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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라떼파파 Apr 01. 2019

1. 육아휴직 프롤로그

육아휴직 + 해외거주 초보 아빠 이야기

런던라떼파파의 리얼 육아생활


30대 후반 / 前 직장인, 육아휴직 중인 現 전업아빠 / 아내의 해외 발령으로 육아휴직을 하고 영국 런던으로 이사와 7세, 5세 두 아이를 키우는중. 육아휴직을 하고 이를 전업으로 키우고 있는 아빠의 휴직일기+육아일기 입니다. 아직은 지르기에(?) 도전적이고 개척정신이 필요한 '아빠 육아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휴직을 결심한 계기부터, 휴직을 위해 준비하고 고려해야할 것들, 그리고 실제 육아와 휴직아빠를 위한 고민과 팁까지. 해외생활은 낯설지만, 어디서든 애 키우는 것은 비슷하더라고요^^ 육아휴직을 고민하거나 휴직중인 아빠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기대합니다. 


1장. 육아휴직 프롤로그


"부장님, 저 몇달 후에 육아휴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 얼어붙은 술자리, 이거 어쩔꺼야


2018년 4월 중순 어느날, 여의도의 좋은 식당에서 모여앉은 4명. 술자리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완연히 따뜻해진 봄 날씨에, 추억과 그리움이 깃든 친정 여의도 나들이에, 가장 호흡이 잘 맞는 리더와 부서원들끼리 모여서 의기투합하는 자리. 부장을 포함한 4명의 부서원이 외부 교육 업체로 하루짜리 교육을 받으러 온 날의 뒷풀이였다. 입을 뗀 나를 제외한 3명의 입장에서는 분명 입을 떼는 순간 이기적인 발언이었다. 중장기적으로 부서의 운영은 둘째치고, 당장 분위기 좋은 회식 자리를 얼어붙게 만들었으니.


나에게는, 언젠가는 꺼내야할 화두였다. 부장에게 면담 신청을 하고 회의실에 둘이 마주 앉아서 꺼내기에는 말을 꺼낼 용기가 부족했고, 너무 불확실한 선언이었다. Coming Soon. 그냥 지나가는 말로 꺼내놓고 혹시라도 현실이 됐을 경우의 알리바이 내지는 밑밥 정도로 생각하며 가볍게 던질수밖에 없는 말이었는데, 가벼운 분위기와, 가벼운 말투로 던졌어도,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던진 투구의 파장은 역시 가볍지 않았다.


"효은씨, 진짜 육아휴직 한다고?"
"아니요.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정도에요"
"왜?"
"아내가 해외발령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요. 같이 가서 아이들 돌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 발령 나기로 예정되어 있는거야?"
"아뇨, 희망사항이에요. 근데 아내 회사의 사례를 보니 해외발령을 받고 준비해서 출국하는 시간이 한달 정도밖에 안되더라구요. 혹시라도 해외발령 나도 휴직하게 되면, 제가 갑자기 팀에서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말씀드리는게 나을거 같아서요"
"그럼 발령이 안날수도 있는거야? 해외발령이 내정이 된 것도 아니고? 가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되는데?"
"내정..은 없어서 발표가 나야 알수 있다고 하고, 확률은 저도 지금으로서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 마음 속에서는 50%는 넘는다고 생각하니 일단 말을 꺼냈습니다"



2. 불확실한(uncertain) 미래에 대비하는 방법


저 발언은 나에게도 일종의 '베팅'이었다. 이 시점에 아내의 해외발령은 순수하게 희망사항이었다. 확률로 계산하는게 가장 와닿겠지만, 그 확률 계산조차도 되지 않았다. 확률은 낮았지만 실제로 일어날 경우에 나와 팀에 미치는 영향이 컸기에 나에게는 관리하고 대비해야하는 미래의 '리스크'로서 가치가 있었다.


'나에게 미치는 영향'말고 '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도 사실은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착각이 착각일 확률과, 실제일 확률을 다시 추정하고 계산해보기엔 너무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이 부분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해서 '나 없어도 세상 아무렇지 않다'와 '나 없으면 우리 회사 망한다'의 중간쯤에서 스스로 합의한 '나 없으면 우리 부서 멤버들 고생 많이 한다' 정도로 내 머릿속에서 합의하는 정도에서 정리해야 했다.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미리 휴직을 예고한 이유는, 팀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다.  2년동안 미래전략을 연구하는 대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나마 공부하면서 본의 아니게 '공통필수' 과목에 들어가는 바람에 수강하게 됐던 '미래예측 실습'은 귀찮았지만 실전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미래예측의 가장 큰 적은 부정적(negative)인 전망이 아닌, 불확실한(uncertain) 전망이다. 부정적 전망은 물리적인 대비를 할 수도 있다. 물리적인 대비가 불가능하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는 답이 없다. 예측 가능한 미래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짜보는 방법 정도가 전부이다. 이 시나리오 기법은 당황하지 않고 미래를 맞이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variable)를 최대한으로 줄이면 예측 시나리오의 갯수가 줄어든다. 변수는 2개이면 가장 좋다, 변수가 2개라면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는 4개다. 변수가 3개로 늘어나면 가능한 시나리오는 2의 세제곱, 8개로 늘어난다. 그래도 이정도까지는 상황에 따라 어찌어찌 감당할수 있을만큼 준비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변수가 4개, 시나리오가 16개가 된다면, 그 미래예측은 '하나마나'가 될 수 있다. (물론 미래예측의 규모에 따라 다를것이다) 문제는 예측한 미래 시나리오의 1번과 2번에 대비해서 실행해야하는 행동이 서로 상충될 경우다. 바로 내 경우도 그랬다.


 3. 시스템은 오퍼레이터가 필요해


나는 부서에서 '나름' 열심히 일하는 고참급 멤버였다. 나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들은 여럿 있었지만, 선후배와 나이를 떠나서 우리팀에서 연속적으로 나보다 오래 있었던 동료는 10명중 딱 1명이었다. '오래 일한 것'과 '일 잘하는 것'이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단순업무가 아닌 숙련업무에서 경험치는 중요한 스펙이다. 회사는 시스템으로 일하지만, 그 시스템은 사람이 만들고 운영한다. 내가 생각하고 일하면서 만든 시스템과 네트워크는 회사의 자산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내가 없을때도 업무가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다. 회사는 종업원에게 그렇게 만들어 놓을것을 요구해야 하고.


하지만 모든 직장인이 체험하듯이, 그 간극이 좀 있다. 여름휴가까지는 얘기 꺼내지도 않고 몸이 아프거나 집안일때문에 부득이하게 휴가를 써도, 그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전화와 카톡에 시달려야한다. 몇년 전 작은 종기가 갑자기 악화되는 바람에 (진단을 받고 안 사실이지만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작은 종기는 아니었다), 업무시간이 끝날 무렵 에 잠깐 짬을 내서 낸 병원에서 '당장 수술로 제거해야한다'는 진단을 받고, 출퇴근 가방도 챙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입원하고 다음날 아침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끝나기도 전에, 미안해 하면서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다. 별수 없다. 갑자기 빠진 이유도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꼼꼼하게 만든 시스템이,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니까. 해외생활을 하다보니 (직업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비즈니스 문화로는) 휴가중에는 물론이고 평일 업무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직장 동료나 업무 파트너에게 전화를 하는것조차 큰 실례인 유럽과는, 한국의 실정은 다르니까.



4. 과감한 '베팅' : 예고 휴직  


내 미래예측의 시나리오는 간단한 편이었다.


1. 아내는 해외발령을 받고,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함께 간다

2. 아내가 해외발령이 안나고, 나는 하던데로 일한다.


이 밖에 '아내는 해외발령을 받고, 나는 서울에 남아 일한다'나 '아내는 해외발령을 받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간다' '아내가 해외발령이 안나고, 나는 육아휴직을 한다'와 같은 변수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희망하지 않아서 모두 제외할 수 있었다.


'희망 미래'인 1번(해외발령)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당장 회사와 부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또 '퇴직'이 아닌 '휴직'인만큼 돌아와서 내가 다시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예의를 위해서, 갑자기 휴직을 하고 떠나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2번(해외발령X)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리 예고를 던졌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파트에서 일했던 때, 팀의 가장 막내 조연출이 처음 들어와서 맡는 업무는 '예고 제작'이다. 60분~80분짜리 프로그램을 30초 미만으로 편집해서 예고를 만든다. 그 예고의 내용은 꼭 그날 방송될 프로그램의 요약이나 주요 내용이 아니어도 된다. 일단 사람들이 지나가는 광고 속에서 예고에 주목할 수 있어야하고, 그 예고를 본사람이 본방송을 볼수 있을만큼 매력적이어야 한다. 귀찮으니 팀에서 막내를 시키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종의 '영업'이다. 내가 혼자 기획한 '육아휴직'의 본 프로그램은 주목도는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모든 회사의 모든 팀은 대부분 인원이 모자라고, 팀원이 빠지는건 큰 이슈니까. 문제는 본방송이 예고에 나온 내용과 다를 경우에 빗발치는 시청자의 비난은 모두 제작진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나는 해외발령+육아휴직에 대비한 1번의 예고를 만들어서, 이걸 시청할 클리이언트인 부장과 부서원들에게 던졌다. 그 예고를 직접 시청한 사람은 4명이었지만, 내일 아침이면 분명 이 소식은 부서를 넘어서 퍼져 나간다. 입소문은 빠른 법이니까. 다시 부장과의 대화.


"발령이 나게 되면 언제 가는데?"
"해외발령 발표는 6월 중순이니까, 두달쯤 뒤고요, 발령받으면 한 달뒤에 출국이요"
"근데 그걸 왜 벌써부터, 지금 말해? 안갈수도 있다는 거잖아"
"저 중장기 프로젝트에 투입하는거 선배님이 판단하셔야 하잖아요"
"그럼 지금부터 장기 플랜에 자기를 넣지 말라는 선언인건가?"
"그건...선배님이 판단하셔야 하고 저를 사용하셔야 할거 같습니다"


다행히 부장은 내가 술자리나 사석에서는 '선배님'이라고 부를수 있는 사람이었다. 업무관계를 넘어서서 서로 신뢰가 있었고, 이해가 있었다. 그리고 냉철하고 정확히 판단했다. 난 결코 '장기 플랜에 나를 넣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장기 계획을 짤때 이 점은 고려하세요'라는 메시지는 주고 싶었다. 믿고 따르는 선배여서 더 그랬다. 내일부터 애매해진 입장을 피하고자, 나중에 부서와 관리자에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예고대로 본방송이 나가지 않을 경우에 짊어질 비난과 부담은 그 다음이었다.  


선배에게 부담을 줘야하는 나의 입장이 곤란하고, 그런 후배의 발언을 들어줘야하는 부장의 입장도 곤란했을 것이다. 하고 있는 업무에 따라 크게 다르겠지만, 내가 하고 있는 업무를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실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후임자에게 백업하고 넘기는데 한달 정도면 빠듯하게 될것도 같은 상황이었다. 문제는 내 레벨이 아닌, 관리자의 레벨에서는 내가 생각하지 않고 있는 중장기 플랜이 있을수 있고, 내가 숨겨온 미래예측이 그 지점에서 그게 피해를 끼치면 안되다는 부분이다.


다행히 나는 부서가 담당할 중장기 프로젝트와, 거기에서 내가 맡아야할 업무에 대해서 일부는 명확하게, 일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당시 시점은 4월 중순. 나는 당장 6월에 시작하는 러시아월드컵에, 제작팀과 함께 러시아 현지에 출장을 가서 중계방송을 프로모션하고 마케팅할 현지 책임자로, 중계방송 제작팀과 이미 회의를 하고 있었다. 국장과 부장은 이미 2월의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프로모션과 마케팅 책임자로 현장에서 제작팀과 올림픽 전 기간을 함께 보낸 경험을 쌓게 했고, 이때의 경험은 나와 부서의 자산으로 축적되어 더 중요한 이벤트인 월드컵에서 활용될 예정이었다. 물론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날 무렵에 이미 해외발령이 나면 육아휴직을 할 생각을 하던 나는, 올림픽이 끝나고나서 내가 한일에 대해서 꽤나 꼼꼼히 보고서를 만들어서 리뷰와 향후 고칠점 등에 대해서 문서화 작업을 해놨다. 내가 언제 빠져도 내 경험이 부서의 자산으로 남을수 있게. 또 하나. 러시아월드컵이 끝나면 하반기에 들어갈 드라마에 투입되서 역시나 콘텐츠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책임지게 될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해당 드라마는 회사 전체에서도 좋은 작가와 시나리오, 좋은 제작진과 배우까지, 꼭 히트를 해야하는 기대작이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론칭을 앞두고 급하게 돌아가는 업무가 아니다. 몇달 전부터 각 파트의 담당자들이 모여서 TF를 구성하고, 함께 기획하고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런 의미에서 2-3달 전이라는 타이밍은, 일부 업무에서는 내가 이미 투입되어 실행하고 있던 TF의 업무나, 곧 투입되어야할 TF의 멤버를 짜고 있는 관리자의 입장에서 예측해야하는 시간에 들어가는 시기다.  


다시 부장과의 대화.


"잘 알았어. 근데 좀 서운하다. 지금 시점부터는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을 믿고 맡길수 없을거 같아서"
"저도 말씀드려야하는게 맞는지 고민 많이 했어요. 근데 TF 돌아가는데 중간에 빠지면 더 큰 실례일거 같아서"
"알았어. 나도 지금부터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고민해볼께"

"감사합니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시작으로부터 5분남짓? 물론 나에게는 5시간보다 긴시간이었다. 이 시점부터는 '휴직할거라서 벌써부터 대충 일하는' 직원이 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미 내가 예고를 던진 이상, 그 예고를 본 사람들에게 나는 평소만큼 일해도, '곧 휴직할 동료'였다. 가장 곤란한 부분은 시나리오가 1번대로 되지 않고 2번으로 흘러갈 경우, 내가 감당해야하는 시선과 눈칫밥. 이 부분은, 이미 예고를 낸 이상 내가 감당해야하는 몫이었다.


답답한 것은, 시나리오 1번(해외발령)이 채택되기 위해 내가 할수 있는 노력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었다. 그 노력은 온전히 아내의 몫이다. 나는 응원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가 할수 있는 노력은 시나리오 2번 (해외발령X)에 대비해서, 나에게 씌워질 '곧 휴직할 동료'의 필터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희석시킬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 그 부분은 회사와 부장과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했다.


5. 결과 : 베팅의 성공, 휴직의 시작


의외로 부장은 그날 이후 나를, 예정된 모든 TF에 투입했다. 나의 애매한 예고때문에, 안그래도 부족한 인력을 미리부터 열외시킬수는 없었던 것일테다. 그리고 여전히 내 업무에 대해서는 나를 신뢰하고 내 판단을 존중하며 업무를 진행했다. 내 시나리오를 이미 예고한 이상, 이제 내가 빠질 경우의 업무 조정을 해야하는 시나리오는, 죄송하게도 부장의 머릿속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당장 그 선택의 결과는, 현실에서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나는 하던 일상 업무를 계속했고, 예정대로 새로 출범하는 월드컵TF와 드라마TF에 투입됐다.


생각해보면 예고 휴직을 선택한 내 결정은 그렇게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예고 휴직을 던진 뒷 감당은 나의 몫이다. 중간관리자로서 좋은 역량을 가지고 있던 부장 선배는 내 예상대로, 나를 예정된 업무에 투입하는 동시에 내가 빠질 경우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서 두달 뒤 다음과 같은 대화가 가능했다.


"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 회의실에서 잠깐 뵐수 있을까요?"

"그래요"
(회의실로 이동)
"저, 휴직을 신청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달 뒤에요"
"와, 축하해요"


좋은 관리자였던 부장은, 내 예고 후에도 내색하지 않고 나를 업무에 투입시키고 대하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인력자원이 빠지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의 예고가 부장의 미래예측 변수에 영향을 줘서, 부장의 머릿속 시나리오를 짜는데 대비가 됐다는 점에서는, 난 내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러시아월드컵 출장은 개막을 1주일 앞두고 담당자가 교체됐다. 내 대신 러시아에 가게 된 동료는, 내 '육아휴직 예고 술자리'에 동석했던 멤버였다. 팀 구성상 누가 생각해도, 내가 빠지게 되면 스포츠 이벤트는 그의 몫이었다. 그는 내 예고를 듣자마자, 자신이 나를 대체해서 러시아에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담당자 교체를 듣고 덜 당황할 수 있었다. 하반기 중요 드라마에 투입될 멤버 역시 대체 되었다. 부장은 내가 빠질 생각을 미리 하고 있었기에, 다른 부서원의 업무량을 조절해서 큰 무리 없이 (이건 내 기준일지도) 내 업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었다.


만약 시나리오 2번(해외발령X)이 현실이 됐다면, 나는 중간에서 '바보'가 될수도 있었지만, 내가 한끝도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그 리스크를 조직과 관리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내 이익을 위해 합리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동료들의 나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Mar.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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