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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욱 Oct 09. 2024

꽃풀소 돌보미 추현욱의 동물권 이야기 (3부작 묶음)

기후위기기독인연대 뉴스레터 회원활동 섹션

본 글은 기후위기기독인연대(기기연)의 뉴스레터 2023-11-11, 2023-11-23, 2024-12-04 에 수록된 글입니다. 

https://climate-christians.campaignus.me/25/?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6977574&t=board



안녕하세요, 저는 꽃풀소 아빠 추현욱입니다. 국내 최초 소 보금자리인 달뜨는보금자리에서 5명의 홀스타인 얼룩소를 돌보고 있습니다. 저는 동물권에 관한 글을 시리즈로 기고할 예정인데, 3번째 편에서 우리 꽃풀소와 저희 돌보미 가족이 만나게 된 이야기를 전할테니 연재를 기다려주세요.


연재①_동물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제가 다니는 숨탄것들의교회의 임소연 목사님께서 저에게 질문을 던지셨어요. 

“동물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동물권 활동가인데, 지금이야 동물권이 진짜 인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처음에 저는 동물권은 커녕 비건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어요. 비건된 얘기부터 해야할 거 같아요.


처음에 저는 동물권 때문에 비건이 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채식을 하고 싶어하는 아내를 돕고 싶었을 뿐이고, 그의 길에 함께 서서 가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제  아내는 그야말로 동물권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고, 거기에 건강과 지구환경을 위한 것이 뒷받침되어 있었죠. 그러나 저는 매우 특이하게도, 사랑하는 아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함께해서 힘과 용기를 주자는 것이 가장 먼저였고, 왜냐하면 의미도 없는 일을 허투루 할 사람이 아니라서 그가 뭔가를 하고자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다음 이유는 장수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20세기에 태어난 저는 “100살은 거뜬히 사는 요즘 시대에, 22세기의 태양 정도는 보고 죽어야지!” 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22세기, 그것도 2100년을 완전히 채운 2101년에도 살려면 백 살하고도 17년을 더 살아야 해요.  그런 기준이 구체화되면 될수록 저는 반드시 채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동물성식품과 가공식품을 안 먹고 인간동물로서 원초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을 먹으면 병 없이 장수할 수 있거든요. 채식도 그냥 비건이 아니라 자연식물식 이상은 가야 하는 거죠. 아마 저처럼 장수를 위해서 비건이 된 사람은 흔치 않을 거예요. 


우리는 일단 부부 비건이 되었어요. 그리곤 비건을 더 잘하기 위해 사람들과도 얘기 나누고 정보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알면 알수록 그냥 식단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비거니즘은 먹는 것, 입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방식과 사상에 영향을 주었거든요.


처음 저는 비건을 하면서도 동물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에 눈뜨지 못하였고, 충분히 잔인한 영상을 접해도 큰 반응이 없었어요. 마치 제 몸 온 혈관이 기름덩어리로 꽉 막힌 것 처럼, 감수성이 아예 제 몸을 통과하지 못하였죠. 심각했어요. 그런 와중에 역시나 가장 먼저 눈 뜬 건, 건강이었죠. WHO는 가공육과 적색육은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가축에 너무 많은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GMO사료, 닭알에 콜레스테롤, 유제품에 카세인 단백질(카조모르핀), 어류에 중금속과 미세플라스틱 그리고 수많은 오염물질들. 그리고 암협회 등 각종 건강협회와 결탁한 공장식축산업 기업들. 우리가 동물을 먹으면서 병에 걸리고 약의 노예가 되는 것에는 음모가 있구나!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어요. 부정의에 눈 뜨게 되었고, 내가 알던 것이 다 맞지는 않다는 것, 본질적인 부분을 꿰뚫어보고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 그것을 느끼게 되었죠.


거기까지 가니 수많은 부조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눈에 보이게 되었고, 막혀있던 혈관들이 뚫리는 느낌으로, 그동안 꽉 막혔던 뇌의 많은 부분이 드디어 활성화되는 것 같았어요. 저는 내친김에 비건 - 자연식물식 - 로비건 - 프루테리언까지 쭉 단계적, 연속적으로 바뀌었고, 몸은 활력을 찾고 젊어졌으며, 갑자기 머리가 좋아진 느낌이 들었죠. 종차별과 여성차별이 연결되어 크게 인식되었고, 감수성이 깨어났어요. 기후위기와 온갖 착취와 불평등이 인식되었고, 심층생태주의를 접하면서 인간 권력으로 인한 모든 비인간존재에 대한 식민주의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죠. 그런데 이 모든게 비관적이거나 우울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보였고,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순서가 어찌되었건 사람들이 깨어나면 세상은 바뀔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거든요. 자, 그럼 이제 제가 해야할 일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그게 제 소명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이상 인간을 생산하면 안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진심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기때문에 대부분 생태감수성이 깨어나게 됩니다. 그럴 때 그것을 놓치지 말고 바로 지구를 위한 행동을 하나씩 해나가면 오히려 더 큰 파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할 수 있지만 어렵고, 그러나 일단 했다하면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는 활동이 바로 비건입니다. ‘비거니즘’을 그냥 ‘채식하기’로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비거니즘은 그냥 ‘살림’입니다. 모든 생명은 살고자합니다. 죽음은 있을 수 있지만 죽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자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 고기를 먹고 배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환을 이루고, 이것은 자연의 지속가능한 선순환입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닌, 돈을 위한 필요 이상의 죽임이 우리 인간을 통해 일어나고 있고, 이미 기업과 자본에 세뇌된 사람들은 무엇이 부정의와 착취를 양산하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마트에서 동물성식품을 소비함으로써 그들의 죽임 행동에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간접적 살해 청탁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이는 연간 700억 명(命)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네, 그러면 이쯤되면 제가 앞서 왜 동물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심지어 왜 동물권이 인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는지를 말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동물권은 인간동물의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름아닌 인간이 바로 동물이거든요.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뉴스레터에서 전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②_동물권은 인간동물의 기본적 권리


인권. 인간의 기본적 권리. 누구나 알고있습니다. 그 속에 여성의, 아동의, 청소년의, 장애인의, 성소수자의, 농민의, 노동자의, 선주민의, 난민의 권리 등도 존재합니다. 인간은 인권으로 보호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동물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가요?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 입니까? 생태계의 권리 또는 자연의 권리로는 어떤가요? 우리는 인간이기에 앞서, 동물이고, 생태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물권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생명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동물권도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동물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죠.


동물의 영역을 어디까지로 정해야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은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도 ‘동動물物’ - ‘움직이는 생물’로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인간도 동물이라는 걸 망각합니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을 잊으면, 인간이 생태계로부터 분리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인간은 생태계 내에서의 상호작용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인간계를 만들어, 우리는 스스로를 분리하고, 생태계를 ‘외부자’로 보고, 비인간동물의 ‘침입’을 차단하려 합니다.


출처 : https://youtu.be/PiBbV0yyz2Y?si=_os6kBeemPpLf8MC


얼마전 기사에 따르면, 미국 콜로라도주 애스펀리조트의 주방에서 경비원이 흑곰의 펀치를 맞고 약 2m가량 날아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 흑곰은 바로 달아났어요. 이에 따라 콜로라도 야생동물 관리국은 흑곰을 포획해 안락사 시켰습니다. 죽인 이유는 침입했기 때문이고, 먼저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인권이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곰권은 없었습니다. 도망간 곰은 살해의도가 없었음에도 정당방위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여기서 인간이라는 것이 비인간동물에게 권력으로 작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권력이 있으면 죽여도 되는건가? 차별과 불평등은 이곳에서도 존재합니다.


인간 활동에 의해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어, 곰이 먹이를 구하기위해 마을에 종종 내려갑니다. 여기서 ‘공존’의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침입’으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선택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간혹 시골에서 밭작물을 모두 먹어치우고 간 고라니 소식을 듣습니다. 또 밭을 지키기위해 고라니를 죽였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밭주인은 땅을 넘어오면 침입자로 간주해 권력을 행사합니다.


꼭 죽여야만 하는가? 약자인 그들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나와 내 가족과 내 민족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들 종의 생명은?


이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로까지 연결됩니다. 힘(권력)이 있으면 죽여도 되는건가?


우리 민족은 과거에 흑곰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독립운동은 테러(공격)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우리 땅(서식지)를 빼앗긴 일제강점기 36년의 식민지 역사를 우리는 잊어선 안 됩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80억 명입니다. 지구 생물총량으로 볼 때, 전체 포유동물 중 인간과 인간이 먹기위해 키우는 가축이 96%에 달합니다. 야생동물은 고작 4%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지구에 약 20만 년 전 등장한 호모사피엔스는 1만 년 전 농경을 시작하였고, 약 7천 년 전부터는 문명이 시작되었는데, 그때까지 우리는 생물총량의 1%도 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자연계였습니다. 문명 발달 이후, 인류가 권력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비인간존재는 노예가 되고, 우리는 아직도 생태계를 식민화시키고 있습니다.


모두의 터전에 우리는 도로를 놓고 건물을 지으며, 점차로 서식지를 빼앗아 갔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침입한 것인지. 내가 취한 땅은 내가 사유하고, 누가 침범하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걸까요?


우리는 동물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부정할 수 없는 자연의 일부이고, 동물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영역을 인간계라고 하여 자연계와 분리하기를 자처하고, 그것의 일부임을 부정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길이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거부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지구 생명체입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같은 생명체로서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비거니즘을 다른말로 ‘살림’이라고 합니다. 살림의 물결이 일어나면,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해방이 물결처럼 퍼지면,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지구를 살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인간동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만물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만, 또한 비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상상하십시오. 동물해방은 비인간동물만의 해방이 아닙니다. 더없이 많은 해방이 필요한 인간동물의 해방이 포함된 것입니다. 모든 약자들을 위해서 동물해방! 이 땅의 모든 차별과 불평등과 부정의가 사라질 때,기후생태위기도 사라지고, 어린 양과 사자가 함께 뛰노는 세상이 구체화될 것입니다. ❤️



③_생추어리(sanctuary, 성역)를 만들어 가는 일


안녕하세요, 꽃풀소 아빠 추현욱입니다. 꽃풀소들을 만나기 전에는 기후정의 활동가로 소개하고, 동물권 활동을 했습니다. 제가 기후생태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것이 자본주의가 심화시키는 차별과 불평등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민중의 정의(justice)를 깨우는 일이 시급하다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의식 가장 밑바탕에 모든 존재의 권리 회복이 깔리면 그때 비로소 민중은 깨어나게 됩니다. 인간 권력의 힘으로부터 모든 존재가 해방되는 그날. 그것은 우리가 공존하는, 그리 멀지는 않은 미래의 어느 날일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이자, 생태계이자, 자연의 일부임을 모두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권 보장을 말하면서, 동물의 권리, 생태계의 권리, 자연의 권리는 보장하지 않습니다. 모순된 행동입니다. 인간계를 외따로 떼어내는 부작용으로, 우리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권리의식의 혼동’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현 위기는 바로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침해하고, 유린하고, 상실한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인권을 보장받는 것처럼, ‘동물의 권리’와 ‘생태계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를 지구생명체로서 지키고 보장받아야 합니다.  


순서가 어찌 되었든 사람들이 깨어나면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그게 제 소명입니다. 장래에 저의 장수(長壽) 비결이 될 민중을 깨우는 소명은 쉽게 이룩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길게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풀어가야 합니다. ‘인간의 동물권’을 회복하는 어쩌면 가장 어려운 관문에 봉착하였을 때, 제가 동물해방물결을 만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4인 가족은 고국에서 귀촌하고자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는데, 그 시기 동물해방물결은 강원도 인제의 한 시골 마을에 꽃풀소들의 안식처 ‘달뜨는보금자리’를 짓고 있었습니다. 소들이 입주하면 돌볼 사람이 필요했죠. 이 만남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다른 지역에 귀촌해 사는 활동가분들이 저에게 정보를 주었는데, 저는 다짜고짜 이메일로 귀촌 의사를 표했고, 다음날 동물해방물결 대표인 이지연 활동가님과의 전화 통화로 만남이 성사되었죠.


동물해방물결과의 만남은 단순히 구조한 소들을 자연수명이 다할 때까지 돌보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인간 권력에 의해 보장받지 못하는 동물권을 회복하고, 동물해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의의 실현을 통해, 위기를 넘어 모든 존재의 권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로의 꿈을 가시화할 수 있는 토대 정도는 되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이 꽃풀소를 만난 것은 약 3년 전의 일입니다. 인천의 한 불법 개 농장이 철거 결정되면서 200여 목숨의 개는 모두 구조되었지만, 다른 한 켠에 있던 소 15목숨은 도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은 ‘인천소살리기프로젝트’ 모금을 급히 시행하여, 임시보호처를 찾고, 도살 전에 가까스로 6목숨을 구합니다. 이들을 들꽃과 들풀처럼 강인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꽃풀소’라 칭하고, 우리와 같은 숨탄 존재들을 마리 대신 ‘목숨 명(命)’자를 붙여 세기로 합니다. 이들 6명(命)의 이름은 엉이, 창포, 머위, 부들, 메밀, 미나리. 이 중 미나리가 입주 일주일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면서, 5명만 달뜨는보금자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타샤, 딸 가야, 아들 솔의 4인 돌보미 가족은 2022년 11월부터 꽃풀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인간동물 4명, 소동물 5명, 모두 아홉 동물이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지요. 신월리에 위치하여 달뜨는보금자리. 신월리 체험 마을 사업명인 달뜨는마을에서 따온 말입니다. 돌보미 가족이 돌봄을 전담하고 있지만, 그 밖에 수많은 부가적인 업무들은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이 인제-서울 관계인구로 살며, 보금자리 유지∙보수와 운영에 관한 실무 등 수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꽃풀소들을 정기후원하는 살리미분들이 있어 우리의 ‘살림’을 지탱해 주고 있지요.


현재 보통의 육우는 2살이 되면 고기가 되기 위해 도축 당합니다. 뿔이 다 자라지도 않은 아주 어린 소들이죠. 기대수명이 20년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된 나이입니다. 이들은 좋은 육질을 위해 매우 어린 나이에 거세당합니다. 2019년에 태어난 꽃풀소들은 2살이 채 되기도 전에 도살될 운명에 처했으나, 1살 때 극적으로 구조되어 임시보호처에서 2살을 맞았고, 3살이 되기 전에 보금자리로 이주했습니다. 지금은 벌써 4살이 된 이들은 처음에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뿔이 지금보다 덜 자랐고 키가 저보다 약간 작았지만, 지금은 더 성장하여 5명 모두 저보다 크고, 늠름한 외모를 자랑합니다. 몸무게는 이미 1톤을 훌쩍 넘겨서 대동물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요. 이렇게 큰 동물이 당신 앞에서 어리광을 피우고, 콧바람을 내뿜고, 예쁘다며 당신을 핥아준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요? 그들이 당신에게 친구가 되길 원한다면. 그런 종과 종 간의 교감은 인간에게 단절된 자연계와의 연결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곱게 포장된 고기와 자연에 존재하는 비인간동물 간의 생명의 연결고리는 단절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재연결 작업’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구라는 ‘가이아(Gaia)’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된 하나의 ‘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착취와 채굴을 통해 ‘제 살 깎아 먹기’를 하는 중이죠. ‘식인자본주의’라는 말이 있는데요, 말 그대로 ‘자본’에 감염된 우리는 스스로를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쉼 없는 성장과 발전, 편리함만 앞세운 현 체제는 행복의 나라로가 아닌 자멸의 세상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깨어나 식인자본주의에서 벗어납시다. 함께 내 ‘몸’을 돌보아요.


‘돌봄’을 하십시오. ‘서로 돌봄’의 힘을 믿으십시오.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면 지구는 건강해집니다. 고로 나는 자연으로부터 활력을 얻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하나의 ‘나’이기 때문에.


생추어리(sanctuary): 성역(聖域), 거룩한 지역. 안식을 얻는 곳이죠. 우리는 보금자리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지극히 동물이었을 적에는 자연이 보금자리였습니다. 모든 것을 자연에서 취하고 자연에 되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속가능 했죠. 지금은 모든 것을 공장에서 생산하고, ‘돈(자본)’을 내고 얻습니다. 그리고 쓰레기를 대기로, 매립지로, 바다로 켜켜이 쌓아둡니다. 심지어 생명도 공장식으로 나게 하고 죽게 합니다.  


지금 우리의 보금자리는 어디인가요? 너무 멀어져서 보이지도 않고 찾아가는 여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찾아가길 시작하고 있습니다. 생명으로 돌아가기. ‘살림’의 활동을 하는 동물 보금자리가 바로 그곳입니다. 구조된 동물들이 권리를 찾고 여생을 보낼 안식처. 그곳이 더 커지고, 더 많아질수록, 생명이 권리를 찾고, 우리는 제 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더없이 많은 해방이 필요한 인간동물의 해방은 바로 모든 동물이 권리를 찾는, ‘동물해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Gaia)’를 위해, 지구를 위해.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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