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상징주의 화가
오스트리아 빈의 상징주의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는 독특한 황금빛 장식 스타일로 유명하다.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그의 그림은 상징적이고도 관능적이다. 클림트는 역사상 여성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여성에 대한 가치관도 굉장히 특이했다. 그에게 있어 여성은 두 종류로 나뉜다. 성녀와 요부다. 수많은 여성모델들과 자유분방한 관계를 가지며 작품 활동을 했는데 이렇게 육체적인 관계에 국한해 맺은 사랑이 있었던 반면 평생 플라토닉 관계만 이어온 여성들도 있었다. 주로 상류층의 여성 후원자들이었다. 평생을 함께 한 에밀리 플뢰게와 그의 상류층 교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아델로 블로후바우어다.
1899년에서 1907년까지 이어진 그의 작품세계 '황금 시기'에서 가장 유명했던 작품은 <키스>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이다. 이 시기 그의 그림들은 비잔틴 모자이크와 일본 예술의 영향을 받은 황금빛 색조 그리고 복잡한 무늬들이 지배적이었다. 클림트는 금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금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또한 그는 계란을 사용하는 템페라 기법과 금박과 은박을 꿀등의 접착제로 붙이는 방법으로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인 그림을 그린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본다면 음악, 문학, 시각예술의 진원지였을만큼 예술과 문화가 꽃피는 시기였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의 작품도 더욱 화려해진 것이다.
클림트의 <키스>를 보면 꽃밭위의 연인은 그들의 배경에서 분리된 채 황금빛 아우라 속에서 황홀함에 취해있다. 손과 얼굴, 발 쪽을 제외하고서는 사람의 몸과 배경이 온통 장식적인 무늬로 뒤덮여 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큰 화려함을 느끼게 만들고 무언가를 상상하게 한다. 짧은 순간의 강렬함을 뿜어내는 이 작품은 이제 사랑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되어 수많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화려하며 관능적인 그의 작품 세계를 대변하는 대표 작품이 될 만하다.
그의 작품 중 또 하나의 대표 작품은 <유디트>다. 19세기 유럽 사회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활동을 위협으로 보는 남성들이 많았다. 산업혁명 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났고 교육 기회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불안을 느낀 남성들은 야심찬 여성들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19세기에는 팜므파탈 이미지의 미술작품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클림트의 <유디트>도 이 중 하나다. 팜므파탈 이미지에는 성서 속 여성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유딧이다. 유딧은 적장인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고 유대 민족을 구한 영웅이다. 그러나 대부분 미술 작품에선 유딧을 영웅이 아닌 팜므파탈로 그린다. 왜 그럴까. 점점 더 강해지는 여성들에게 거부감이 높아진 19세기, 남성을 제압하는 여성을 좋은 시선으로 볼리가 없다.
클림트의 <유디트>를 살펴봐도 그와 궤를 같이한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안고 도취된 표정으로 관람객을 응시한다. 젖가슴을 드러내는 자세는 관능을 나타낸다. 또한 유딧의 몽환적인 눈빛은 유딧을 충성스런 영웅이 아닌 성적매력을 지닌 요부로 강조해 그린 것이다.
#구스타프클림트 #미술 #상징주의 #예술 #문화예술 #그림전시 #화가 #띠아트 #홍대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