〉(1944) –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Grandma Moses), Sotheby’s 경매 기록



출처: [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 1904~1905, 오랑주리미술관



루소, 배운 적 없기에 더 빛났던 예술가


앙리 루소 역시 ‘배우지 않았기에 더 특별했던’ 화가입니다. 세관원으로 일하며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열대우림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상상화를 그리고, 조롱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추지 않았기에 루소는 끝끝내 ‘꿈을 꾸는 화가’로 남았습니다.

배우지 않았기에, 남들과 같지 않았기에, 오히려 루소만의 색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루소는 피카소를 제외한 당대 예술가들로부터 오랜 조롱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의 그림은 ‘순수 예술’의 상징으로 재평가되었죠.


%EC%BA%A1%EC%B2%98.11PNG.PNG?type=w1 출처: [잠자는 집시], 1897, 뉴욕현대미술관


그의 대표작 [잠자는 집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달빛 아래, 한 여인이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 있습니다. 만돌린과 물병은 그녀 곁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그녀의 옆에는 사자가 다가와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자의 눈빛은 놀라울 만큼 온순하고 조용합니다. 전체 장면은 꿈결처럼 이상하면서도, 따뜻한 평화를 전합니다. 그건 아마, 루소의 꿈이 그림으로 전염되었기 때문일지도요.


%EC%BA%A1%EC%B2%9813.PNG?type=w1 출처: [꿈], 1910, 뉴욕현대미술관


늦게 피는 인생도 충분히 찬란하다


우리는 흔히 ‘빨리’ 피는 것에 익숙합니다. 빨리 배우고, 빨리 성취하고, 빨리 보여주어야 인정받는 세상 속에서 ‘늦게 핀 꽃’은 때때로 외면당하곤 하죠.


하지만 모지스와 루소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EC%BA%A1%EC%B2%9812.PNG?type=w1 출처: 앙리 루소의 자화상, 1903, 피카소미술관


“꽃은 각자의 계절에 핀다”라고요.
그리고 “늦게 핀 꽃은 오히려 더
오래 향기롭다”고요.


정우철 도슨트는 이 책에서 말합니다.

그림은 예술이기 전에 ‘삶의 기록’이고, 화가는 예술가이기 전에 ‘견뎌낸 사람들’이라고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삶에도 아직 펼쳐지지 않은 계절이 남아 있음을 조용히 깨닫게 됩니다.


“나는 어떤 계절에 피는 사람일까?”그 질문이, 어느 순간 마음속에 조용히 피어납니다.

예술은 말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괜찮아.” 이 책은 그렇게 말해줍니다. 당신이 봄에 피는 꽃이든, 겨울 끝에 피어나는 꽃이든, 꽃은 결국 피어나게 되어 있다고요.


그리고 그 향기는,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퍼져나갈 수 있다고요.


01.27455376.4.jpg?type=w1 출처: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 1891년, 런던내셔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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