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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pr 25. 2024

호스피스 데이 프로그램에도 가고

친구 하고도 잘 놀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호스피스로 가는 길.


호스피스 데이 프로그램이란 게 있다. 호스피스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보통 중증 환자들이 참가한다. 예를 들면 나처럼 휠체어를 탄 암환자라든 보행에는 지장이 없지만 중증 암환자라든. 왜 가냐고? 왜 가겠나, 심심하니까. 나 빼고는 오시는 분들의 평균 연령이 높 나만 외국인에다 젊은 편이다. 솔직히 나는 남편이 원해서 간다. 1주일에 하루 정도는 이런 데라도 가주 바라 같아서. 매일 침대에 누워있는 와이프를 보는 심정이해해 야지(뭐, 처음에는 이렇게 비장하게 생각했는데 하루이틀 누워있다 보니 누운 자나 보는 자나 슬슬 익숙해지기는 매한가지인 듯). 남편 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데라도 가서 강제로라도 사람 만나고 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믿을 수 있다 거지. 그게 맞을 수도 있고.


는 내심 1주일에 한 번만 가는 게 어딘가, 안도하 가고 있. 원래 데이 프로그램이 / 주 2회인, 금요일에는 집으로 와주는 림프 마사지와 일정이 겹쳐서 다행히 하루만  괜찮(남편은 처음에 주 이틀을 생각하는 것 같았. 금요일은 안 된다고 빼박인 림프 카드를 내밀었더니 얼굴에 실망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지나갔다). 그나저나 호스피스 데이 프로그램에 몇 번 가다 보니 이제는 나도 적응이 되긴 했는데, 처음에는 종일 독일어를 하 게 스트레스가 되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스트레스가 없다. 점심때인 12시쯤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드 게임도 하고, 오후 3시쯤 쿠헨과 카페가 나오는 티 타임을 하고, 오후 4시쯤 호스피스를 출발해서 5시쯤 집으로 온다. 참가비는 1인당 10유로다.


오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첫날에는 우반으로 갔다가 지금은 버스를 탄다. 한 번만 탈 수 있 편한 노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버스에 휠체어가 타고 내릴 때 운전사가 내려서 도와준다. 도와준다는 의미는 운전사가 승객이 타고 내리는 문 쪽에 깔린 보조 발판을 내려준다는 뜻이다. 나는 남편과 같이 다녀서 남편이 버스 문과 버스 승강장에 단차가 있어도 휠체어의 앞뒤를 쉽게 들었다 렸다 해서 운전사의 도움을 따로 받지는 않는다.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타는 게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멀미가 나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이것도 적응이 되고 있다. 적응이 되려 된 건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길가로 난 정원의 꽃들을 보는 재미도 크다.


금요일 데이 프로그램엔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조만간 여기도 한번 진출해 보려고 한다) 화요일엔 오는 사람이 적다. 나 포함 4-5명의 환자와 4-5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전부다. 호스피스에서 데이 프로그램을 왜 할까 궁금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이게 다 누워서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많아서 나올 수 있는 데이터다) 내가 가는 이 호스피스는 기부금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 지원도 받겠지. 환자들의 자가 부담이 적다고 하는 걸 보면. 데이 프로그램에 왔던 환자나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 중에 이 호스피스를 이용할 환자를 위한 홍보용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왜 꼭 그래야 하나, 호스피스 들어올 환자들은 차고 넘칠 텐데,라고 반문하신다면 딱히 할 만한 대답은 없다만.


이 호스피스를 게 된 건 우리 아이의 친구인 한나 할머니를 통해서였다. 어떻게 내 얘기가 한나 엄마 아빠를 통해서 한나 할머니 귀에까지 들어갔겠지. 한나 할머니가 예전에 이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를 하셨던 모양이다. 그때는 내 상태가 아주 안 좋았어서 호스피스에 가나 마나까지 고민했었다. 한나 할머니가 데이 프로그램에 대해 알려주시고, 언니가 떠난 후에는 남편과 나와 함께 가주다. 남편은 오갈 때 버스 탑승만 동행해 주고 오후 내내 나와 호스피스에 함께 남아 주시는 건 한나 할머니시다. 처음에는 말수가 적고 약간 진지해 보이셔서 나 역시도 말을 아꼈는데 웬걸 요즘엔 말씀도 잘 고 자주 웃으시는 걸 보고 나도 마음을 놓고 편하게 대하고 있다. 아침부터 우리 집에 오셔서 오후 늦게 돌아올 때까지 나를 위해 화요일 하루를 온전히 빼주고 계다.


이번 주엔 호스피스에 갔다가 점심을 먹자마자 식곤증이 몰려와 죽을 뻔했다.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꾸 눈이 감기는 거였다. 다행히 내 맞은편에 있던 평소 센스 있다고 여기던 호스피스 스텝 프라우 뮐마우어 씨가 내 혼돈의 상태를 짐작한 듯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며 아템 테라피를 받으러 가라는 게 아닌가. 일명 호흡 마사지. 받으면 넘 좋지! 첫날 우리 언니랑 둘이서 받는 영광을 누렸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받았는데도 좋았다. 별 건 없다. 눈을 감고 테라피스트가 내 몸에 손을 대면 그곳에 집중하며 호흡만 하면 끝. 난 호흡 하나는 잘해서 완전 이완을 할 수 있었다. 개운했다. 테라피를 마치자 잠이 싹 달아났다. 한 테라피를 두 번씩이나 받는 행운을 얻다니!


졸음을 이겨보려고 주는 에스프레소도 마다하지 않았건만..


언니 대신 나를 돌봐주는 친구 M과도 잘 지내고 있다. 언니 떠나고 보름도 안 돼서 내가 좋은 컨디션으로 회복한 건 다 내 친구 M 덕분이다. 이 친구가 한없이 밝다. 가장 좋은 배우자는 밝은 성격의 배우자라는 말이 있잖은가. 물론 그 밝은 성격도 상대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그런데 나는 내 친구의 밝은 덕을 많이 본 사람 중 하나다. 친구와 아침부터 서로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둥 맑고 고운 덕담을 나누고 하루를 시작해 보시라. 친구와 농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점심을 먹어 보신 분은 잘 알 것이다. 하루가 즐겁고 한 주가 즐겁다.


오늘 저녁엔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가 됐는데 하며 올리나 마나 고심을 했다(요즘엔 글을 쓰는 보다 안 쓰는 쪽으로 더 저울이 기울어진 탓으로). 대충 근황이라도 알려야지 싶어 호스피스 쪽으로 가닥을 잡고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 쪽에 흰 가라테 도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한국 귀신 흡사한 뭐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우리 딸.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이유를 물으니 뜬금없이 한다는 말이 이랬다.


"댓글들이 너무 슬퍼!"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다가 내 글에 달린 댓글들을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알았다. 친구들과 노느라 자나깨나 쁘신 분이 엄마 글에 달린 댓글은 왜 읽으셨는지. 거기 슬픈 댓글이 뭐가 있다고. 다시 브런치로 컴백해 주서 '반갑'고 '고맙'다, 말고 뭐가 또 있다고. 그렇게 말하며 따듯한 오른손을 들어 차가워진 뺨의 눈물을 닦아주자 그제야 배시시 웃는다. 그건 그래, 하면서. 그러니 너무 슬픈 댓글은 달지 마시기를. 슬픔의 기준은 만 14세.


흐드러진 저 꽃들은 기쁨이겠지. 슬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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