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 前 직장인, 육아휴직 중인 現 전업아빠 / 아내의 해외 발령으로 육아휴직을 하고 영국 런던으로 이사와 7세, 5세 두 아이를 키우는중. 육아휴직을 하고 이를 전업으로 키우고 있는 아빠의 휴직일기+육아일기 입니다. 아직은 지르기에(?) 도전적이고 개척정신이 필요한 '아빠 육아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휴직을 결심한 계기부터, 휴직을 위해 준비하고 고려해야할 것들, 그리고 실제 육아와 휴직아빠를 위한 고민과 팁까지. 해외생활은 낯설지만, 어디서든 애 키우는 것은 비슷하더라고요^^ 육아휴직을 고민하거나 휴직중인 아빠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기대합니다.
‘보람’과 ‘사명감’과 ‘소명의식’과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는 많은 사람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하면 일단,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그 ‘돈’이 없어진다. 이것은 육아휴직에서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다. 아무리 이상적이고 완벽한 휴직을 꿈꾸어도, 그 모든 조건은 경제적 기반에 근거해야 한다. 물론 돈이 아예 안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육아아빠가 직장에 다니며 받던 월급에서 매달 떼어가는 4대보험 중에 ‘고용보험’이란 곳에서 육아아빠에게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한다. 얼마를 받는지는 당신의 평소 연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분명한건 충분하지 않다. 심지어 지급 기한제 한정되어있다. 이거 믿고 경제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휴직을 단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생활하는 부유층이 아닌 이상, 중산층 이상의 직장인들에게 급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절실하다.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도, 그 연봉이 경제적으로 여유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들어오는 월급에 맞도록 현금 유동성을 설계한다. 뭔가 거창한 말인 것 같지만, 들어오는 돈만큼, 써야하는 돈을 정해놓는다는 얘기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들어온 월급에 맞춰서 소비하던 패턴이 이는데 근데 휴직은 순식간에 그 현금 흐름을 바꿔버린다. 고정적으로 꼭 나가야 하는 필수 비용 외에 나머지 흐름을 손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돈’은 육아휴직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아마도 잠재적 육아아빠라면, 부부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 ‘맞벌이’일 것이다. 당신이 육아휴직을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사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현금 흐름의 물줄기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평균적인 임금의 격차를 볼 때, 어쩌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다분하다. 대학 동창들과 가끔 만나서 술자리에서 하는 소리 흔한 레퍼토리 중에 하나가 “학교 다닐때는 시간(방학?)은 많았는데 돈이 없었고, 사회생활 하니 그때보다 돈은 많은데 쓸 시간이 없네”라는 거다. 이 제로섬 관계는 웬만해선 극복하기 어렵다. 육아아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육아휴직’은 짧더라도, 육아휴직을 위한 구상은 길어야 한다. 당장 익숙해진 소비의 흐름을 확 줄이는 것은 어렵다. 대출과 현금서비스에 손을 대다가, 인생 설계가 망가지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전에, 휴직 예정 기간의 몇 배의 기간 동안에 경제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축한 돈으로 줄어든 현금 유동성의 흐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육아아빠 생활이 시작된 이후에 필수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절약하는 생활에 사전 예습 내지 훈련이 될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어렴풋이 말고, 정말로 육아휴직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3년 전이었다. 정확히는 해외 주재원이 비교적 많은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해외로 발령이 난다면, 나도 육아휴직을 하고 따라가서 아이들을 돌보리라..라고 생각을 한 시점이었고, 그때부터는 이전보다 현금흐름에 좀더 신경을 썼다. 더욱이 변수가 많아서 대비해야 하는 해외생활이 전제되어 있었기에, 이런 준비는 더욱 절실했다. 나의 해외 육아아빠 생활은 최소2년, 최대3년이 될 예정이다. 생각보다 아내가 빨리 발령을 받는 바람에 ‘휴직 예정 기간의 최소 2배 이상 기간 전부터 경제적 준비’라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노력을 거쳐서 휴직에 돌입한 덕에, 급여가 줄어든 생활 속에서 나름 버틸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첫 번째 준비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돈’이라면, 두 번째 준비는 동료들에게 육아휴직의 정당성을 인정 받기 위한 사전작업 이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포털에 자주 걸리지만, 절반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주위를 돌아봐서 육아휴직한 남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서 늘어나고있다는 말인가. 아마도 남성 육아휴직자가 가장 많은 직종은 ‘공무원’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공무원 중에서도 육아휴직이 여의치 않거나 눈치 보이는 곳도 많을 테지만, 고용안정성이 가장 높은 공무원이 그래도 눈치를 덜보고 육아휴직을 할 ‘용기’를 내기 가장 적절한 직업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이나 준공무원 신분에 해당하지 않은 경우라면, 예비 육아아빠에게 육아휴직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어쩌면 직장생활의 목숨(?), 즉 고용지속성을 걸고 단행해야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노동자의 육아휴직은 분명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지만, 한국사회에서 그 법을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노동자는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게 현실이다. 급여가 확 줄어드는 첫 번째 필요조건을 감수하거나, 충분히 대비해놓은 노동자 아빠라도, 팀장에게 ‘저 육아휴직 하겠습니다’라고 말을 꺼내는 것은 녹록지 않다.
“팀장님, 저 육아휴직을 하겠습니다”
“김대리, 회사 생활에 문제 있어요? 뭐 안좋은 일 있어요?”
“아닙니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
“아니 그러지말고, 못 꺼낸 얘기가 있으면 솔직히 말해봐”
....이런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가 예상되지 않는가. 유럽에 와서 살고 있으니 더욱 비교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아빠가 육아를 책임진다는 의식은 희귀하다. 남성 노동자들도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지막 무기로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남성 노동자들의 육아휴직이 그래도 허용되는 분위기인 우리 회사에서도, 어떤 동료들은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는 수단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카드로 내미는 경우도 목격했다.
예비 육아아빠들의 원활한 육아휴직을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기왕이면 telling이 아니라 showing으로. 적어도 직장을 휴직하고 전업으로 육아를 책임질 생각을 하는 아빠라면 소위 ‘가정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다. 어쩌면 그동안 ‘가정적’이지 못했던 과거를 책임지거나 갚기 위해서 육아아빠에 도전하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을수 있다. 경우야 어떻든, 당신의 관리자와 동료들에게 ‘갑작스러운’ 육아휴직 선언은 분명 예상치 못한 결과일 것이다.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 휴직할거야’라고 소문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적어도 ‘복선’을 암시할 필요는 있다. 소위 ‘밑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행동은 어떤 경우에든 말보다 힘이 세다. 기왕이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욱 효과있다. 당신이 육아에 대해 어느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동료들이 미리 알고 있다면,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용기를 받아들여 주는 것이 좀 더 쉬워진다.
앞글인 1장에서 내 사례에 썼듯이, 관리자에게 나의 일시적인 빈자리를 조정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것도 필수다. 어느 자리에 있냐에 따라, 시각과 관점은 달라진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당사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길고 전략적으로 업무 진행과 인력 관리를 생각할 확률이 높다. 좋은 관리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말하기 민망해서, 처음 휴직 얘기 꺼내놓고 실제로 휴직 들어갈 때까지 눈칫밥이 먹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닥쳐서 육아휴직을 선언한다면, 그 것은 관리자와 동료들에게 더 실례다. 민망함과 눈칫밥은? 안타깝지만 그 부분은 각 육아아빠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남은 기간동안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성과로 답하는 수밖에 없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내 자리가 없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을 극복해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감수하는 것이다. 육아휴직은 분명 남성 노동자에게도 법적으로 보장되어있는 권리이다. 심지어 인사위원회의 통과와 같은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사책임자가 통보 즉시 승인을 해야 하는 의무 사항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육아휴직은 ‘불이익’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권리’를 챙기기 위해, 조직에 ‘불이익’을 떠넘긴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엄밀히 따지면 조직은 그 부분까지도 예상하거나 대비해야하는 것이 분명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불이익’은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수 있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직장에서 잘리는 것. 물론 회사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 법적으로 보호된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괴씸죄’를 적용해서,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비일비재하다. 이 부분은 남성 육아휴직의 저변확대를 위해 필수적으로 고쳐나가야 하는 사회적 적폐다. 인사상 권한을 쥐고 있는 관리자급 들에게 ‘육아’는 여성의 일이었다. 그들 대부분도 자녀가 있지만, 지금은 장성한 자녀들이 기어다니고, 걸어다니고, 아빠를 찾던 과거에, 그들 대부분은 집에 없었다. 그들은 그 시간에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술잔을 기울였다. 꼭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가족을 부양했고, 지친 삶을 위로했다.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 후계동 정희네에 앉아서, 저녁마다 지친 삶을 위로할 수 있었던 이유? 동훈에게는 아이가 하나밖에 없었고, 그나마 어느정도 커서 해외로 유학보냈기 때문이다. 미취학 유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지친 삶의 위로’는 일상적 가치가 아니다,
잠깐 샛길로 빠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관리자급 연배들에게 남성이 ‘진짜로’ 육아를 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상식은, 심지어 법률의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할 만큼, 비상식적인 경우가 많다. 슬프지만 그들 세대의 상식은 그렇다. 욕할때 욕하더라도 인정해야한다. 다행히 내 경우에는 ‘휴직하면 자리가 없어질 것을 경고’하는 관리자는 없었다. 하지만 휴직 들어가기 전날, 관련 부서들을 돌며 인사할 때, 후배들에게 존중받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최고참급 선배 한 분은 “잘 쉬다와”라는 인사를 건냈다. 극복해 낼 수 없는 상식의 경계선인가보다.
다시 정리하면 ‘휴직 후 인사상 불이익’의 가능성은 육아휴직자가 감수해야하는 몫이다. 닥치지 않은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확실한 미래는 불안을 야기한다. 그 불안은 행동을 주저하게 만든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용기'뿐이다. 참고로, 나에게 그 주저함을 떨치게 만들어준 것은 친구 K의 통찰력이었다.
“휴직 할려고 한다고?”
“응, 근데 복직해서 어디 한직으로 쫓겨날까 걱정된다 야”
“야, 너네 팀에, 너네 부서에 일할 사람 많냐?”
“아니, 항상 모자라지”
“그럼 너 되게 못하냐? 팀에서 니가 없는게 나을정도로?”
“아니, 그정도는 아니지. 겸손하게 생각해봐도 없는 것 보단 낫겠지”
“그럼 니가 복직했을때도 일할 사람은 모자랄거야. 그때도 팀장들은 서로 자기 팀에 인원 달라고 난리일걸? 휴직을 했든 어쨌든, 돌아가서 일만 잘 하면 그런거 금방 다 까먹는다”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나중에 임원이 되거나 대표이사가 되는데 암묵적인 결격사유가 될 수는 있다. 물론 그것도 옳지는 않지만, 어쨌든 현실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먼 미래를 장기적으로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분명 어느 회사의 어느 팀에서나 일할 사람은 부족하다. 우리 회사도 그렇고. 돌아와서 어떻게 하느냐가 분명 더 중요하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필요이상으로 걱정을 키우지 않을 담대함이 필요하다.
(Apr. 12. 2019)
[4장 예고] 아빠 육아휴직을 해야하는 이유
*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이 목표인데, 다음주에는 아이들의 부활절 방학 (Easter Holiday)을 보내기 위한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서, 한주 그냥 넘기게 될것 같습니다. 돌아와서 다음 주제 열심히 써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