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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Sep 22. 2024

편두통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뇌 질환이다

편두통 치료 일지(3)

“입원이요?”

“좀 갑작스럽긴 할 텐데요. 추석 연휴에는 병원이 쉬니까 오늘이라도 입원해서 지금부터 집중적으로 치료합니다.”


추석 연휴를 앞둔 금요일 오전이었다. 전에 편두통 환자의 이야기를 담은 얇은 책에서 입원 치료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진통제 과용으로 유발된 두통 때문에 결국 대학병원에서 일주일 간 입원했다. 그 상황을 읽었을 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면 입원을 해야 할까’라고 먼저 생각했고, 만약에 나에게도 그런 상황이 오면 그래도 입원 치료라는 방법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런데 아주 먼 미래, 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 지금, 일어난 것이다.


“네, 알겠어요. 그런데 제가 회사 일을 좀 마무리 짓고 와야 해서요. 오후에 다시 와도 될까요.”     


먼저 입원 수속을 밟고, 외출 허가를 받았다. 회사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말하면 뭐라고 할까. 앞서 언급한 책의 저자의 친구들과 지인들도 편두통으로 입원까지 하냐며 놀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입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한 임팩트가 있다. 얼마나 아프면 입원까지 해야할까. 하지만 편두통도 그렇게 해? 두통은 진통제 먹고 좀 쉬면 가라앉는 거 아닌가, 이게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편두통은 엄연한 ‘뇌 질환’이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편두통 환자는 ‘편두통에 민감한 뇌, 뇌 신경, 뇌 혈관’을 가지고 있다. 뇌막 근처에 있는 삼차 신경은 자극을 받으면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데, 그중 CGRP(calcitonin gene related peptide,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티드)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CGRP는 근처의 혈관을 확장해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이 신호를 통증 관련 신경이 포착해 중추 방향으로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뇌가 욱신거리는 두통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작용 기제는 최근에야 밝혀졌고, 그로 인한 치료 약물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전까지 편두통 환자는 빛과 소리를 차단한 어둠 속에서 맥박성 통증과 메스꺼움을 참고 통증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이지만, 아직도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10년이 걸릴 정도로 대부분은 제대로 된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아프면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큰 병원으로 가자! 나 역시 정확한 검사 없이 동네 병원들을 전전하며 통증을 그저 참기만 한 바보였다!)     


편두통 치료 방법은 크게 급성기 치료와 예방 치료로 나뉜다. 급성기 치료는 두통이 생겼을 때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는 것이 목표다. 일반 두통약은 아무리 먹어도 편두통에 들지 않는다. 편두통에 작용하는 급성기 치료 약물을 먹어야 통증을 다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약을 많이 먹으면, 만성 편두통이 있어 복용에 제한을 둔다. 나는 한 달에 7~8회를 먹다가 15회까지 넘어간 만성 편두통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진료를 통해 한 달 7~8회도 적정선이 아니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됐다. 한 달 4회가 관리 범위다. 만약 진통제를 이렇게 많이 먹어야 하는 지경이라면, 바로 예방 치료로 넘어가야 한다.     


예방 치료는 편두통 발작의 빈도, 강도, 지속시간 및 급성기 약물의 과도한 사용을 줄임으로써 궁극적으로 편두통을 조절하는 치료다. 예방약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약은 ‘혈관 확장제’라고 쓰여 있는데, 혈관 수축을 억제하고 뇌 혈류량을 조절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아조비, 앰겔러티 주사라는 이름의 신약이 나왔다. 주사제는 매일 맞지 않고 월별로 주사한다. 예방 백신이라고 불리는 약물로 앞서 말한 유발 물질인 CGRP 작용을 억제해 두통을 사전 차단한다.      


이런 내용을 사무실에 가서 어떻게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내 상황을 알리고, 내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두통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어쩌면 편두통을 앓는 사람들이 자신이 환자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그래서 이 증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아서 생긴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입원해야 해서 조퇴를 할게요.”

“헉, 입원?”

“네, MRI 검사도 해야 하고, 링거로 약물을 투여해서 지금 진통제 과용으로 인한 두통을 끊어내야 해요.”     


다행히 팀원들은 모두 이해해 주는 분위기였고, 남은 일은 걱정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무엇보다 사무실에서 제일 높은 상사인 실장님이 편두통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본인이 편두통을 앓았었고, 큰아들도 자주 아픈 모양이다.(역시 유전이다...) 일반 두통약이 안 듣는다는 것도, 그 특유의 구역감조차 다 알고 있었다. 평소 나랑 실장님의 기질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특유의 예민한 기질을 알아본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님은 어렸을 때 펜잘을 먹어가면서 참았고 지금은 편두통이 관리되는 모양인데, 자제분은 여전히 한 번 앓으면 크게 아프다는 걱정도 털어놓았다. 실장님과 일한 세월이 5년인데, 바로 옆에 편두통 환자가 있는지 몰랐다니, 진단받는 데 10년 걸린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편두통 환자들이여! 다시 강조하지만 병원을 가자!)     


병원에 복귀하고, 환자복을 갈아입고 바로 엑스레이와 뇌‧뇌혈관 MRI를 찍었다. 끝나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도수 치료를 받으러 가란다. 입원하기 전에 사람의 몸과 얼굴 그림을 주며 아픈 곳을 표시하라고 하기에, 뒷목, 쇄골, 겨드랑이, 날개뼈 쪽이 아프다고 표시해서 그런 것 같았다. 도수 치료라고 해서 막 목을 우두두두 꺾는 그런 무서운 걸 할 줄 알았는데, 정말 시원한 마사지를 해줬다. 뒷목과 어깨 쪽이 한결 편안했다.


도수 치료를 하는 중에 남편이 속옷과 양말 같은 짐을 싸서 왔다. 입원실은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아니면 보호자가 들어오는 게 금지되어 있었다. 로비에서 가방을 건네받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아쉽게 헤어졌다. 남편과 헤어지고 엄마와 통화했다. 엄마는 애써 침착하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너무 걱정하는 눈치였다. 저녁을 먹고 링거 주사를 맞았다. 한 번에 3개의 약물이 혈관으로 흘러들어왔다. 남편은 동부간선도로의 퇴근길 차량 정체에 막혀 2시간 가까이 도로에 홀로 갇혀 있었고,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홀로 주사를 맞았다. 우리의 앞날은 괜찮을까. 미세하게 떨리던 엄마 목소리가 떠올랐고, 괜히 눈물이 조금 났다.     



참고자료

책 :  <편두통, 한없이 예민한 나의 친구> 민윤, 궁리출판

블로그 : 김호정 원장님의 뇌 이야기 https://blog.naver.com/dr_brain_khj

기사 : 문희수 교수, 편두통은 예방치료가 필요한 뇌질환, ‘CGRP 레벨 조절’이 핵심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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