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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욱 Nov 06. 2023

소 돌볼 사람을 구한다고요?

비거니즘 계간지 〈물결〉 2022년 겨울호 - 보금자리

“소 돌볼 사람을 구한다고요?” 


이것이 동물해방물결에 처음 보냈던 이메일의 제목이다. “시골에서 소 6명을 키울 적임자는 바로 저희입니다!”하고 당찬 포부를 밝힌 요청 글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착할 집도 없었고, 농사지을 텃밭도 없었다. 그럼에도 자급자족에 대한 열정만은 가득했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는 캐나다에 있었고, 한국행을 결심한 지는 벌써 3년이 넘었다. 캐나다 난민 수용과 코로나19로 인해 이민국 민원 처리 속도는 현저하게 더뎌졌고, 비자와 백신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한-캐 무비자 협정이 재개된 시기를 틈타 지금이 아니면 못 갈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급히 캐나다 보금자리를 정리하고, 미국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귀국했다. 비장했던 그 순간도 우리 네 식구는 늘 함께였다.


귀국 후 잠정적으로 예정했던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는 ‘원전 혜택을 받는 지역’이라 고개를 돌려야 했고, ‘농촌에서 살아보기’에 당첨되는 행운으로 정착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가 이 은퇴자 마을에서는 원하는 자급농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 포기도 했으며, 지리산 생태마을 디자인 한 달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했다가 ‘유아 동반 텐트 살이’에 대한 불확신 때문에 참가 자격을 그대로 반납하는 등, 짧은 시간에 연거푸 세 차례 고배를 마시면서 충만하던 자신감은 점차 줄고 약간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올 것이 왔다. 한 해 먼저 밀양에 자리 잡고 자급을 연구하고 있던 다님∙기완 님으로 부터 소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물해방물결과는 전혀 일면도 없고, 꽃풀소 소식도 자세히 몰랐지만, 머릿속에선 이미 소 아이들과 우리 집의 사람 아이들이 생추어리에서 함께 커갈 즐거운 미래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새 나는 동물해방물결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어 글을 쓰고 있었고, 아내와 협의 후 바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이틀 후, 이지연 대표로부터 연락받았다. 처음 대화하지만 이미 여러 번 인사 나눈 것처럼 너무도 반갑게!  꽃풀소의 보금자리에 살게 되는 첫번째 인간동물 가족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생명 돌봄 노동의 에너지


나는 기후활동가다. 기후활동가라는 타이틀을 사용한 것은 2019년 ‘서울클라이밋세이브’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그전에는 ‘비건포올’이라는 단톡방에서 채식, 동물권, 페미니즘의 정보를 교환하며 인스타를 통해 홀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었을 뿐인데, ‘서울애니멀세이브’로 부터 “클라이밋세이브를 새로 만들려 하니 맡아달라” 요청받았다. 평소 하던 대로 게시물만 올려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어차피 이듬해 한국 갈 계획이니” 괜찮을 것 같아 승낙했다.


처음에는 ‘클라이밋세이브무브먼트’의 영어 자료를 번역해 올리는 작업을 스스로 했다. 그러면서 유튜브〈아파토프로젝트(Apato Project) 비건-기후 채널〉에 영상도 제작해 올리며, 캐나다에서 한국인을 타깃으로 온라인 활동을 열심히 했다. 지금은 쑥쑥 자라고 있는 만 3세, 5세 아이들의 주 양육자로 ‘돌봄’을 전업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만큼 중요한 활동이 바로 ‘생명 돌봄 활동’이라 생각해서, 충분히 ‘기후 활동’을 할 수 없음에도 아주 아쉽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노동이라 하면 ‘경제적 생산 노동’만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명을 생산하는 노동’과 ‘가사∙돌봄 노동’ 같은 ‘사회적 재생산 노동’이 있어야 사회가 구성되고 원활히 돌아간다. 이것은 어느 동물계든 마찬가지다. 전자는 없어도 되지만, 후자는 없어선 안 된다.(비인간동물에게는 전자가 전혀 필요없다. 경제적 생산 노동이라니?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가!) 그래서 내가 하는 가사∙돌봄은 너무 가치 있고 중요한 노동이다. 그러나 인간계에서는 이것으로 전혀 안정된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 ‘가사∙돌봄의 사회화’(즉,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공공비용으로 처리)는 인간동물계의 존속을 위해 지금 꼭 필요하고, 이것은 차별을 없애는 정의로운 전환의 한 방법이다.


가사∙돌봄은 여전히 노동만큼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다행히 이제 나는 내 일만 하면 된다. 꽃풀소의 보금자리에 상주하며 돌봄 노동하면 작게나마 급여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끼면 된다. 이들 소동물과 우리 인간동물을 잘 돌보면 나중에 이 소와 인간 동물 아이들이 잘 자라 세상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살림’의 움직임이 지구를 살릴 것이다.





돈을 적게 버는 것이 목표


1년 전, 미지수 작가님과 인터뷰¹를 했는데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돈을 적게 버는 게 목표예요.”  보통 사람들은 이 말을 전혀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총량으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구 생물 총량을 따져볼 때, 포유류에서 인간과 가축이 차지하는 비율이 96%이고 야생동물은 고작 4%밖에 되지 않는다.² 심각한 불균형이다. 이 96% 중 인간동물은 36%이고, 인간을 위해 키워지는 가축동물은 60%이다. 세계인구가 80억(36%)이니까,³  60%인 가축동물은 인량으로 계산해보면 133억 명이다. 그러면 실제 인구와 합쳐 213억 명. 남은 4%는 약 8.9억쯤 되니, 약 “9억 명” 대 “213억 명”이다. 200억 이상 더 많다.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숫자인가?! 원래 거꾸로 돼야 정상인데, 단일 종(species)이 압도적인 것도 이렇게까지나 압도적일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심각하게 파괴적이고 말살적인 식민의 시스템이다. 인간에 의해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은 이미 파괴되었다.


생물 총량을 통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에 자본의 총량도 이미 넘쳐난다. 자본주의의 급격한 성장은 과거에 비해 우리를 충분히 편리하게 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빈곤한 사람들이 있고 경제 성장에 따라 빈부 격차가 더욱 커지는 이유는, 부(富)가 상위 권력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있을 수가 없다. 지속가능한 후퇴만이 유일한 살길이다.⁴ 인간동물과 비인간존재 모두가 권력을 나누어 가져야한다. 동물도, 식물도, 자연요소들도 모두를 존중하고, 서로 간에 사랑하고 돌보며 지구생명체로서 나 자신과 생태계를 치유해야한다.


“돈을 적게 벌고싶다”는 것은 이미 지구상에 자본은 충분히 넘쳐나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경제를 굴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착안한 것이다. 부의 재분배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돈은 상위 계층으로 부터 끌어내야하고, 돈을 번다면 생존에 꼭 필요한 만큼만 벌면 된다. 배고픈 만큼만 배를 채우는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우리는 지금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나기 때문에 더이상 플라스틱을 생산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이기도 하다. 돈을 필요 이상으로 벌겠다는 것은 생태계 식민화를 지지한다는 것과 같다. 경제 성장은 멈추어야만 한다. 역성장은 생존에 필수 불가결이다.



¹  〈투룸매거진〉 13호, 2022년 1월, 「아이들을 위한 친환경 비건 육아를 실천하는 추현욱, 김지영 부부」

²  〈The Guardian〉, 21 May 2018, 「Humans just 0.01% of all life but have destroyed 83% of wild mammals – study」

³  (자료: 유엔인구기금, UNFPA) 전 세계 인구가 2022년 11월 15일 기준 80억 명을 돌파했다.

⁴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 『가이아의 복수(The Revenge of Gaia)』(세종서적: 2008)





살림의 실천


인천에서 구조된 머위, 메밀, 부들, 엉이, 창포, 미나리 6명의 꽃풀소 중 불의의 사고로 먼저 이별한 미나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이 신월리로 이주했다. 소들을 만난 후 추가 원고를 쓰는 현재, 만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머위는 덩치가 크고 가장 많이 먹고, 메밀은 다른 소들보다 작고 사람을 잘 따르며, 부들은 뿔이 반대로 자랐고 장난을 잘 치고, 검은 소인 엉이와 창포는 항상 둘이서 잘 어울려 다닌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다들 바나나를 좋아한다. 매일 만나다 보니 각각의 개성이 확실한 이 소들의 뒤통수만 봐도 이제 누군지 알 수 있다. 사랑스러운 이 소들의 살림을 잘 유지하고 싶다.


꽃풀소 생추어리는 신월리에서 ‘달뜨는보금자리’로 새 이름을 얻었다. 이 보금자리로 이주한 동물은 소 5명만이 아니다. 현욱, 타샤, 가야, 솔 4명이 캐나다에서 국경을 넘어 이주했다. 현욱과 타샤는 두 인간동물의 양육자인 동시에 다섯 소동물의 양육자이기로 자처했다. 이제 우리 아홉 동물은 신월리에서 함께 생존해야 한다.


나는 우리 일곱 아이들을 똑같이 자연식물식으로 키우고, 똑같이 언스쿨링으로 양육하고, 똑같이 아침저녁으로 눈을 맞추며 사랑으로 인사하고 매일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늘 하듯이 여건이 허락되는 만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하는 삶을 살 것이다. 물론 이 아이들이 크는 데에 많은 분의 도움이 있겠지만, 자급자족적인 삶을 살다 보면 저절로 모든 존재를 위한 생태마을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30년 내다보고 있다. 나무도 많이 심고, 흙집도 짓는다. 이 마을에 이제는 “살림”을 실천하는 뜻 있는 인간동물들이 모여들길 원한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우리가 모두 살림을 실천하는 비건이라는 점이다. ♥︎


나는 이제 달뜨는마을에서 지구생태계를 돌보고, 또 그 안에서 돌봄을 받는다. 생태계에는 태양, 대기, 대지, 물, 광석, 화석연료도 있고, 식물도 있으며,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도 있다. 모두 내 이웃이다. 생태계는 연결된 하나의 몸이다. 이것이 가이아(Gaia), 즉 지구이다. 누구나 제 몸을 소중히 하고 아끼듯, 우리는 내 몸인 이웃을 아껴야 한다.


지구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지구가 아픈 것. 이 당연한 이치를 적용하라. 건강하게 먹고 내 심신이 건강하도록 자기돌봄하고, 내 이웃 생태도 돌아보시라.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면 지구는 건강해진다. 고로 나는 자연으로부터 활력을 얻는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하나의 ‘나’이기 때문에.






필자소개 추현욱

기후정의활동가이자 돌봄노동자. 2014년 김타샤와 결혼하기로 하면서 차츰 일이 시작됐다. 채식주의에 입문하고 비건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모든 존재가 동등한 생태공동체를 꿈꾼다.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심층생태주의에 입각한 글을 자주 쓴다. 유튜브 ApatoProject(아파토프로젝트) 비건-기후 채널을 운영하고, 서울클라이밋세이브 활동을 한다. 현재 강원 인제로 이주하여 꽃풀소 돌보미로 일하고 있다. 지구에 식민적인 인류 문명은 파괴적이다. 존재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을 바꾸는 사람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그래서 활동가로 존재하고, 활동가를 양성하는 돌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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