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아니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이 아닌 환경에서 맞이하는 첫여름이라 더 덥게 보냈는지도 모른다. 집 창문을 열면 맞바람이 쳐 시원했지만 한낮의 태양을 견디긴 어렵다.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돌렸다 껐다를 반복하니 체온도 춤을 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니 냉방병이온 건지으쓸으쓸하고 코도 맹맹하다.
작년엔 하루종일 에어컨 환경에서 일하며 지냈어도 냉방병을 모르고 보냈는데 1년 새 이렇게 체력이 떨어졌나? 긴장이 풀린 탓일까? 은퇴하면 육체와 정신이 급격히 꺾인다는데 나도 그런가? 별생각이 다 든다.
평일 낮이지만 병원은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여름 감기환자가 나만은 아닌가 보다. 약을 처방받고 며칠 환자 유세를 한 껏 부렸다. 환자 수발을 정성으로 들던 아내가 바통터치를 하더니 몸져누웠다. 그날 오후 아내가 아픈 걸 안 큰 딸 림이가 전화로 성화가 대단하다. 아빠가 잘해주라며 이것저것 주문이 많다. 나도 환자였는데 그때 알릴 걸 잘못했다. 왠지 손해 본 느낌이다.
저녁이 다 될 때쯤 전화가 왔다. 림이다. 삼계탕을 주문했으니 맛있게 드시란다. 어제 아내가 끓여놓은 국을 데우려던 참인데 잘됐다. 초인종이 울리고 삼계탕이 배달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능이버섯 삼계탕이다. 아픈 엄마를 위한 또 요리 못하는 나를 위한 울 딸의 배려가 고맙다.
능이버섯이 짙은 색으로 우러난 삼계탕이다. 따끈한 국물을 마시니 후끈 열이 오른다. 맛있게 먹었다. 아내도 기운이 난단다. 남은 삼계탕으로 한두 끼는 더 먹을 수 있으니 뭘 먹을까 하는 고민도 해결이다.
식탁을 정리하고 삼계탕을 담아 온 봉투를 분리수거 박스에 넣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봉투에 흰 종이가 매달린 게 보였다. 영수증이다. 무심코 종이를 떼 버리려다 삼계탕 가격이 궁금해 보니 뭔가 다른 게 있다. '부모님이 드실 건데요! ㅎㅎ 건강하고 맛나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란 문구다. 순간 맘이 찡하다. 울 딸이 가게 사장님께 한 요청사항이 영수증에 인쇄되어 있었다. 능이버섯 삼계탕에 이어 연타로 감동이다. 맛있음을 더해 건강해진 기분이다.
영수증에 메시지가 담겨있을 줄은 몰랐다. 무심히 버려졌다면 울 딸의 마음을 알지 못했을 거다. 영수증을 버리지 못하고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울 딸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수많은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발견해 감동이며 또 모르고 되돌려 보냈을 편지에 미안하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보낸 사랑의 답장을 받아 기쁜 날이다. 앞으론 숨바꼭질 같은 사랑 표현을 잘 찾아내는 술래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