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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06. 2024

곯은 배와 영혼으로

story 11. 우린 하루도 살아갈 수 없으니까

세상엔 보고 듣고 느껴야 할 일들이 더없이 많기에, 곯은 배와 주린 영혼으로 살기엔 너무도 가혹하질 않은가.

2019.10.22 (07:40) Azofra - Sto Domingo de la Canzada (11:30) (15km)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은 방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밤을 지새우기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화라도 나눌 수 있으면 어색함을 무찔러나 보겠는데 언어조차 통하질 않으니 순탄치 않았다. 그런 상황에 서툰 나는 그녀의 고향이 프랑스라는 것에 생각이 닿았는데 그로써 꺼내진 말이 고작 ‘J’aime croissants, (나는 좋아해요 크로와상)’이었다. 프랑스라면 파리만 하더라도 에펠탑과 센강이 눈에 선하고, 책을 읽고 있던 그녀를 위해 알베르 카뮈를 생각했을 법도 한데 고작 ‘크로와상’이라니. 아무리 제과 종주국이라 불린대도 빵이라는 것이 고작 ‘크로와상’만 있지는 않을진대 싱겁게도 그 말이 튀어나왔다. 분명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건넨 말인데 그녀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크로와상?’하며 되려 되묻기에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직감한 나는 나의 발음이 처참히 뭉개져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녀는 마침내 나의 ‘크로와상’의 정체를 깨닫고 온 얼굴에 화색을 띠며 말했다. ‘콰-쌍!’


밤늦게까지 크로와상, 그러니까 ‘콰-쐉’의 여운을 뇌까리다 잠에 들었던 탓인지 유독 크로와상으로 아침 배를 채우고 싶었다. 제법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서 갓 구운 크로와상을 맛볼 수 있었다. 겹겹이 바삭한 식감과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버터향을 음미하며 속으로 ‘콰-쐉, 콰아쐉’하고 그녀의 발음을 따라 했다. 대관절 프랑스의 ‘콰쐉’은 어떻게 한국의 ‘크로와상’이 되었는가 생각하면서.

cirueña로 향하던 길

달큼하게 속을 채워 넣고는 cirueña로 향했다. 길섶에 키 높은 풀이 허리께까지 올라 울타리를 이룬 곧게 뻗은 길 위로 작은 자갈들이 투박한 내 등산화 밑에서 자그락 자그락 거렸다. 하늘은 흐렸지만 제법 서늘한 공기는 갓 씻은 푸성귀처럼 싱그러웠다. 산산히 느껴지는 날씨를 기분 좋게 즐기려는데 어울리지 않는 알싸한 통증이 아랫배를 뚫고 지나갔다. 끓기 시작하는 복통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두두룩 흘러내렸다.


어제 먹은 거라곤 파비엔과 나눠먹은 빵 몇 조각과 직접 해먹은 파스타뿐인데, 음식이 어딘가 잘못되었던 탓인지 얼큰한 한국 음식을 너무도 격렬히 그리워한 탓인지 배탈이 났다. 새벽부터 배가 좋질 않았는데 본래 속병이 흔한 터라 예삿일로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 얼마동안이나 부글거릴지 모를 뜨거운 속을 가라앉힐 겸 결국은 Sto Domingo de la Canzada에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멀리 보이는 마을

11시 30분이 조금 안돼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15km 정도 이동한 셈이다. 몇 사람들은 하루에 30km가 육박할 정도로 걷는다고도 하니, 그에 비하자면 내 걸음은 무척이나 느리지만 마음 급하게 생각할 것 하나 없다. 나의 속도를 따르지 않으면 결국엔 어딘가 고장 나기 마련일 테니까. 조바심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조금씩 배워가는 날들이다. 그 감정들과 비례해 더디게 나아가는 나를 스쳐 지나는 다른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익숙해지는 날들이기도 하다. 다시 만나고 싶은 누군가와의 재회를 포기하는 것만큼 멈춤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짐을 내려놓았는데 7km 거리를 더 지나는 Grañon 에서나 만날 줄 알았던 히카르도와 키도, 애린 씨를 다시 만났다. ‘역시 사람의 인연은 뜻하지 않을 때 다시 이어지곤 하는가 보다’ 라며 제법 근사한 생각을 했는데 그와는 별개로 재회의 반가움은 고사하고서 뒤틀려오는 아랫배에 다리를 꼬아가며 화장실로 버적버적 걸어가야만 했다.

산티아고까지, 563km

속을 전부 비워내니 음식 생각이 간절했다. 본래 아프면 음식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마땅한 일일 텐데 깔끔히 내보냈는지 그새 나아진 모양이었다. 알베르게 안에 제법 넓은 부엌이 마련되어 있어 요리를 해 먹을 장도 보고 추워진 날씨에 방한용품도 마련할 겸 개운히 씻고 마실을 나섰다. 근처에 큰 중국인 마트가 있기에 먼저 들러 패딩, 비니, 장갑, 방한목도리를 샀지만 날이 풀린다고 말해주는 몇몇 순례자들의 설유 끝에 패딩은 환불했다. 카운터 여직원은 환불 절차를 그다지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신라면 세 봉지를 들고서 천진하게 서 있는 내 낯짝이 염치라는 것이 통하지 않을 만큼 뚱멍스러워 보였는지 입을 다무는 눈치였다.

중국인 마트에서 구해온 신라면. 아, 한국인의 소울푸드.

그러고는 마트에서 장을 봐서 돌아와 요리를 하고 다 함께 나누어 먹었다. 나는 어제 만들었던 같은 메뉴에 살짝 구운 바게트를 준비했고, 히카르도는 양송이버섯의 줄기를 빼낸 자리에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과 소금으로 간을 한 양송이 타파스를 만들었다. 음식을 늘어놓은 식탁이 서로의 이야기와 삶을 나누는 공명판처럼 울렸다. 투명한 잔 위로 붉은 와인이 연거푸 채워졌고 음식 사이를 헤집는 식기의 금속성 소리가 그릇 위를 오갔다. 숙소에 와서 요리를 하고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는 것을 즐기는 이유다. 음식을, 술잔을, 눈빛과 몸짓과 이야기를, 그 시간과 순간의 생명력을 나눈다.


세상엔 보고 듣고 느껴야 할 일들이 더없이 많기에, 곯은 배와 주린 영혼으로 살기엔 너무도 가혹하질 않은가. 음식과 술이 언제 어디서나 나누어지는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것들을 홀로 견디기엔 우린 너무도 외로운 존재들이기에 서로에게 기울어지기 마련이라고.

식사라는 공명판 위에서 나눴던 음식들

이른 저녁을 마치고 마을을 조금 더 돌아다녀보고 싶었지만 마음을 접고 침대 속에 몸을 묻었다.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너무 추웠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몸도 따라 떨려왔다. 체온이 옮겨 붙어 푸근히 데워진 이불속에서 부른 배에 잠이 쏟아져 결국은 곯아떨어지고 말았는데, 2층 침대가 간간히 벌컥벌컥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놀란 마음에 살펴보니 1층 침대를 차지한 K군의 잠꼬대가 필사적이다. 잠에 들라치면 솟아대는 침대에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잠잠히 K군의 몸짓을 살폈다. 양쪽 발을 번갈아가며 찬찬히 구부리더니, 더는 구부러지지 않을 때 즈음 한참을 웅크리고 있다가 예고도 없이 튀어 오른다. 어떤 필사의 마음들이 오늘 하루 먼 길을 걸어온 그의 발을 멈추지 못하게 할까. 잠깐이나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새벽 내 계속되는 발차기가 이어지니 질려버린 나는 이내 K군에게 고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다음 날 아침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해맑게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숙면의 욕심은 내려놓은 지 오래다.


Question 11. 돌아가면 뭘 제일 먼저 하고 싶어?

비가 오니 날이 많이 추워졌다.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목욕탕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따라 목욕탕을 가는 것을 좋아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면 어린 마음에 답답한 공기와 일련의 지루함들이 즐거웠다. 그 모순이라니. 그 곤욕의 시간들을 모두 견뎌내고 묵은 때까지 벗기고 나면 새빨간 피부를 달고 냉탕에 빠져들곤 했었다. 그 모든 것들을 반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작은 인간으로 돌아가 엄마의 품에 쏙 안기는 아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 쓰게 웃어내고는 '추운 아침 일찍 나가,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싶다. 목욕이 끝나면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그리고 떡볶이 먹고 싶다.'라고 고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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