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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변호사 Dec 04. 2024

계엄, 살아생전 너를 다시 만나다니

대한민국 헌법상 계엄과 그 역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3일 밤 10시 25분경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戒嚴), 경계할 계(戒)와 엄할 엄(嚴)은 차가운 회색빛이 감돈다. 군사정권의 트라우마를 느끼게 하는 데 이만한 단어도 없어 보인다.


영어로는 Martial law, 즉 ‘민간(Civil)’에 대비되는 ‘군사적(Martial)’이라는 표현을 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Martial law를 군법에 따라 민간 정부를 대체하고 군사권력을 위하여 민간 법률 절차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Martial law is the replacement of civilian government by military rule and the suspension of civilian legal processes for military powers).


오늘날 많은 한자 조어(造語)가 그렇듯 계엄은 메이지유신 시절 일본인들이 만든 말이다. 중국 명(明)나라 때 장자열(張自烈)의 저서인 정자통(正字通)의 “적이 바야흐로 쳐들어옴에 방비를 굳게 함을 일컬어 계엄이라 한다(敵將至設備曰戒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혁명으로 혼란스러운 프랑스가 이를 극복하고자 만든 법률상의 국가긴급권을 일본인들은 계엄으로 본떠 자국과 식민지에 이식했다.


헌법 제77조 ① 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②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

③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⑤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계엄은 제헌헌법부터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계엄은 이번까지 총 17번 있었다. 그중 경비계엄이 4번, 보다 무게감 있는 비상계엄이 13번이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비상계엄만 내리 5번째다. 박정희 대통령이 숨을 거둔 1979년 10.26 사건 이후 우리는 45년 만에 계엄을 마주하게 되었다.

계엄법에 따라 계엄사령관이 된 박안수 대장(육군참모총장)은 12월 3일 23:00부로 다음과 같은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발표했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2024.12.3.(화)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


‘선량한’이란 말은 법전에 ‘선량한 풍속,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 등장한다. 그 말이 '일반 국민'을 수식할 때 군화 가죽 냄새가 이렇게 진하게 풍길 줄은 미처 몰랐다.    

헌법 교과서는 계엄선포를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병력(兵力)을 수단으로 하는 국가긴급권제도’라 말한다.


이러한 계엄선포에는 실질적 요건과 절차적 요건이 있다. 절차적 요건은 헌법과 계엄법에 따른 절차 말하고, 실질적 요건에는 첫째, 상황상의 한계, 둘째, 목적상의 한계, 셋째, 수단상의 한계가 있다.


상황상의 한계와 관련하여 헌법 교과서는 헌법 제77조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 함은 전시 또는 사변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로서 집단 또는 군중이나 자연적 재난으로 인한 ‘사회질서교란상태’를 말한다고 적는다. 그러니까 집단 또는 군중에 의한 사회질서교란은 국가의 존립 그 자체 또는 헌법질서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져오는 정도여야 한다.


더욱이 헌법 교과서는 이러한 비상적 사태가 이미 발생한 경우라야 하고, 비상적 사태의 발생이 예견되는 데 지나지 아니하는 경우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른바 ‘예방적 계엄선포’는 상황상의 한계 요건을 벗어난다는 말이다.


수단상의 한계와 관련하여 역시 헌법 교과서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한 경우에도 경찰력만으로 비상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 때는 계엄을 선포할 수 없다고 못박는다. 바꿔 말해 병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는 비상사태의 극복이 불가능한 때에 한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윤 대통령의 이번 계엄선포는 예방적 계엄선포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또 작금의 상황이 경찰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비상사태인지도 의문이다. 요컨대 이번 계엄선포는 상황과 수단상의 한계를 벗어나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또한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적하였듯 절차적 하자도 있다.


국회의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은 12월 4일 새벽 1시경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2시간 35분 만에 해제 결의가 된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고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고가 없었다.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 없이 (비상계엄 해제 결의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계엄선포에 절차적 하자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했으므로 대통령은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 결국 비상계엄 선포 6시간 만인 12월 4일 4시 30분경 윤 대통령은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계엄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해제하려는 경우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인지 윤 대통령은 “다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국무회의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 오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덧붙였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맞이해 뜬 눈으로 밤새운 시민들이 한둘이 아닐 터인데, 지난밤 적어도 10시 30분경까지는 대통령실에 머물렀을 국무위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자충수(自充手) 이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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