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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Jun 01. 2021

05. 왜 나에게 비밀연애를 말했을까

-흑백 필름으로 카메라를 찍던 시절

아마 기말고사였을 것이다.  선배가 나한테 “  그렇게 열심히 ? 굳이 그럴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안타깝게 바라봤다. 내가  학기 내내 사진 인화한다고 암실에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다들  장씩 인화하고 끝냈는데 나는 계속 암실에 있었다. 그제야 내가 여기에 약간 미쳐 있다는  깨달았다.


대학교  사진 수업을 들었는데  독특했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흑백 필름  롤을 나눠주셨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필름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직접 인화해서 전시하는 수업이었다. 전시 결과물이 기말고사였다


그런데 나는  롤도 모자랐다. 찍고 인화한 롤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었다. 다시  찍고 인화하고 다시  찍고 인화했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시까지 얼마  남았는데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쩔  없이 다시 찍어야 했는데 필름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필름이 남은 동기가 있었다. (당시에도 흑백 필름은 구하기 힘들어서 교수님이 미국에서   필름을 학생들에게 주셨다)


흑백 필름을 얻기 위해 그녀의 집에  .
기쁘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던  .
그녀는 나에게 이제는 필요 없다며 
필름  롤을 흔쾌히 줬다.
그리고는 갑자기 비밀연애를 털어놨다.
기묘한 밤이었다.


결국 나는 마음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 차선으로 고른 사진으로 전시했다. 나보다  찍은 사진들이 너무 많아  우울했다. 전시가 끝나고 암실 벽보에 공개적으로 성적표가 붙었다. 그걸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에이뿔이었다. 교수님은 아셨던 걸까. 나의 광기를.


가끔 이렇게 여름이 느껴지는 밤이면 연애 듣던  밤이 생각난다.  그녀는 나에게 비밀연애를 털어놨을까. 결국 학과에 모든 아이들이  알았지만.


이후 나는 사진에 열광했지만 결혼하고 아이 놓으면서 사진 찍기가 재미없어졌다. 그런데 요즘 필름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고 싶다. 이제 자유인이 돼서일까. 어두운 암실에서 더듬더듬 사진을 인화하고 싶은 날이다.



#내가 잠시 미쳤다는 것을

#비밀연애 듣던 그 밤

#갑자기 다시 사진 찍고 싶은 밤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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