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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Oct 01. 2023

천국으로 가는 방법

story 6. 날개 없는 천사를 만나는 것

오 천사님,
당신의 날개는 누구에게 나누어주었나요?

2019.10.17 (08:00) Puenta de Reina-Estella (17:40) (23km)


어젯밤에 머문 알베르게엔 리카르도와 나 둘 뿐이었다. 하나의 빈 침대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밤 새 각자의 베개를 끌어안고 수다를 떨었다. 일기를 적는 나를 지켜보며 실실 장난을 치던 그는 나에게 어떤 글을 적었느냐 물었고, 나는 매일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고 말하니 리카르도는 얼굴에 화색을 띄며 흥미로워했고, Big Question에 대한 질문과 답을 주고받다 새벽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새벽을 함께하면 으레 느낄 수 있는 야릇한 어색함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 평생을 지구 반대편에 살던 누군가를 만나 하룻밤 사이 나의 비밀을 나눌 수 있는 곳.

Estella에서 출발하던 날의 아침, 일찍이 문을 연 상점의 불빛이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발목이 도톰하게 부풀어있다. 조금 쉬어야 마땅한 일일 터인데 이상하게도 발목의 통증보다 헤어지게 되는 일이 더 아쉬웠다. Puenta de Reina는 이틀 밤을 머물 만큼 큰 동네도 아니었거니와, 순례길에 오른 지 5일도 채 안 됐는데 벌써부터 늑장 부릴 수도 없었다. 해서 큰 숨을 들이마시고는 길을 나섰는데, 23km를 걷는 데에 장작 10시간이 가까이 걸렸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그저 다음 발걸음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걸었다. 의식을 흘려보내며 그저 뚜벅뚜벅, 혹은 절뚝절뚝 걸었다.

Estella로 가는 풍경은 건물도, 자갈밭도 모두 밀밭의 색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이고 바뀌는 풍경들. 하늘도 땅도, 지루할 틈 없는 풍경이다.

하릴없이 걸어 발바닥 밑창에 불이 나고 발목의 통증이 견딜 수 없을 만큼이 되었을 때 즈음 Estella에 도착했다. 제법 큰 도시였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못했는데, 신기하게도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어젯밤 함께했던 리카르도를 만났다. 알베르게는 정해진 가격 없이 순례자의 기부로 운영되는 곳. 호세라는 이름의 장년의 아저씨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미소 지은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주름살은 그가 평생을 얼마나 친절하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듯했고, 그의 투박한 손과 어정거리는 듯한 걸음걸이는 내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주었다.

저녁과 함께 마실 와인을 사오던 길. 애주가인 나는 술이 물보다 싼 스페인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호세아저씨가 저녁을 만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한 사이에, 함께 나누어 먹으려 와인을 한 병 사러 나갔다. 2유로도 채 하지 않는 와인 한 병을 사들고는 알베르게로 돌아가니 파스타를 한 솥을 끓여놓았다. 사과파이를 구웠다며 그 큰 손으로 오븐 장갑을 끼고는 나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겠지. 미소도 음식도 그 손과 품도 모두 다 함빡 이었던 호세 아저씨는 어쩌면 날개조차 누군가에게 나누어 준 천사 아니었을까.

호세 아저씨가 만들어준 파스타와 애플파이

리카르도와 레지나와 함께 파스타를 나누어 먹고, 알베르게 마당 앞에 놓인 간이 테이블에 앉아 서로 사온 와인을 나누어마셨다. 화장하지 않은 나의 맨 얼굴을 카미노 위에서 비로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자, 자유로운 잠자리에 뉘며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자신에게 그와 같은 의미라고 대답하는 리카르도. 우리는 어쩌면, 우리 안에 이미 있었던 것들을 찾으러 순례길 위에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이야기했다. 잃어버린 것들이 아니라, 잊혀진 것들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닐까 하고.

호세 아저씨와 리카르도. 잠깐동안 나를 천국에 데려가 준 날개 없는 천사들.

순례길 위에서 많은 의미들을 마주한다. 나에게 오는 모든 이들의 아름다움, 나에게 베풀어주는 모든 친절과 미소를 만난다. 꽃밭에 가는 방법은 나의 주변을 꽃으로 장식하는 것. 천국에 가는 방법은 천사를 만나는 것. 이 기회를 빌어 나의 길 위에 있었던 모든 천사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
Question 6.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야?

참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지겨워 사직서를 내던지고 왔는데도 왜인지 모르게 회사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다. 모두들 잘 지내려나, 무탈하려나 하는 생각 또는 지난 회사 생활의 추억 같은 것들. 내가 뭐라고, 참 오지랖도 넓다. 가족들 생각도 많이 난다. 지구는 이렇게 넓고 세상과 사람은 이토록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나 혼자만 느끼기엔 미안하고 아쉬워진다. 모든 유한한 것들에 대한 생각. 언젠간 아쉬운 헤어짐이 있으리라는 생각. 그래서 더 그리워지고 슬퍼지는 마음을 만드는 이들이 보고 싶어 진다. 그들을 뒤로하고 떠나온 만큼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또 느끼고 돌아가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나의 길 위에 그런 아쉬움들을 뒤로할 수 있는 깨달음이 있기를,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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