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Mar 02. 2024

남편의 생일 파티

병원에서 시끌벅적하게 하시겠다는 깊은 뜻을 난들 알겠냐마는.

뭐지, 원숭이띠인 우리 남편 생일에 갑자기 등장한 저돌적이기까지한 수상한 저 돼지의 정체는?(알고 보니 폭스바겐 엔진 장착한 야생 멧돼지더라는!!! 농담입니당.)


남편의 생일날이 되었다. 원래도 시끌벅적한 이벤트를 좋아하는 남편이긴 해도 자기 생일을 병원까지 와서 할 거란 생각은 못했다. 내 생일도 아니고. 그날 아침은 언니도 나도 아이도 남편의 생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게 함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배우자의 촉으로 둘보다는 나았다. 서둘러 언니한테 톡을 보내자 아뿔싸,  준비를 마치벌써 집을 나왔다는 거다. 쓸데없이 그럴 때 동작은 또 빨라가지고. 우짜냐, 언니가 동생 성질 난 걸 직감하고 물었다. 우짜긴 우째, 씩씩거리며 자고 있는 애한테 오늘 파 생일이야, 하고 급하게 톡을 보냈건만 그날 저녁까지 읽지도 않더라! 자식 키워봐야..


일단 아침에 서프라이즈, 하고 깜짝 생일 축하하고 넘어가는 게 경험상 가장 간단데, 지금은 덜 간단한 저녁 축하를 생각해야 했다. 우리 언니 역시 이런 일에는 타고난 재주가 없고, 우리 딸은 자기 친구들 생일 선물 준비하는 데는 온갖 타고난 재주까지 끌어다 쓰는 신통한 재주가 있더니만 파파 생일에 뭐 좀 해보라면 안 하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부터는 엄마 파파 생일에 카드도 안 쓰시더라는(남편한테만 받았다, 카드. 나는 병원 핑계 대고 안 썼지만.). 딸의 경우엔 나 사춘기거든요, 인상 잔뜩 살포시 웃으며 장하셔서 같이 사진이라도 박아주 감해야 하나.


우리가 비한 남편 선물은 건 딱 두 개. 언니가 독일 올 때 면세점에서 산 띠별 오르골과 우리 엄마가 사위에게 주신 용돈 봉투(우리 엄마는 딸과 사위와 손녀 생일에 꼭 10만원씩 용돈을 주신다). 아침에 서프라이즈! 하기엔 모자라지 않은데 저녁엔 작은 케이크에 초도 켜야 구색이 맞을 것 같다. 언니는 케이크 가게 위치를 모르고 딸은 시켜봐야 미덥지가 않고. 시누이테 부탁해볼까? 설마 자기 남동생 생일에 오라는데  하지는 않겠지? 바바라 집 근처에 엄청 맛있는 조각 케이크 맛집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에 우리 언니한테 독일 조각 케이크 맛도 좀 보여주고. 이런 게 일석이조가 아닌가.


보나마나 남편의 솜씨라는 게 한 눈에 보이는 과일. 신기한 건 자기 생일날 데코를 자기가 준비하시면서도 신나게 한다는 거. 여튼 결론은 뭘 하는 걸 좋아해!


나는 언니를 저녁에 일찍 픽업해 가서 집에서 자기들끼리 생일 파티를 하랬더니 남편은 시누이를 일찍 픽업해서 저녁 8시에 병원에 와서 자기 생일 파티를 하시겠단다. 1인실도 아닌데 굳이 병원에서 하시겠다는 그 심리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패스. 남편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못마땅하고 보는 게 갱년기 아내의 정석이라서(갱년기가 지나고 안 지나고 상관없) 한 번 못마땅한 표는 하고 지나갔다. 못마땅하기는 시누이도 마찬가지. 콕 집어서 그 집 가서 맛있는 조각 케이크 네 조각 사 오라고  번을 왓츠앱으로 신신당부를 했건만 말을 안 듣더라(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나 어쩐다나. 그러니까 8시 전에 가서 사지!!!).


시누이가 해맑은 모습으로 사 온 건 평소 내가 좋아하던 달팽이 모양을 한 피향  쿠헨.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 생일도 아닌데 굳이? 그것도 한눈에 어디 산 줄도 알겠더라. 우리 동네 마녀 카페. 래도 나름 병원에 있는 나를 생각해서 그런 거니 일단 고맙게 생각하기로. 렇게 리 언니한테 맛있는 독일 조각 케이크를 맛 보여주려던 야심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그날 저녁 쿠헨을 한 입도 입에 대고 내 암세포들에게 풀이를 대신다. 금 생각하면 화를 낼 일도 없었는데 암세포들만 의문의 1패를 당한 거지. 디어 대망의 선물을 공개할 시간!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아이가 집에서 오르골과 한국 할머니의 현금 봉투를 들고 오는 걸 깜빡하셨단다. 내 참!


결국 믿을 건 바바라가 준비한 선물뿐. 저 돼지 등에 봇짐처럼 꽁꽁 싸맨 게 선물이란다. 대체 뭐지? 모두가 궁금해하는 속에 남편이 펴고 펴고 또 펴서 속에 있는 걸 펴 보니 자동차 열쇠였다! 남편과 바바라는 환호성 속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난리를 치고, 멋도 모르 언니와 아이는 박수를 치고, 나는 한숨만 한 번 쉬고 지켜만 보더랬다. 사실 이랬다. 우리는 30년도  된 돌아가신 친시아버지의 폭스바겐을 아직도 공사용하고 있다. 원래 당연히 열쇠 두 개였는데 그사이 남편이 하나를 잊어버린 거라. 그런데 키를 새로 하나 장만하기 비싸다고 그동안 키 하나로 텼으니 얼마나 불편했겠나. 열쇠점에 가면 크게 비싸지도 않더만. 이번에 바바라에게 확인하니 160인가 180인가 그랬다(그새 까먹 난 또 뭐냐! 폭스바겐 서비스 센터에서 진품을 구하려진짜 진짜 비싸다고. 말이라고..)


각설하고, 하이라이트는 30분 후 돌아갈 때 남편이 아이에게 받은 곰돌이 생일 선물을 내 품에 꼭 안기며 1주일 동안 리스한다고 했을 때였다. 오홋, 선물도 리스가 되는 거였어! 오호라, 그렇다면...!!! 나는 아이에게 당당하게 소리치며 말했다. "알리시아, 집에 가면 파피 선물 두 개 있잖아, 오르골과 할머니 봉투. 그것도 엄마한테 1주일 리스한다고 파피한테 말해. 단, 1주일 후에는 곰돌이만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미리 말해주고!" 모든 리스에는 리스크가 성에처럼 껴있는 법이라서, 호호.


요건 내가 주문한 게 아닌데, 에휴~! 한 눈에 딱 봐도 어디서 산 줄 알겠더라. 그래도 성질 잘 죽이고 한 숟갈도 안 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에서 3차 항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