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설날이면 한 살이라도 더 먹겠다며 떡국을 두 그릇씩 먹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올라가며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먹는 어른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갈망했던 것일까. 부모님의 걱정, 학교의 교칙들... 그 시절의 나는 미성년자라는 수식어에 늘 갇혀있다고 억울해했던 것 같다.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고 어느덧 28살이 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자유를 찾아 헤매고 있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느끼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이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어디를 가도 어리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어른이라는 로망을 향해 나를 데려갔다. 다만, 그 도착지가 생각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지만... 꿈꾸던 자유에는 책임이라는 무게가 있었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져야만 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힘이 한참 부족하게 느껴졌다. 결국, 하나둘씩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손에서 놓기 시작했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면, 침대에 누워 놓았던 것들을 아쉬워하고 후회하기도 했지만, 막상 다시 잡을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다.
무언갈 이루고 나아가야 하는 시기에 무언가 포기만 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덩그러니 방에 남은 나는 어느덧 내 자신마저 놓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어느 주말, 멍하니 TV를 틀고 채널들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 영화채널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외국영화였는데, 주인공이 하는 대사의 자막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대사는 한심하다 자신을 질책하던 나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날리는 것처럼 다가왔다. 주인공의 시선은 애써 건네는 위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심을 담은 안타까움이었다. 언제부터 난 나를 실패자로 몰아가고 있었는가. 어릴 적 어른이 되면,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꿈꾸던 모습은 어디갔는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난 실패를 한 것이 아니라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이다. 네가 할 수 있겠냐며 나를 의심하는 타인의 시선. 지금 네가 그럴 나이냐는 한심함이 가득한 시선. 그리고 그런 시선 때문에 실패하면 받을 질책부터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나 자신의 시선. 그리고 포기.
분명 나의 도전은 시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멈춰있던 내가 달리기 시작하여 얻는 관성의 법칙 같은 것이다. 잠깐 뒤로 주춤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걱정, 근심, 한심함 뒤에 무언가 도전하는 뜨거움을 응원하고, 열정을 얻어가고, 성공을 축하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이 기다리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뿐이다.
지금이라도 천천히 자유를 향해 나아가 볼까 한다. 떡국 두 그릇 먹는다고 진짜 나이를 더 먹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열심히 꿈꾸고 도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버린 것처럼 원하는 내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터무니없는 도전도 마다하지 않을 용기를 가져보자. 우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