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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Sep 29. 2024

일 쉬면 가만히 있을 거 같아요?

편두통 치료 일지(4)

아침 6시. 병실에 불이 켜진다. 비몽사몽한 내 곁으로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혈압을 재고, 피검사를 위해 피를 뽑는다. 7시가 되자 아침 식사가 나왔다. 흔히 병원 밥이 맛없어 잘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병원 밥이 너무 맛있어서 깨끗이 비웠다. 8시에는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본격적인 진료 시간 전에 입원 환자들을 이렇게 개별적으로 면담하는 것 같았다. 


어제 찍은 뇌 MRI 검사 결과, 다행히 혈관에 이상은 없었다. 다만 나이에 비해 뇌의 노화가 빠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눈에도 쪼그라든 뇌의 표면에 빈 공간이 많이 보였다. 뇌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생각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뇌를 비워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늘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읽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의 작은 행동과 말에 즉각 반응하고, 잠들기 직전까지 책을 읽었다. 명상에서 말하는 생각을 비우라는 주문은 매번 실패했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골반의 틀어짐과 척추 측만이 심각해 목과 허리 디스크를 확인하기 위한 MRI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골반과 척추 문제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선천적인 문제였다. 나는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짧게 태어났다. 성장이 끝난 지금, 양쪽 다리 길이는 약 3cm 차이가 나고, 왼발은 오른발보다 2cm 정도 작다. 처음부터 다리 길이가 다르니 당연히 골반도 틀어져 버렸다고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허리 디스크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오히려 골반이 틀어져서 다리 길이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 같긴 했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다리 길이를 재는 검사를 받았고, 발 크기도 다른 것을 봐서 뼈 길이 자체가 다른 게 맞는 것 같긴 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오전 검사를 받고 수액을 맞았다. 오후 2시쯤 토요일 오전 진료를 끝마친 의사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목과 허리 디스크가 있었고, 특히 목 디스크가 심하며 쇄골 수평도 안정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목 디스크가 지속적인 뒷목 통증을 유발한 것 같았다. 그러나 편두통은 단순히 목 디스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양한 통증 유발 요소들이 있고, 결국 그 자극들이 뇌신경을 건드리는 게 문제였다. 의사 선생님은 편두통 예방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목 디스크 치료도 병행하자고 하셨다. 지금 먹고 있는 급성기 편두통 약인 크래밍은 전신 혈관까지 영향을 미치며, 간과 신장에도 좋지 않으니 뇌혈관만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약으로 바꿔주셨다. 만약 예방약이 효과가 없으면 편두통 유발 신경전달물질인 CGRP를 차단하는 주사제 치료까지 고려해 보자고 했다. 편두통은 완치가 어렵다는 말만 들었던 나는 어느 정도 치료 계획이 세워지자 약간 안심이 됐다.     


문득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나현 씨. 본인이 집중할 때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숨을 안 쉬는 거 알아요?”

엇, 내가 그랬나. 선생님 이야기를 엄청 집중해서 들었나 보다.

“그런데 그거 엄청 안 좋아요. 숨을 많이 쉬어야 해요. 제가 왜 마이크 차고 일하는 줄 알아요. 숨 쉬려고 그래요. 제 원래 목소리 들어볼래요?”


그러면서 마이크를 빼고 말하는 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게 원래 제 목소리 크기예요. 그런데 환자들한테 설명하고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 숨이 딸리잖아요. 그래서 마이크를 차는 거예요. 나현 씨도 숨을 참지 말고 쉬는 연습을 해야 해요.”

“네, 알겠어요.”

“그리고 지금 자율신경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하니까 그쪽으로 약을 쓸 건데요. 컴퓨터 화면 빛이 교감 신경을 자극하니까 블루라이트 차단하는 필름을 붙이면 좋을 거 같아요.”

“네.”


나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선생님, 저는 일을 좀 쉬어야 나을까요?”

“일 쉬면 가만히 있을 거 같죠? 안 그럴 걸요. 뭐 집에서 재테크니 뭐니 하면서 스스로를 못 살게 굴걸요. 여기 오는 대부분의 편두통 환자분들, 사회적 평판이 높은 분들이 많아요. 예민하고 책임감도 강하니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다가 몸 망가지는지 모른 거죠.”      


그제야 의사 선생님이 왜 숨을 쉬라고 하는지, 블루라이트를 차단하라는지, 수면 시간을 사수하라는지, 오전에 읽어보라고 준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치료 계획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을 사는 내 태도의 변화였다.

그 말인즉, 아프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대충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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