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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19. 2024

여자들의 우정은 수다다

갱년기 지나 만난 친구들

2월의 햇살이 방 간 깊숙하게 들어왔다.


잠이 오지 않는 불면의 밤이었다. 밤새 갱년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 갱년기 지나고 만난 여자들의 우정에 관한 긴 글을 써놓고 새벽에 손을 보려다 그만 날려먹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런, 빌어 먹을! 벽녁에 졸려서 눈은 자꾸 감기는데 계속 저장했던 글을 찾아내 클릭을 하다가 삭제 버튼을 눌렀나 보다. 다시 써야겠다..




뮌헨에 산 지 만 6년이 지났다. 햇수로는 7년. 무슨 세월이 이다지도 빠르단 말인가. 인류가 처음 집단으로 경험한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으니 계산하기 쉽게 코로나 3년도 넣어보자. 오자마자 갱년기가 시작됐으니 개인적으로 이 갱년기 3년도 넣어야겠다. 갱년기가 끝나나 싶더니 끝무렵에 찾아온 폭탄은 암이었다. 암투병 3년도 포함하면 지난 6은 다사다난했고 결코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갱년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다. 이런 거다. 남자들이 지치지도 않게 우려먹는 군대 이야기 같은 거. 해도 해도 이 없고 파도 파도 바닥이 안 보인다. 나 역시도 주변에 갱년기고 뭐고 이해를 바라기 어려운 40대들 속에서 나 홀로 외롭게 갱년기를 보내봐서 안다.  서러움. 처음엔 갱년기인 줄도 몰랐다. 갱년기는 누구나 그렇게 온다. 공평하. 지혜롭게? 인텔리겐트하게? 뭔가 수준 있는 갱년기도 있을 것 같은가. 미안한데 그런 건 세상 천지에 없다. 원시적이고 야만적이고 난폭함이 갱년기라는 호르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이렇게 각오를 하고 맞이하는 게 차라리 낫다. 반대는 비추다. 최악을 생각해놓고 맞이하면 심리적 충격이 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자기가 갱년기인 줄 모르고 당한다. 내가 미쳤나? 이거 뭐지? 이게 내가 알던 나였다고? 혼란과 공포 속에 온다. 불면과 우울라는 긴 터널 속에서 몸과 마음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다. 그러다 누군가가 주변에서 화들짝 놀라 현실을 일깨워주는 현타의 순간이 온다. 너, 그게 바로 갱년기! 그 순간 가슴이 쿵하고 무너져 내다. 불안 불안하게 내딛던 발 밑의 얼음이 쨍하고 깨지고 엄한 얼음물속으로 빠질 것이다. 그렇게 온다. 갱년기는. 다정한 조우, 친절한 만남, 이런 건 없다.


갱년기가 외로운 건 친구가 없어서다. 갱년기는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출 수가 없다. 친구 따라 갱년기 한다, 이런 건 없다. 누구에게나 각자에 맞는 방식으로 3년, 혹은 길거나 짧게, 혹독하거나 덜 혹독하게 올뿐이다. 길면 50대 내내 갱년기 안에 머물 수도 있다. 도 친구가 없었다. 기대하고 간 한글학교에서는 엄마들이 나보다 평균 열 살은 어렸다. 친구가 될까? 어림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범주는 위아래로 5살. 평균 열 살 차이다.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우는 10년 고. 한글학교에서 아무 소득도 없었던 건 아니다. 마침내, 6년 만에, 두 명 만났다. 첫 해 자두반 현경이 엄마, 6년 차인 2023년도 수박반 수민이 엄마. 아무리 생각해도 보석처럼 귀중한 인연이다. 까지 소중히 안고 갈 생각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안개꽃. 독일 꽃이름이 꽃말과 같다고 아이가 알려주었다. 그럼 대충 이런가. 나 잊지 마 꽃?


오죽하면 첫 해에 멋도 모르고 문학수업 모임을 만드는 무리수를 뒀을까. 헨을 지도 못하면서. 인원은 나 포함 다섯이었다. 인원만 보면 황금배율이었는데 애석하게도 한 명이 너무 튀었다. 그 정도 개성은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생각했다. 갱년기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결과였다. 결론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해 연말에 해산으로 마무리지었다. 큰 일 터지기 전에 얼굴 붉히기 전에 미연에 미리 막자는 생각으로. 회원들에겐 미안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한  같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혼자 지냈다. 아이가 한글학교와 김나지움을 다니는 동안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며 몸을 낮추고 살았다. 나답지 않게.


오십 년을 살면서 친구가 없던 적이 없었다. 친구가 없는 삶? 친구가 없는 일상? 그게 어떤 건지 어떤 기분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5년이 지났다. 2023년도에 헨의 작은 불교 모임에서 오십 대 친구 둘을 만났다. 은 이미 친구 사이였다. 오십 대 초반과 중반으로 뮌헨의 어학학교에서 만나 몇 년을 서로 알아온 사이.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 온다는 말이 이런 게 아니고 뭐겠나.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줄줄이 감자&고구마처럼. 거기다 두 사람은 서로를 무척 존중하고 있다는 보통의 우정이 넘나들기 힘든 경지 있었다. 갱년기 이후 이런 친구들을 만나면 인생 대박 나는 거다. 로또가 따로 없다. 직히 로또보다 훨씬 낫다.


친구란 뭘까. 내겐 인생에서 가장 편한 인연을 뜻한. 가족과 형제자매는 좋든 싫든 업이 강해서 때로 원치 않는 부담을 줄 때 있다. 친구는 다르다. 이때 친구란 술친구 파티 친구 노는 친구 심심풀이 땅콩 아니고 마음이 통하는 좋은 친구를 말한다. 성격이 맞고 말이 통하고 마음까지 통하면 금상첨화. 한 마디로 죽이 맞아야겠지. 뭔가 레벨까지 맞으면 더 좋다. 눈으로 잴 수 있는 거 말고 정신적인 깊이 같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으면 우정의 끝판왕쯤 되겠지. 인생 후반에서 만나는 친구일수록 이럴 가능성이 커진다. 오십이 지나면 함부로 '친구'라는 말을 입 에 올리기가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는가. 사족이 필요가.




친구들이 다녀갔다. 퇴원 후 매주 월요일 와주겠다는 첫 약속을 지킨 셈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골과 어떻게 귀신 같이 알고 내가 좋아하는 반시도 들고 왔다. 친구들이 왔을 때 난 잠들어 있었나 보다. 아침에 이 정도로 깊이  것도 오랜만이었다. 구들과는 금세 수다 모드로 접어들었다. 둘보다 내가 떠든 시간이 곱절로 많을 것이다. 생기도 돌아왔다. 금방 점심때였기에 집에 있던 시금치나물과 콩나물과 김치를 넣어 즉석에서 비빔밤도 해 먹었다. 친구들과 먹는 밥은 언제나 맛있다.


가까운 친구들 중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를 묶어서 수다 모임이라도 하나 만나 즐거운 고민 중이다. 아는 40대 친구들 중 이른 갱년기 우울 증세가 찾아온 듯한 친구들도 있기 때문이다. 갱년기는 답도 없고 약도 없다. 그런데 갱년기를 이겨낸 언니들과 폭풍 수다만 한 게 또 없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돈도 안 들고 위로도 받고 얼마나 좋나. 만남은 자체로 힘이다. 더구나 쿨하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인데 뭔들!


친구들이 다녀갔다. 매일 먹어야 하는 진통제 알약을 능가하는 메가급 비타민 C 수다를 안겨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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