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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현 Oct 30. 2021

손원평 - 아몬드

서평,줄거리,주제 및 명대사


 아몬드라는 책이 근래에 아주 유명한 한국 문학 서적인 것 같았다. 어떤 내용인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출간을 한지 5년 가까이 됐다는 것이 좀 놀라웠다. 최근에 계속 눈에 보여서 최근에 출간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줄거리


주인공인 선윤재는 감정불감증이다. 편도체가 다른 사람보다 작고 그 쪽에 이상이 있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윤재는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헌책방을 운영했는데 신기하게도 나름 책이 팔렸다고 한다. 어쨌든 어머니 입장에서도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버거웠지만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언제 웃어야하고 언제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언제 감사하다고 이야기 하고 언제 미안하다고 해야하는지 세세하게 교육시킨다.



주인공은 계속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어머니에 의해서 감정 표현하는 것을 기계적으로 학습을 받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각고의 노력 끝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냥 조용한 아이 정도로 취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윤재의 16번째 생일, 크리스 마스 이브에 사고가 터진다. 어떤 괴한이 할머니와 어머니를 공격한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죽고,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된다.



그 상황에서는 윤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무표정으로 있는 윤재를 보며 사람들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윤재가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친구들이 눈치채기 시작한다. 윤재에게 항상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가르쳐주었던 어머니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윤재는 그렇고 홀로 헌책방을 운영한다.



그러던 와중 윤권호라는 교수가 헌책방에 찾아와 윤재에게 부탁을 한다. 죽어가는 아내에게 아들인 척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교수는 아들을 어렸을 때 잃어버렸는데 나중에 수소문 해서 아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아들은 심각하게 반사회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고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죽기를 원하는 아내에게 그런 아들을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들과 생김새가 비슷한 윤재에게 아들 행새를 부탁한다. 교수의 아내는 윤재를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고 마지막으로 꼭 끌어앉고 죽는다. 그리고 나중에 윤재는 윤교수 아내의 장례식에 참여해 그의 아들인 곤이를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곤이는 그때 윤재가 자기 자신을 대신해 어머니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윤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윤재가 아무런 괴로움이나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질려버린다. 나중에는 크게 구타를 하다가 일이 커지게 되고 아버지인 윤교수에게 크게 처벌 받고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낙인 찍힌다.



하지만 곤이는 아무런 편견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윤재에게 흥미를 느낀다. 윤재는 곤이를 문제아라거나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곤이는 매일 같이 헌책방에 윤재를 찾아온다.



그때 윤재는 곤이가 사실은 매우 여린 친구라는 것을 눈치챈다. 부모를 잃어버린 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상처 투성이가 되어 있었던 친구였다. 또 심박사라는 사람이 윤재를 돌보아준다. 심박사는 어머니의 친구였는데, 빵집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의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윤재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했었다.



윤재가 이상하다는 것도 잠깐 주목을 받았을 뿐 결국 아이들의 관심이 다 식어버린 때가 왔고, 곤이 역시 윤교수에게 혼나고 처벌을 받으면서 학교에서 잠을 자거나 조용히 있었다. 그래서 곤이 역시 친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윤재가 운영하던 헌책방은 손님이 계속 줄었고 결국 폐업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윤재가 헌책방 폐업 준비를 하던 시기쯤 도라라는 여학생을 만나게 된다.



도라는 달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체육에 관련된 학교에 진학하기 원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심하게 부딪쳤다. 도라 역시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자기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는 윤재에게 좋은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헌책방에 자주 놀러 온다.



그러면서 윤재는 도라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다가 도난사건이 벌어진다. 그때 모든 친구들은 곤이를 의심하고 곤이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도 믿어주질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까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실망한 곤이는 그때 부터 심각하게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런 곤이를 보며 윤재는 또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안타까움의 감정이다. 결국 곤이는 철사라는 소년원 선배를 찾아간다. 철사는 잔혹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곤이가 걱정 되기 시작한 윤재는 곤이를 찾아 나서다가 결국 철사에게 갔다는 사실을 알고 철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곤이를 대신에 칼을 맞는다. 죽을 위기를 겪었지만 윤재는 다행히 회복했다. 그리고 곤이도 눈물로 반성을 했고, 어머니도 식물인간 상태에서 일어난다. 윤재가 성장하면서 편도체도 성장한 것인지, 윤재가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노력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윤재도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말은 나름 해피 엔딩인 셈이다.


명대사 및 해석



두려움이란 생명 유지의 본능적인 방어 기제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은 용감한 게 아니라
차가 돌진해도 그대로 서 있는 멍청이라는 뜻이다.


난 두려움은 극복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에 지배 당한다면 자유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잃고 나니 두려움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은 위험을 감지해서 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두려움에 지배를 당해서는 안되지만 건전하게 이용한다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튀지 말아야 돼. 그것만 해도 본전이야.



조금이라도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나면 괴롭힘을 당하는 현 사회의 모습이 이 작품에서는 잘 드러난다. 다르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특히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는 다른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또 해외를 다녀보면서 나름 깨달은 것이다. 한국 문화라고 합리화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이런 문화는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삶을 준중하고 조금 다르더라도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자의 일기장에는 세상을 증오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즐거울 것 없는 세상에서 미소를 띤 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살의를 느낀다는 암시도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었다. 남자의 삶과 기록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자, 대중의 관심은 사건 자체보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조명으로 바뀌었다. 남자의 삶이 자기네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중년 남자들은 비탄에 빠져 탄식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배경이 주목 받으면서 피해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정이 없는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이유 없이 살해당한 이후의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묘사해 나간다.


사회적으로 불우한 환경에 처해버린 탓에 분노가 가득한 사람이 만들어 졌고, 그 사람이 살해를 저질렀으므로 그 책임은 사회에 있다는 논리가 퍼져버린 상황을 주인공은 담담하게 전달한다.


오늘날의 현실을 잘 묘사해주고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난 개인적으로 이런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 사회는 항상 피해자를 위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동정을 보내주고 위로를 보내줘야지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에게 동정과 위로를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살인이 일어나기까지 불합리한 사회 구조가 불평등을 야기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불평등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강간하는 행위가 정당화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회구조는 끊임없이 개선 하되 이유 없이 죽어간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

 인생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도 없고 앞으로 내가 어떤 모습일지도 예측 불가능하다. 나도 돌이켜보면 10년 전의 내가 지금 이런 모습일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인생은 무언가에 집착하기 보다는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의 병폐를 드러낸 또 하나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도라는 여학생은 부모님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오래 전부터 부모님이 정해준 인생의 '미션'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런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더 공감이 됐던 것 같다. 부모 자식 간에도 지켜야할 선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낳아서 길러주신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자식은 부모와는 다른 또 하나의 인격체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식의 운명과 미래의 커리큘럼을 정해놓은 경우가 대한민국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해 나가는 것이고, 전적으로 본인 스스로가 결정해 나가는 것이다. 세상을 해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지 자식의 운명을 결정지으려는 것은 엄연히 선을 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가독성이 좋았고 재밌게 읽었다. 확실히 번역이 된 문학보다는 한국 작가가 쓴 책들이 읽히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또 감정불감증에 걸린 주인공의 시각에서 서술된 책이라는 점에서 정말 신선했고 문학적 가치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고 그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도 노력을 해야 더 커진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난 그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성도 훈련을 해야 되듯 감정도 훈련을 해야만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쉽게 공감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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