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 해외거주 초보 아빠 이야기
30대 후반 / 前 직장인, 육아휴직 중인 現 전업아빠 / 육아휴직을 하고 영국 런던으로 이사와 7세, 5세 두 아이를 키우는중. 전업 라떼파파의 휴직일기+육아일기 입니다. 아직은 지르기에(?) 도전적이고 개척정신이 필요한 '아빠 육아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휴직을 결심한 계기부터, 휴직을 위해 준비하고 고려해야할 것들, 그리고 실제 육아와 휴직아빠를 위한 고민과 팁까지. 해외생활은 낯설지만, 어디서든 애 키우는 것은 비슷하더라고요^^ 육아휴직을 고민하거나 휴직중인 아빠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기대합니다.
"너, 육아휴직 할 생각이라고?"
"네, 선배님"
"이직하게? 준비할려고?:
"아니요. 진짜 애들 볼려고요. 해외 나가서 몇년 있게 될거 같아요"
"이야, 해외 생활이라 부럽다야"
"가서 애 둘, 제가 혼자 키워야 하는데도요?"
"그건 안부럽지, 미안"
"그래서 말인데, 제가 2년 또는 3년 휴직하게되도 괜찮은 분위기일까요? 선배 인사부서 오래 있었잖아요"
"알다시피, 우리회사는 그래도 비교적 남자가 육아휴직하는거 눈치 안주는 분위기이긴 한데, 그래도 애 둘 휴직을 붙여서 2-3년 쓰게 되면, 내가 아는한에는 네가 첫 사례일거 같긴하다"
"혹시라도 육아휴직이 허가가안날 수도 있나요?"
"응? 육아휴직은 허가 받는 사항이 아니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조건 승인 해야해"
창사 57주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회사에서 (정확하게 확인된건 아니지만 아마도 거의 확실히) 처음으로 아이 둘의 육아휴직을 붙여서, 2년 혹은 3년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최초의 남성 직원에 도전하게 되었다. 2-3년전부터 육아휴직을 어렴풋이나마 생각했고, 몇달전부터 본격적으로 육아휴직을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했지만, 문제는 주변에 생생한 사례가 없었다. 회사에 가끔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들이 있었지만, 휴직에 들어가기도 전에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싶진 않았고, 보안을 지키며 육아휴직에 대해서 물어볼만큼 친분 있는 사람중에는, 육아휴직을 경험해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육아휴직은 결재권자가 '승인'이나 '반려'를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무조건 승인하고 지체없이 인사발령을 내려야한다는 사규가 있다는 사실도. 물론 사규에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제한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으나 '특별한 경우'로 순리를 거스를만큼 내가 특별한 직원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어쩌면 회사에서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사람들에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두려움은 항상 존재한다.
"회사에서 남자가 육아휴직한다는걸 '특별한 경우'로 못박으면 어쩌지?"
"휴직도 못하고 괜히 찍히는거 아니야?"
다행히, 남성 육아휴직은 국가적, 정책적으로도 권장되고 있다. 심지어 아빠의 육아휴직을 권장하기 위해서, 한 아이에 대해서 두번째로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 (보통은 엄마가 먼저 육아휴직을 하고, 아빠가 나중에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에는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 육아휴직 급여에서 추가로 보너스까지 지급한다.
하지만 인정해야할 부분. 지금 '아빠 육아휴직'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포함해서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운이 좋은' 직장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간 크게 '어디 감히 남자가 육아휴직을 해'라고 대놓고 말할 회사는 적지만, 이렇게 저렇게 돌려 말해서 눈치 주거나, 불이익을 암시하거나, 심지어 휴직을 거부하는 회사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아빠 육아휴직'을 생각해볼만한, 인생의 옵션으로 둘 만한 회사에 다니고 있고, 그럴만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에이 안될꺼야"라는 생각보다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이어지는 세번째 글에 나올 필요 조건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본 뒤에.
난,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국장님, 저 육아휴직 들어갈까 합니다"
"어~ 그래요, 요즘에는 남자들도 애들 키워봐야지"
"(당황) 네, 감사합니다. 갑자기 자리 비우게 되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 시간 소중하게 잘써요. 아마 효은씨 인생에서 지금부터 휴직한 그 기간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 될 수 있어요. 지나고 보니 나도 아이들 어렸을때 그 시간이 가장 그립거든"
휴직을 결심하고, 앞 글에서 얘기했듯 직속 관리자인 부장에게 이야기한 후, 고위 관리자인 국장을 찾아가서 얘기했다. 큰 맘 먹고, 들어 가기전에 물 한잔을 원샷하고, 심호흡하고, 다시 침을 삼키고 들어가서 이야기한 것 치고는 너무 순조로운 대화였다.
어쩌면 나는 회사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직원이었는지도. 스스로에게 100%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냉정하고 보수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래도 항상 인력이 모자랐던 부서에서, 회사에서 내가 어지간히 일을 못한다고 스스로를 폄하해봐도, 없는 것보단는 머릿수 하나 더 있는게 분명 더 낫긴했다. 하지만 큰 맘 먹는게 어려웠지, 오히려 많은 인력을 관리하고 통제해야하는 관리자들에게는 이정도는 상수가 아닌 변수였다.
2018년 7월의 어느날. 그렇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휴직’을 했다.
육아휴직. 달콤한 단어이다. 우선 회사를 그만두는 불안한 상상을 하지 않고도 회사를 나가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충분하지는 않지만, 돈도 어느 정도 나온다. 뭐 이런 이상적인 제도가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실에는 언제나 제도의 취약점을 잘 이용해서 최대한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빠 육아휴직'을 하고서 아빠가 육아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잡아낼 방법은 없다. 실제로 육아는 돈을 써서, 혹은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육아휴직은 분명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장기간을 쉴 수 있는 꿀빠는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아빠 육아휴직'은 누군가에게 육아를 아웃소싱하지 않고, 아빠가 아이의 '주양육자'가 되기 위한 휴직을 말한다. 영국에서 현지사람들이 "너는 무슨일 하니?"라고 물어볼때 나의 답은 언제나 "I am on parental leaving in my compnay. I am full time father now" (난 직장에서 육아휴직중이야, 지금은 전업 아빠야) 이다. 육아는 full time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심지어 퇴근도 없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9 to 6 (오전9시에서 오후6시까지)로 배고프거나, 아프거나, 졸립거나, 용변을 보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가, 주중에는 누군가에게(부모님, 베이비시터 등) 혹은 어딘가에 (어린이집 등) 아이를 맡기고 퇴근후와 주말에만 아이를 돌보는 것과, 전업으로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전적으로 책임 지는 것은 다른 접근이다.
왜 육아휴직을 하려고 하는가? 육아휴직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올바른 질문에서 올바른 답이 나온다. 육아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직장에 대한 회의감이든, 이직 욕구든, 자아 찾기이든, 무엇이 됐든 이유를 스스로와 가족에게 명확하게 납득 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육아휴직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군가에게는 휴식이, 누군가에게는 도피가, 누군가에게는 여유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전업 아빠 생활은 생각보다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왜 육아휴직을 하려고 하고, 육아휴직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는 꼭 육아휴직을 결심하기 전에 아빠들이 스스로에게 본질적으로 물어봐야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하지만 꼭 한가지 명심해야할 부분은 있다.
"야, 나 육아휴직 하려고. 외국 나가 몇년 지낼거 같아, 니가 육아휴직은 선배잖아"
"조언 필요하냐?"
"응"
"네가 행복하게 지낼 거리를 찾아. 니가 행복하지 않고 희생한다고 느끼면 애들도 행복하지 않다"
S는 부득이하게 육아휴직을 했다. 본인의 사정이니 내가 '부득이'라는 말을 쓰는게 적당한지, 실례는 아닌지 모르겠지만 S도 이 글을 볼게 분명하기에 그래도 일단 양해는 구한다. 평소 회사 내부에서도 좋은 기사를 쓰고, 자질 있고 온화한 성격으로 알려진 기자였던 S는(이는 친구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신뢰할수 있는 미디어 전문지의 기사에 나온 인용 내용이다. 좋은 기사를 쓴건 그의 기사를 보니 나도 알겠는데, 사실 온화한지는 잘 모르겠다),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고, 명령불복종으로 부당한 불이익을 받기 직전에 마지막 수단으로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육아휴직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그는 나에게 "너의 행복을 찾아야해"라고 강력하게 조언했다. '행복'은 무척 주관적인 단어이다.
하지만 '희생'은 덜 주관적이다. 그의 조언대로 육아휴직은 아빠에게도, 가족 구성원 그 누구에게도 희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 하나는 변하지 않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선택한 휴직은, 희생이 아니라 투자이다. 가정을 위한 내 몫 대한 투자이다. 이 투자는 언젠가는 더 큰 이익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모든 투자가 다 흑자를 내지는 않으니까. 적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투자는 자기 책임이다. 부추기는 사람이, 말리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자신이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자산도 아니고 인생의 투자이다. 그것도 인생에 중요한 순간, 아마도 육아휴직을 할 대상의 아빠라면 30대 전후의, 직장에서 중요한 시기 중에 일부를 뎅강 잘라내서 다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셈이다.
육아휴직의 목적과 목표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육아휴직이라는 행위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희생'이라고 생각하다면 곤란하다. 그건 육아할 아이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칠만한 결정적인 요소다.
(Apr. 4. 2019)
[3장 예고] 아빠 육아휴직, 필요조건들
- 경제적 문제부터, 고용 안정성, 심리적 문제까지
육아휴직을 고민할 사람들이 사전에 생각해봐야할 여러가지 필요조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