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니, 접수를 하고 대기를 하면서 자신의 증상을 글로 쓴다. 진료실에서 그간의 병력을 구구절절 이야기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니 미리 글로 써보는 거다. 그동안 편두통 병력을 차분하게 써 내려갔다. 얼마 동안 아팠고, 어떤 약을 복용했는지를. 생활 습관은 어떤지. 어떨 때 두통이 나타나는지 등등. 나는 의사 선생님과 글로 소통하는 이 방식이 좋았지만, 엄마에게 이 방식을 이야기하니 대기실에 앉아서 조리 있게 쓰는 게 자신 없다고 했다. 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우, 병원에 문의하고 미리 집에서 적은 후 제출해도 괜찮을 거 같다.
원장님과 첫 대면. 나는 원장님을 보자마자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마음이 들었는데, 바로 진료실에 앉아서 진료를 본 후 다음 환자를 맞기 위해 복도로 직접 나와서 환자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들어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우선, 이 사람은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있지 않고, 이렇게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자기 건강관리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길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믿음 같은 거였다. 그리고 소형 마이크를 착용하고 말해서 말하는 게 잘 들리는 것도 활동적으로 보여서 좋았다. 하나 덧붙이면 진료 내용을 듣고 금방 잊어버릴 수 있고, 나중에 궁금한 게 생길 수도 있으니 일단 녹음하라고 먼저 권유한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간호사가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잘 켜두었는지까지 살펴준다.
원장님의 첫 반응은 "매우 큰 걱정"이었다. 왜 이제 왔냐고. 매일 진통제를 먹은 기록을 보고 이렇게 먹으면 큰일 난다고 했다. 무엇보다 내 나이대 이런 편두통은 뇌졸중의 주요 전조 증상이라고까지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팠으면서 제대로 된 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것도 염려했다. 기록지를 꼼꼼히 보더니 내가 쓴 문장 중에 "일을 집중해서 한다"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2년 동안 보도자료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해보니 짧은 순간 폭발적으로 집중력을 끌어올려서 사업 내용을 빠르게 파악해야 하고, 매일 1~2개 때론 3개씩 보도자료 마감을 해야 한다. 초창기에는 마감의 압박이 너무 컸다. 과거대상포진에 걸렸던 것도 그래서였을까. 지금은 잘 컨트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매일 마감하는 일은 분명 뇌에 부담스러운 작용일 것 같았다. 두통도, 마감도, 내가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 하나도 없는 거 같은 자괴감이 들었다.
우선적으로 받은 검사는 1) 뇌혈류 초음파 검사(이게 보험이 안 돼서 좀 비싸다) 2) 몸의 체열을 감지해 통증 및 신경 손상을 파악하고, 자율신경계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적외선체열검사 3) 안구의 움직임을 비디오로 촬영해 뇌신경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비디오안진검사 4) 전기 자극을 통해 신경 상태를 확인하는 신경전도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뇌혈류양은 정상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사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해서 그리 놀랍지 않았다. 내가 놀란 건 자율신경계 검사 결과였다. 내 머리와 상반신은 교감 신경이 항진되어 있어서 온통 시뻘겋게 나왔다. 이런 경우 정상적인 체온 조절도 힘들 거라고 했다. 그래서 갑자기 춥고 갑자기 덥고, 이런 무더위에도 땀배출이 잘 안 됐던 걸까. 더운 공기에 조금만 오래 있어도 머리가 아픈 것도 체온 조절이 전혀 안 돼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몸이 잘 붓고, 늘 피곤했고, 불안 초초했던 걸까. 그래서 늘 어깨가 아프고 아침마다 목이 쉬었던 걸까.
자율신경기능장애는 당연히 두통으로 연결된다. 계속 예민한 신경이 내 온몸을 지배한 것이다. 화면 속 붉은 몸은 내가 나를 얼마나 혹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안 좋다. 뇌혈류 이상이 혈관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뇌 초음파를 찍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어진 원장님의 말에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