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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화 Sep 05. 2024

운동화 사는데 용기가 필요한가?

집을 나설 때면 늘 반복하는 루틴이 있다. ‘이 옷 어때? 괜찮아?’ 이렇게 입고 나가도 되냐고 아내에게 묻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입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아빠! 그건 아니야?’라며 어이없어하는 아내와 딸들 덕분에 생긴 습관이다. 내가 옷 입는 감각이 없음을 그때 알았다. 


‘아니 그 옷 말고 내가 입으라고 꺼내 놓은 것 있잖아 그거 입어.’ 아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외출할 땐 내가 입을 옷을 준비해 놓는다. 군소리 없이 입는다. 아내가 준비한 옷이 제법 잘 어울린다. 역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 장꾸뿐이다.


이십 대 중반에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회사 유니폼은 없었지만, 근무복은 ‘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단정한 복장을 하여야 한다.’란 규정이 있었다.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단정한 복장’이란 건, 검은색이나 감색, 회색 정장에 흰색 셔츠, 넥타이, 검은색 구두를 말했다. 그런 문구가 없었는데도 모두 그렇게 입었다. 취업 전에는 그런 직장인이 부러웠다. 언제쯤 저런 정장을 입고 일할 수 있을까? 했다. 


삼십여 년 동안 원 없이 입었다. 무엇을 입을까 크게 고민하지 않고 살아왔다. 옷을 고르는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 옷이 그 옷이었으니 세탁한 것인가 아닌가, 다림질이 되어있나 정도만 보곤 쓱 걸치고 나갔다. 단체복은 아니었지만 튀지 않을 정도의 감색과 회색이면 무난했다. 주말이나 휴일에 외출할 때도 그 복장이 편했다. 그러다 보니 출근 룩 아니면 운동복, 청바지 정도로 옷 종류가 단출했다. 옷 입는 감각 없음을 굳이 변명하자면 옷 고르는 고민 없이 지나 온 삼십여 년의 세월 탓이라 둘러댄다.


은퇴하고 나니 많은 것이 변했다. 외부 공식행사가 없으니 자연스레 정장은 꺼낼 일이 없어졌다. 가끔 결혼식이나 상갓집 조문할 때뿐이다. 아내가 사준 청바지와 니트 몇 벌이 주로 입는 외출복이다. 그것도 처음엔 어색했다. 신발은 여전히 감색 운동화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변화가 필요했다. ‘군중 속의 나’가 아닌 그냥 ‘나’이고 싶었다. 틀을 벗어나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 첫 도전이 운동화 색을 바꿔 보자였다. 


인터넷 쇼핑몰엔 정말 다양한 컬러의 운동화가 있다. 빨강, 노랑, 파랑, 흰색... 선택은 못하고 고시공부 하듯 상품정보를 읽고 또 읽는다. 한참을 보니 그중 노란색 운동화에 눈이 간다. 색스럽다. 이걸 소화할 수 있을까?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고민해 볼까 하는 잠깐의 주춤거림이 있었지만 과감하게 결재했다. 과감이라는 용기가 필요했다. 운동화 하나 사는데 도전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떠올렸다. 오랜 습관을 벗어버린다는 것이 내겐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화창한 날 청바지에 노란색 운동화를 신고 외출했다. 시선이 자꾸 아래로 간다. 아무도 내게 관심 없다는 것을 알지만, 오늘은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새 운동화의 쿠션이 걸음을 가볍게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노란색 운동화 신은 나를 본 지인들의 반응이 재밌다.  말은 안 하지만 놀란 표정은 감출 수 없다. 나도 도전이지만 보는 이들도 생소한 내 모습에 적응이 필요할 거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잘 어울린다는 립 서비스가 싫지는 않다.


컬러 운동화를 산 것이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다. 옷장을 가득 채운 유니폼 같았던 정장 입을 일이 없어지면서 청바지가 편해졌고, 어울리는 운동화를 찾았을 뿐이다. 노란색 운동화를 신고 나갈 때면 설렌다. 밝은 색이 주는 명랑함도 있다. 도전한 용기에 대한 보상이다. 즐거운 일을 만날 기대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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