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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Mar 08. 2024

국민 클라이밍 입문화 ‘매드락 드리프터’ 사용기

슬스레터 #24

클라이밍에 입문한 지 3개월 차에 접어들 무렵, 암벽화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운동하는 게 즐거워 암장을 자주 방문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클라이밍을 배우고 싶어 강습까지 등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센터에 구비된 대여화 디자인이 다소 예쁘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강렬한 주황색, 파란색 조합으로 이뤄진 대여화는 정말이지, 영상을 찍을 때마다 태가 나지 않았다!) 마침 센터에서 다양한 신발을 판매하고 있었고, 이것저것 신어보고 둘러보며 골랐다. 그렇게 내 첫 암벽화, 매드락 드리프터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 사용 기간 : 2021년 11월 ~ 2023년 3월 / 부상으로 인한 휴식기 3개월 포함


암벽화를 드디어 손에 넣은 날! ‘범고래'라는 애칭도 지어줬다.



착화감, 가격, 디자인의 삼박자


사실 마음 한편엔 욕심내어 중급용으로 분류되는 암벽화를 사고 싶었다. 라 스포르티바의 스콰마나 스카르파의 드라고 같은 신발 말이다. 앞코가 날렵하고 발의 아치 부분이 멋스럽게 휘어져 있어서 실력이 금방 향상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암벽화에 손을 넣어보고 고이 접었다. 넣자마자 손바닥이 절로 오므려졌던 것. 손 대신 발을 넣는다면? 안 봐도 뻔하지···.


한편, 드리프터는 밑창이 평평하고 발등부터 옆까지 부드러운 스웨이드 재질로 이뤄져 신었을 때 발볼이 심하게 옥죄인다거나 발가락이 굽는 느낌이 없었다. 벨크로 끈을 꽉 조인 뒤 발끝으로 섰을 때도 약간 불편한 정도였다. ‘움직임이 자유로워 발 기술을 익히기에 좋은 암벽화’라는 인상이 강하게 다가왔다.


편한 착화감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그다음으로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울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암벽화는 20만 원이 훌쩍 넘는데 당시 센터 회원가로 9만 원 미만이었으니. 웬만한 러닝화나 축구화 등도 10만 원 이상인 점을 생각하면, '운동 장비’'라는 관점에서는 정말 좋은 가격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무난한 디자인. 쨍한 컬러의 대여화와 노란색과 빨간색, 형광 민트색이 돋보이는 중급용 신발들 사이에 블랙&화이트 톤의 드리프터가 놓여 있었다. 그가 내 눈에 쏙 들어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다.


대여화를 신었을 때보다 확실히 잘 되는 기분!



자꾸만 생각나는 그 신발


드리프터와 함께한 시간은 꽤 즐거웠다. '암벽화는 원래 발이 아프다', '길들이면서 신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줄 만큼 편했고, 덕분에 2년간의 혹독한(?) 강습을 잘 이겨냈다. 하지만 이쯤 되니 신발에 손상이 생겼다. 홀드와 벽의 거친 부분을 딛는 순간이 많아지며 앞코, 밑창 부분이 갈라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큰 구멍으로 변했다.


나의 범고래, 2년 동안 애썼다.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 같은 걸로 살지 새로운 암벽화를 살지 고민하게 됐다. 가성비가 좋은 암벽화인 건 분명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리프터의 최대 강점인 편한 착화감은 다소 단점으로도 작용했다.


앞코 부분부터 밑창 전체까지 고르게 이어진 특성은 발 아치에 부담 가지 않아 좋았다. 다만 작은 홀드를 밟을 때 불편했다. 발끝의 감각만을 사용해야 하는데 자꾸만 발 전체가 닿아 종종 미끄러지곤 했다.


또 부드러운 재질인 만큼 잘 늘어났다. 처음엔 신발 끈을 다 조이기도 힘들었는데 반년 후엔 끈이 늘어날 정도로 조여도 다 감싸지지 않았다. 힐 훅 기술을 사용할 때 홀드에 발이 걸리기는커녕 오히려 발꿈치 부분이 벗겨지려고 해 놀랐던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발등을 보호하는 고무 부분이 아예 없다는 점. 전체가 천 재질이어서 토훅 기술을 쓸 때마다 딱딱한 홀드가 발등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강습 때 힐과 토를 모두 활용하는 문제가 나오면 어찌나 식은땀이 났던지.


아마 이런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중급화로 레벨업 할 타이밍이라는 뜻 아닐까? 스스로 레벨 체크까지 가능하다니! 클라이밍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에겐 더욱 추천하고 싶다. 다양한 암벽화를 경험하고 싶어 다시 사진 않았지만, 발이 아픈 지금의 신발을 신을 때마다 종종 나의 첫 암벽화가 떠오르곤 한다.


아아, 그는 좋은 암벽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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