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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16. 2024

혼자라는 것은

story 14. 항상 함께일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일들은 당연한 일이잖아
때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때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서
살아가는 거야 누구나 그런 거야 - ♪[관계, 한동근]

2019.10.25 (08:30) San Juan de Ortega - Brugos (16:00) (27km)

2019.10.26 (--:--) Brugos, Day off (--:--) (0km)


Brugos로 향하는 길의 표지판

적막한 시골의 밤은 유독 이르게 찾아왔지만 캄캄한 중에도 공기는 포근했다. 살금대는 소리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홀로 머물던 호텔방보다 금세 잠이 들었다. San Juan de Ortega를 나서 길에 오르니 표지판이 나뉘어있다. 하나의 길을 기점으로 왔던 길과 가야 할 길의 방향이 각기 다르게 적혀있다. 돌아가는 선택지가 없는 나는 그저 앞을 보고 걷고 걸었다.

새벽녘이 물러나던 오전 여덟 시 반, 비행운이 하늘에 띠를 놓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27km를 걸어 Brugos로 향한다. 프랑스 Saint Jean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Brugos까지 '육체의 길', Brugos에서 Astroga까지 '마음의 길'. Astroga에서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정신의 길'로 나뉘어 불리곤 한다. Saint Jean부터 Brugos까지 '육체의 길'로 분류되는 까닭은 단연 순례자들이 신체적 한계를 체험하는 것에 있다. 고요하던 팔다리를 휘둘러 피레네를 넘어야 하며, 들끓는 근육통을 가라앉히고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한다. 페르돈 고개에서 발목까지 반납한 나로선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작명이다. 육체의 길을 잘 마무리한 나를 위해 Brugos에서 하루를 쉬어갈 생각으로 풍경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어린 송아지들에겐 언제쯤 뿔이 자랄까
까만 먹물 웅덩이에 발과 입을 콩 찧은듯한 무늬의 양 떼들

오전동안 Arlanzón부터 Cardeñuela Riopico를 통과하기까지 숲길과 산길을 따라 우사가 따로 없는 짐승들이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다녔다. 암소의 눈이 당장이라도 송아지를 낳을 것처럼 빛나고 둥글었다. 발굽을 달고서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짐승이 신통해 쉽사리 지나칠 수 없었다. 자연이 기르고 사람이 도왔을 저들의 생장은 언젠가 사람에 의해 눈을 감게 될는지.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는 무심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에 공연히 마음이 미안했다. 주둥이를 풀에서 떼지 않으면서도 곁눈질로 나의 존재를 슬금슬금 살피며 물러나는 무리들과 의도치 않는 줄다리기를 했다. 그들의 목에 달린 투박한 종들이 통, 통거리며 울렸다.

멀리 내려 깔린 먹구름을  물리치며 걸어간다

걷다가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올 때 즈음이면 곧이어 'Buen Camino(부엔 카미노)'라는 인사말이 뒤를 따른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십 번씩 듣는 인사말이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투박한 인사에 뒤를 돌아보니 인상 좋은 노부부가 살금 웃으며 다가왔다. 주름 속에서 웃음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아까 보았던 암소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걸음이 느린 나를 노부부가 스쳐 지나간 후에 한참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따라 걸었다. 장난 섞인 몸짓과 저들의 말로 나누는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풀소리와 함께 잔잔히 바람을 타고 왔다.

차곡히 쌓여있는 누군가의 염원들
산티아고까지 519km

다다랐을 때 즈음 어디서부터 잘못 들었는지 길을 헤매다 차도로 걸었다. 차가 쌩하니 달리는 도로 옆이 카미노라니. 표시석을 찾아 한참을 두리번거렸지만 보이지 않아 다른 순례자들의 뒤를 따랐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것을 보니 이 길이 부르고스로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인 듯 싶었다. 혹은 다 같이 잘못 들었거나. 뭐가 됐든 혼자는 아니니 다행한 일이었을까.


네시가 조금 지나지 않아 숙소에 도착했다. 경첩이 헐거워져 자꾸만 흘러내리는 탓에 안경점엘 들를 참으로 손빨래를 넣어놓곤 급히 길을 나섰다. 안경을 맡겨두고서 동네 구경이나 할 겸 돌아다니는데, 시력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낯익은 얼굴이(혹은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순례길 첫날을 의지했던 동료를 어찌 잊을까. 일행들과 맥주를 기울이고 있던 스티브도 날 발견하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 조우를 바라보던 일행들. 입을 딱 벌리고 그를 바라보던 나. 그 모든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지나쳤다. 함께 앉아있던 중년의 부부는 순례자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개리는 부르고스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영국인이며 (그래서 우연히 들려온 스티브의 영국식 발음에 마음을 연 모양이었다.) 그런 영어 강사에 마음을 빼앗긴 아내 P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얼마나 절절한 서막이며 사랑의 순례인지. 내 머릿속에서 그들의 등에 배낭을 달고 멋대로 순례자의 이름을 달았다.

스티브가 대접해 준 양고기

불현듯 다음날 아침을 함께하자는 제안. 우리는 아침식사를 위한 준비물을 하나씩 부여받고 자리를 일어섰다. 스티브 A; 에그맨. 스티브 (동명이인) B; 베이컨 맨. JJ (나) ; 치즈걸. 각 재료를 맡아 내일 9시에 개리 부부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자리를 일어섰다. 그 길로 곧장 마트에 들러 함께 장을 보고는, 스티브(A)의 제안으로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값비싼 레스토랑으로 보이는 대문 앞에서 우물쭈물 발을 구르고 있으려니 그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돈 걱정은 말라는 스티브의 만류에 얻어먹는 것이 익숙지 않은 나는 수프나 샐러드 따위를 시키려 했지만 '카미노를 걸으려면 고기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으로 결국 3명이서 20만 원어치 양고기를 먹었다. 오늘 하루 종일 양 떼의 뒤를 밟으며 다디단 눈빛을 달고 다녔던 내 마음을 스티브는 알 턱이 없었겠지. 내 앞에 노릇하게 구워진 양고기가 오늘 내가 만났던 양들 중 한 마리 사촌의 엉덩이쯤일까, 하고 멍하게 바라보다 한입을 베어 먹고부터는 그 부드럽고 녹진한 육즙에 빠져 무아경에 들었다. 무거운 몸과 달랑거리는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와서는 큰 침대에 혼자 누워 잠을 잤다. 자꾸만 꿈을 꾸고 깼는데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고양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P가 구워온 아침식사

아침에 일어나 치즈와 베이컨이 담겨있는 장바구니를 들고는 개리부부의 집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P는 식빵 위에 마늘과 치즈를 얹어 구운 빵을 바삭하게 구워왔고 두 명의 스티브와 개리가 브랜디를 곁들여 먹는 동안 나는 커피를 마셨다. (아침부터) 또다시 얼근하게 취해가는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Cat'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쫓아다녔다. 고양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이 얼마나 정직한 이름인가.

부르고스 도심을 걷다 만난 알록달록한 광장

시내로 돌아오며 오랜 친구 R군과 통화를 했다. R군의 말투에서 한국의 토요일 오후를 담은 소리가 들려 공연스럽게 간지러운 마음이 향수(鄕愁)를 데리고 왔다. 종일 한국에 남기고 떠나온 사람들을 많이 생각했다. 시내를 걸으며 만나는 나뭇가지들이 연리지를 이루고 있었다. 나무도 저들끼리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들로 도심을 한참 동안 배회하다 별안간 화장품을 샀다. 짐의 무게 때문에 작은 연고조차 챙기지 못했는데 화장품이라니, 맹랑하기도 하지. 사람들을 그리워하다 못해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의 나라도 되돌리고 싶었던 모양이었나.

부르고스 대성당 내부부르고스 대성당, 스페인의 3대 성당이자 세계유산이라고 한다.

성당은 넓고, 볼 것도 많았다. 나눠주는 작은 오디오북을 얼떨결에 받긴 했는데 음질이 구겨진 이어폰에 집중하자니 미간이 절로 구겨져서 덮어두고 즐겼다. 향수 때문인지, 복닥이는 사람들 때문인지, 웅장한 성당의 기개 때문인지 몰라도 계속해서 울컥하는 마음을 부지런히 가라앉혀야만 했다.

깔라 말리(오징어튀김)과 타바스, 그리고 맥주

저녁 7시엔 미사에 참석했다. 부르고스 대성당에서의 성대한 향로 미사를 기대했으나 마지막 기도문까지 향로는 타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향로를 태우는 데만도 적지 않은 돈이 든다고 하니 때가 아닌 모양이었다. 향로는 없었지만 그 성대함만으로도 몸에 자꾸만 전율이 일었다. 적적한 마음을 위로받고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익숙한 모국어가 들려온다. 서로 옆에 앉아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란'언니를 알게 되었고 이럴게 아니라 맥주 한 잔 하겠냐고 묻기에 저녁이 아직이었던 나는 옳거니 하고 뒤를 따랐다.


그러니, 잠에 들기 전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향수는 왜 오는가 싶었다. 어제도 스티브와 함께였고, 오늘 아침엔 개리와 P, 고양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였으며, R군과의 통화로 또다시 함께였고, 란 언니와의 저녁식사에도 함께였으니. 순례길이라는 여행으로 잠깐 있다 갈 객인의 마음이어서일까.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길 위에 마음 둘 곳 없어서일까. 살아가며 겪는 그 모든 길 위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래서인가. 희부윰하게 흩어지는 잔상들 위에서 잠에 들었다.


Question 14. 관계 속의 너는 어떤 사람일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와의 관계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형용할 수가 없는데. '나'라는 사람으로서 연결되는 일련의 생각들이 하루에도 몇 십 번씩 고쳐지는 날들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딸이며 형제이고 친구이자 동료인지 뾰족히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본다. 난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마음이 미안해진다. 난 그들에게 어떤 사람일까. 하루 종일 향했던 마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눈을 감은 까만 배경에 둥실둥실 떠오른다. 난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인내심을 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자고. 그전에 여기선 나를 만나자고 생각한다. 나와의 관계에서부터 조금 더 친해지자고. 그렇게 나에게 좋은 길이 되길,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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