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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학 Jan 03. 2020

언제부터 새해가 무겁게 느껴졌다

진정으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

오!... 사!... 삼!... 이!... 일!


“해피 뉴 이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온 거리에서 들려온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가 무색할 정도로 그 열기는 뜨거웠다. 스무 살이 된 사람들은 한껏 꾸며 설렘 가득한 얼굴로 술집을 들어가고, 중후한 사람들은 서로의 고생들을 격려하며 토닥이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해라는 핑계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송년회와 같은 특별한 모임들로 그 순간들을 기념하면서 들뜬 모습들을 보이기도 한다.


친구들과 술잔을 들며 건배를 외쳤던 나도 어느새 번화가를 피해 동네에서 소중한 사람과 조용히 한 해를 준비했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는 청춘들이 즐길 수 있도록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지금의 모습에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마냥 기대하고 즐겁기만 하던 신년이 이제는 조금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이루지 못한 것과 헛되이 보낸 시간들을 자책하기도 하고, 작지만 조금의 변화로 한 걸음 나아간 자신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당찬 각오와 다짐으로 무장한다.


어렸을 땐,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떡국을 몇 그릇 먹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결국 남겨서 혼났던 기억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얻고 싶었다. 그런 갈망과는 다르게 시간은 너무도 느리게 갔고 한 해는 물론이고 하루 자체가 너무나 길었다.


지금의 나는 매일 밤마다 자기 전에 생각한다. 하루가 너무 짧고 24시간이 너무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나의 시간에는 가속이 붙었고 언제부터는 그 물살이 너무도 거세게 몰아쳐 무력하게 휩쓸려 가버리는 기분이다. 생일이 반갑지만은 않고 체력도 조금씩 줄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아직은 젊다고 소리치지만 우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 바라본 지금의 내 나이는 어른이었다. 나이의 숫자는 더욱 빠르게만 불리는데 나는 아직 어른스럽지 않았다. 여전히 철없이 굴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만 시간은 그런 나에게 확인사살이라도 하는 듯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어른이 되기를 바라던 순수함은 찾아볼 수 없고, 미래에 대한 호기심 또한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살지만 비교하며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감까지 잃어가는 나만 남았다. 결국은 새해가 두려움의 무게로 나를 압박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걱정의 구렁텅이에 빠지려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 말을 되뇐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척도일 뿐으로 나이가 많다고 대단한 것이 아니고, 나이가 어려도 배울 점은 많다. 절대로 멈추지 않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면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흐르는 시간에 그저 몸을 맡겨 흘러간다면 숫자만 올라간 어른 껍데기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며 자책하기에 그치고 결국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늙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쩌면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슈테판 츠파이크-


독일의 한 소설가가 한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말은 단순히 그 숫자만이 오르는 늙음이 아닌,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을 때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후회와 실망으로 쓰러지지 않고 잘못을 인정해 변화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나 미래를 준비할 때. 비로소 떡국을 한 그릇 먹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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