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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유식빵 Mar 17. 2024

건네는 일

영화 건네기 1


이준익 <라디오 스타>


학창 시절에는 타블로, 조정린의 <친한친구>를 몇 년간 챙겨 들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성인이 된 이후로는 음악 사이트에서 스트리밍으로 가요만 듣고 있다. 하지만 본가에 내려가면 아직도 거실에는 항상 라디오가 켜져 있다. 라디오 애청자인 엄마는 종종 문자로 사연도 보내는데 DJ가 엄마의 사연을 읽어주면 소녀처럼 기뻐하신다. 우울할 땐 맛있는 거 먹고 힘내라는 짧고 사소한 멘트지만 누군가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멋져 보인다. 그래서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인 최곤이 100회 특집으로 라디오 공개방송을 할 때 라디오 방송으로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을 한 명씩 불러주고 그들의 반가워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 깊었다.


1988년도 가수왕이었지만 약 20년이 지난 현재는 한물간 가수인 최곤. 매니저의 도움으로 겨우 얻게 된 영월 라디오 방송 진행 자리를 우습게 여기며 PD가 주는 대본대로 진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엽서 사연을 읽으며 꽃집 사장님의 고백을 돕고, 전화로 청취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이야기하며 점점 성장한 DJ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결책은 다소 어이없는 것들이지만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만족감을 줬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디오 방송 이름엔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처럼 라디오 DJ의 이름이 들어가고 대본도 있지만 사람들의 사연과 신청곡이 있어야 완성된다. 나를 감추고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소통 창구다. 이때 DJ는 잘 들어주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따뜻함을 건네면 된다. 게스트로 출연했던 소년이 전화 연결되었을 때 최곤이 “어, 호영이구나”라고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처럼. 나긋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드는 일. 보답으로 인기도 얻을 수 있으니 꽤 보람차고 설레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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