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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Aug 25. 2023

1. 이런 얘기는 좀 홍보 같은가

서점의 정다운 이웃들을 소개합니다

오프라인 서점 매니저로 일하는 것은 아시다시피,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서점에서 일하면 읽고 싶은 책 실컷 보겠다, 손님이 잘 안 오는 시간대에는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면 되겠다, 하고 싶은 일 해서 좋겠다는 식의 말을 제법 듣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것을 기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고 하지요. 특히 제가 일하는 서점은 이전 글에도 썼지만, 여타 서점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조금 더 할 일이 많습니다.


서점이 입점된 공간은 '브랜드 타운'의 성격을 지향하는 곳으로, 총 6개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각 건물에는 식당, 카페, 편집숍 등 다양한 브랜드가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또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어요. 저는 (어쩌다 보니) 이 브랜드 타운이 잘 형성되도록, 브랜드가 운영의 어려움 없이 성장을 이뤄내도록, 서로 협업할 수 있는 작업이 있다면 그들을 잇는 역할인 한편, 서점 전반적인 운영 업무와 판매, SNS 관리 등을 해내는 중입니다. 장황하게 썼지만 요약하자면, 1. 건물 관리 전반 2. 서점 운영 및 기획 전반 3. 판매 4. SNS 관리가 되겠네요.


사진과 같이 서점을 꾸미는 데 필요힌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 제가 해온 일을 얘기하면 지인들은 전부 "그 연봉받고 괜찮아?", "안 힘들어?"라고 물어오곤 해요. 여기에 "왜 계속 거기서 일해? 서점 일 하고 싶다며?"라고도 물어봅니다. 그때마다 아주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입사 초반에도 지금도 저는 제 위치를 명확히 모르겠습니다. 훗날 책방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서점 운영을 배우고자 들어온 곳인데 스스로를 북큐레이터라고 명명하기엔 전문성을 가지고 도서를 선정하는 것 같지도 않고. 서점 MD라고 하기엔 아직도 판매 데이터를 제대로 볼 줄도 모르고요. 데이터를 토대로 독자의 반응을 불러일으킬만한 행사, 프로모션을 진행한 경험도 없습니다. 반년 동안 그저 건물 관리인에 가까운 일만 한 것 같아서, 이대로 가다간 경험만 쌓고 경력은 안 쌓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직 준비를 하기도 했어요.


이런 갈팡질팡하는 저의 마음을 다잡아준 것은 서점의 이웃 브랜드들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서점을 방문해 주는 독자들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아닌 브랜드로 인해 다시 일할 에너지를 얻다니요. (제가 큐레이션 한 책과 글귀를 보며 '공간과 잘 어울리는 책 추천 문구다', '큐레이션이 정말 좋다'라고 말해주시는 고객 분들도, 함께 잘해나가자며 다독여주는 상사와 동료에게서도 물론 큰 힘을 얻습니다.)


내가 해내고자 한 일과 결이 다른 업무를 할 때, 때로는 뒤죽박죽 된 스케줄로 낮밤이 바뀌어 체력적으로 힘들 때.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머리를 들 때마다,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이웃 브랜드 대표님 또는 담당자에게서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일이 많았습니다.


브랜드 타운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서점의 한 벽에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포스터를 붙여두었어요.


건강한 식품을 전하고 지구를 위한 문화를 형성하고자 비건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만들 결심을 했다는 대표님, 자연과 공존하는 일상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매장을 꾸려나가는 매니저, 좋은 제품과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는 브랜드 담당자... 그들이 다양하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저는 업무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이전과는 다르게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비전과 목표가 있는 자의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을 보면서, 서점을 방문하는 고객들 또한 저를 그렇게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멋지고 알차게 꾸며진 이웃 브랜드의 모습들!


매출 상승을 위한 전략을 세워가는 것 또한 곁에서 바라보며 절로 박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저 방법은 나중에 우리 서점에도 써먹야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지역 주민은 물론, 더욱 많은 대중을 불러 모을 전략이란 다각도로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걸 깨달은 경험 또한 브랜드를 통해서였어요.


약 10곳의 이웃 브랜드 중에는 스트레칭 센터가 있는데, 센터 매니저님의 회원을 끌어모으는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반상회'였는데요. 5월 5일 단오를 맞이한 기념으로, 옛 풍습처럼 우리 한 데 모여서 스트레칭을 하고, 차를 마시며 서로 친해지는 자리였습니다. 평소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한 곳에서 함께 수업을 들으며 에구구, 너무 아파요, 좀 시원한데요? 하는 소리를 내면서 얘기하니 더욱 친밀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동시에 노동으로 쌓인 피로가 풀려 '한번 센터 등록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는 브랜드의 성장 전략과 그동안 매장을 운영하며 생긴 고민들을 서로 나누었는데, 그 시간 또한 제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각각의 자리에서 이토록 치열하게, 간절하게 성장을 위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러한 브랜드 반상회를 계속 만들어 가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고층에 있어 상대적으로 고객 유입이 힘들지만, 문화공연, 독서모임 등을 꾸준히 열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티하우스, 특유의 위트로 아이스크림 라인업을 소개해 온/오프라인 팬층이 두터운 브랜드 등 주변을 둘러보며 항상 귀감을 얻곤 합니다. 언젠가는 서점에도 적용해 방문하는 손님이 많아지길 꿈꾸며, 그리하여 우리의 좋은 책과 이웃 브랜드를 대중에게 더욱 소개할 수 있길 바라며.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운 스트레칭 센터에서의 시간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다정한 마음들. 그 마음들이 나를 살렸습니다. 장마로 인해 누수가 생겨 전기가 나갔을 때, 더운 여름날 고객에게 시원한 물을 대접하고 싶은데 얼음을 얼릴 마땅한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 본사와 현장 간의 간극으로 고충을 토로할 때. 그때마다 지나친 투정일 수도 있는 행동을 기꺼이 들어주고 등을 토닥여주었습니다.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일이라면 선뜻 손을 내밀어주었어요. 오며 가며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서로 공유하고 최대한 들어준 그 순간들을 저는 기억하고 있고, 줄곧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웃 브랜드의 도움으로 해낸 얼음물 이벤트. 누전으로 불이 나갔을 때 선뜻 램프를 빌려주어 간신히 영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즐겁고 힘든 순간순간, 제 곁에는 온통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전해받은 태도와 마음을 귀하게 여기면서. 값진 마음들을 서점에 방문해 주시는 여러분에게 잘 전달하리라 다짐하면서.


저는 오늘도 서점의 문을 열고 닫겠습니다.


서점 주변에는 정말이지, 좋은 브랜드들로 가득하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에요.


* 제목은 유계영 시인의 시집,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에서 착안했음을 밝힙니다. 좋은 시와 멋진 제목을 만나게 한 시인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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