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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짝 Nov 13. 2024

시시포스의 형벌

무한 반복되는 조증과 우울증

시시포스의 바위와 조울증의 굴레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는 신들의 벌을 받아 영원히 무거운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형벌에 처해졌습니다. 바위가 정상에 거의 다다르면 다시 굴러 내려가고, 시시포스는 다시 바위를 올리는 끝없는 작업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 형벌은 전형적인 무의미한 노동의 상징으로, 결코 끝나지 않는 고통의 순환을 뜻합니다.


이 신화는 조울증을 앓는 제게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조울증을 겪는  삶도 어쩌면 이 시시포스의 바위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조증, 정상에 오르는 순간의 황홀함


조울증의 ‘조’ 상태, 즉 조증은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고 즐거운 순간을 선사합니다. 이 시기에는 높은 에너지와 자신감이 넘쳐 오르며, 마치 시시포스가 정상에 가까워질 때의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조증 상태에서 큰 희망과 비전을 품으며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도전하고, 평소와 다른 속도로 일을 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희망과 에너지는 지속되지 않습니다.


조증은 오래가지 않고, 정상에 다다른 시시포스의 바위가 다시 굴러 내려가듯 다시 깊은 우울로 떨어집니다. 그러니 그 황홀한 순간은 오히려 더욱 고통스러운 전조가 되어 버립니다. 언제나 조증의 정점 뒤에는 다시 내려가야 할 긴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울, 바닥에서의 무기력함


우울 상태는 바위가 굴러 내려가 다시 산기슭에 위치한 시시포스의 시작점과도 같습니다. 조울증의 환자는 이런 무기력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조증 때와는 반대로, 아무런 희망도 의지도 느끼지 못하며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조증의 기억은 더 큰 허탈감을 남기고, 지금의 상태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시포스가 그렇듯, 조울증을 겪는 사람도 다시 바위를 굴려야 합니다. 매일 자신이 아침에 깨어나기 위해, 다시 일어나기 위해 작은 바위를 조금씩 밀어 올리며 싸우는 것입니다. 그 무거운 바위를 다시 언덕 위로 끌어올리는 일처럼, 우울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는 노력은 쉽지 않지만 피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반복, 그러나 의미를 찾는 과정


조울증은 그 자체로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결코 끝나지 않는 반복의 병입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더라도, 재발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조울증의 굴레는 결코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바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조울증 환자들이 이 과정을 통해 고통 너머의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시시포스가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듯이, 조울증의 환자들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조울증이라는 ‘바위’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이 형벌을 떠안은 시시포스처럼, 조울증 환자들 역시 이 굴레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나아가야 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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