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Feb 21. 2024

언니가 왔다!

암세포에는 선전 포고

언니가 들고 온 책 선물.


언니가 왔다. 한국을 떠나 긴 비행을 한 후 언니가 뮌헨의 우리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반. 나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던 건 비행기가 만석이 아니라서 이코노미인데도 비즈니스 부럽지 않게 세 좌석을 차지하고 누워서 온 덕분이라고 했다. 렇게 감사할 데가. 심지어 그날 뮌헨 공항에서는 스트라이크가 있었는데 국내선만 해당하고 국제선 비행기는 이착륙에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우리 언니의 운빨이라고 봐야 할지. 단 하나 입국심사 때 작은 문제가 있었다면 짐이 너무 많아 세관에 걸린 것이다. 여행 가방을 열고 이 액체들의 정체는 대체 뭐냐는 질문에 간장, 참기름, 들기름, 까나리 액젓을 하나하나 들어서 설명해 주고 액젓에서는 김치에 대한 설명까지 듣고서야 명쾌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된 얼굴로 보내주더라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또 하나 문제가 불거졌는데 한국 면세품에서 선물을 너무 많이 샀다는 거였다.  샀냐면 기념품의 대표 주자라 할 보석함과 열두 띠별 오르골. 여기서 우리 언니의 통 큰 면모를 볼 수 있는데 한 마디로 사돈의 팔촌까지 주고도 남을 선물을 샀다는 게 문제였다. 이번에 알게 된 면세점 한도액은 400유로. 우리 언니는 한도를 초과해도 살짝이 아니라 조금 지나쳤는데 결국은 세금을 물고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는 세관 쪽에서 우리 언니를 보따리장수로 오해할 수 있었겠단 생각이 모락모락 났다. 아니 요즘 누가 단일 품목을 열 개씩이나 그것도 모자라 더 산단 말인가. 화장품이나 술 담배나 향수도 아니고. 그런데 일단 고 보니 이분이 해맑게 조목조목 설명을 하시네. 이건 우리 동생 시댁 선물이고요, 이건 우리 동생 친구들과 지인 선물, 이건 우리 조카와 조카의 절친들 선물이에요 등등. 보아하니 닳고 닳은 보따리장수 같아 보이지는 않아서 그랬는지 세금만 조금 물 별 문제 없이 나왔다.


그러고도 생한 얼굴로 언니는 집으로 등장했다. 세금이 아까운 동생은 오랜만에 보는 언니에게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그런데 선물 보따리를 풀어서 하나하나 누구 줄 건지 이름을 쓰면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건 또 뭐람. 보석함도 띠별 오르골도 너무 이쁜 거라. 선물이야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로 결론이 났다. 우리 언니의 마음 사이즈가 본디 태어나길 저런 걸 어떻게 하나. 나를 위해 무거운 책도 많이 들고 왔다. 반가운 책들이라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도 너무 많아서 다 못 들고 오고 절반은 미리 소포로 보내고 출발했단다. 내 참! 문제의 식재료 가방은 풀어보지도 못했다. 다음날 보기로 하고 폭풍 수다로 넘어갔다. 언니는 새벽까지 이어진 수다 타임 내내 내 발과 다리를 마사지해 주었다. 덕분에 퇴원 이후 줄곧 부어있던 왼쪽 발등과 발목과 종아리 부기가 많이 빠지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종아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라고 등을 안 떠밀었으면 아마 아침까지도 발을 마사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우리 언니니까.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켜주는 우리 언니 같은 수호천사들, 뚱뚱이와 햇살 아씨.


언니는 날 보고 크게 기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호해 보인다며. 다행이었다. 언니가 와서인지 그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날밤은 통증 별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 언니도 왔겠다. 나는 큰소리로 선언하고 싶다. 내 암세포들에게. 나 그만 쫓아다니라고. 이제 그만하라고. 그만하자고. 우리 관계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자꾸 그러면 우리 언니 가만 있지 않을 거라고. 효과가 있을까. 쎄, 지켜봐야지. 언니를 기다리 하루는 지루했다. 시간이 잘 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언니가 보내준 법문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무탈하게 잘 도착하길 바라며. 그렇게 귀에 꽂힌 몇 문장들을 열거하면 이렇다.


삶과 다투지 말라. 그러면 자유롭다. 그냥 열심히 하라. 구경하듯이 놀이하듯이. 결과에 대한 집착 없이. 그래야 사는 게 가볍다. 이래야 돼 저래야 돼, 그 생각만 따라가지 않아도 지금 부처다. 왜냐하면. '지금' 문제가 없으면 그게 부처이기 때문에. '지금' 괴로움이 없으면 그게 부처이기 때문. 그러므로 부처는 따로 없다. 현실이 부처고, 내가 부처다. 부처가 펼치는 이 현실이 진실이다. 저 사람이 잘 되는 게 내가 잘 되는 것이다. 모두가 다 자기이기 때문에. 분별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면.


'모름'을 믿어라.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은 '모름'이다. '모름'이라는 신을 믿으면 가볍게 결정할 수 있다. 내 인연이고 내 복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복 없고 해도 안 될 인연면 뭘 해도 안 될 거야.  생각을 내려놓으니까 삶이 이다지도 정확하고 분명하고 확실하구나. 저 너머에 맡겨버리자. 모름에 딱 맡겨버리자. 그러면 모름에서 확실한 게 나온다. 이런 감을 회복하면 삶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저절로 살아진다.  대목에서 또 생각이 많아진다. 나도 저렇게 살아질 날이 올까.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럴 날이 분명히 왔으면 좋겠다. 병도 없 통증도 없이 완전 무결하게 살아 날이. 저절로 그렇게 살아질 날이. 


책장에 올려놓은 보석함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