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둘째는 무사히 돌이 되었고 이른 감이 있지만 다가오는 복직 적응을 위해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나도 이번 생에서 엄마와 학부모는 처음이라 태연한 척했지만 가슴 떨린 경험이었다.
매체에서 온몸에 800만 원을 몸에 걸고 간다는 공개학습, 학부모 총회에도 다녀왔다.
(몸에 80만 원도 걸치지 못했다.)
부정적인 댓글이 많았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온전히 혼자 몸으로 예쁘게 화장하고 옷 입은 다른 엄마들을 보니 다들 행복해 보였다. 비싼 옷을 입던, 안 입던 명품을 사든 뭔 상관인가?
이렇게 다들 여고생들처럼 즐거워하는 날인데. 오늘 하루 젊을 때 데이트 나가는 것처럼 화사하게 입고 뽐내는 하루도 있어야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사랑 주지 않을 까.
내가 새로운 경험을 하며 긴장했듯 아이들도 그랬던 것일 까.
새 출발을 시작하고 크고 작은 사고로 병원을 다니기도 했다.
"공부가 때가 있데이. 할 수 있을 때 해라."
어릴 적 어른들이 했던 말이 자주 생각난다. 작년 11월에 큰 마음먹고 비싼 수강료를 주고 등록한 수업은 아이들의 행사, 질병에 따라 성실하게 이어가지 못했다.
야심 차게 만든 첫 계획표와 점점 어긋나는 지금을 보면 화도 나고 괜스레 짜증도 났다.
가끔은 내 생활을 온전히 못 이어감에 이렇게 불만족이면서 왜 대책 없이 둘째는 낳았나 후회도 했다. 물론 아이는 전혀 잘못이 없다. 내 선택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는 잘못이 없으며 부모의 역할도 희생이라도 생색내어선 안된다.
순전히 무식이면 용감이라던 과거의 내 탓이다.
되돌릴 수 없는 일 과거의 나를 계속 탓하긴 너무 어리석고 매일 잠자리에 들며 내 양 옆으로 누운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마음을 잡는다. 내일은 잘못도 없는 아이들에게 화내지 말고 내가 세운 계획표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고. 그저 무사히 매일 밤 아이들의 고르고 건강한 숨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함을 감사히 여기자고.
학부모의 역할은 생각보다 혼란스럽고 마음 불편한 자리였다. 들리는 정보도 많고, 다른 아이들의 잘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조바심이 나서 나도 이것저것 사교육 시장에 돈을 넣기도 하고, 괜히 부처님이 환생한 듯한 부모님이 쓴 육아책을 보며 내려놓기도 하고 수백 번 무한반복을 하며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어느 날은 하하 호호 건강하게 즐겁게 친구들과 지내다와. 하다가
어느 날은 아직 일기 쓰기가 이렇게 부족하니 마녀가 되어 입에서 불을 뿜었다.
큰 아이가 하루는 하굣길에 내게 살포시 "엄마,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 묻길래 많은 반성을 했다.
브런치를 게을리할 동안 나는 부끄러워 글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난 글 이후 나는 육아 책만 5권 읽었고 나만을 위한 독서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니 온종일 학부모로서 생활만 이어갔고 그 무엇도 아닌 나로서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나 스스로 잘 쓰인 글을 쓸 재료를 마련하지 못했기에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영화도 쥐라기 월드,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신비아파트가 거이 대부분이다. 이제 어린이 영화에 대해 감상을 적어보라 하면 글이 3장은 나올 것 같다.
아침마다 근처에 사시는 엄마가 첫째 등교 때 집에 와주신다. 나는 내가 낳은 아이들 나 스스로 하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첫째가 너무 어린 아기 안고 엄마가 등, 하교하는 것도 어린 맘에 부끄러울 수 있으니 그 시간만은 온전히 둘만의 등, 하굣길을 보내라고 배려해 주셨다.
한결 수월한 아침을 보내니 아이들에게 짜증도 줄었다. 예전엔 양말을 거꾸로 신은 첫째를 보면 가슴속 화산 폭발이 일어났는데 요즘은 마음속 부처님, 하느님이 허허허. 요 녀석. 귀여워할 여유도 생겼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자 엄마는 너무 부지런히 살지 말라고 충고하셨다. 아이들이 등교, 등원하면 청소도 어느 날을 하지 말고 그냥 낮잠도 자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라 했다.
살 것 없어도 백화점 구경도 하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자극이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가고 나면 하루치의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 저녁까지 준비해 둔다. 아이들이 하교하면 학교 숙제나 아이들의 일에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첫째가 얼마 전 내게 말했다.
"엄마. 매일 같은 날이야. 그만 좀 궁금해해. 내가 다른 일 생겼으면 먼저 말해줄게."
나는 관심과 사랑이라 생각했던 시간이 아이에겐 부담스러웠나 보다.
내가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닌 온전한 나로 돌아갈 시간이 5%라고 했던 것은 결국 내가 자초한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대로 사는 거야. 그러니 점을 보러 갈 필요가 없어. 성격이 팔자야."
작은 자극에도 탱탱볼처럼 크게 튀어 오르는 나는 늘 미리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지금 당장 할 일을 부지런히 신속히 끝냈다. 혹시 예측 못한 일이 일어나면 잘, 능숙하게 처리하기 위해.
생각해 보면 할 일을 모두 다 해두었다고 해도 예측 못한 일이 일어나면 침착했던 건 아니다. 늘 그렇듯 으아 으아 크게 반응하며 코뿔소처럼 우당탕탕 처리해 나갔다. 옆에서 '쟤 많이 당황했구나.' 다 알 정도로.
오늘은 2주 만에 둘째 아이까지 어린이집에 가고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아이를 위한 책 5권, 나를 위한 책 1권. 아직 성격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 자존심 상하지만 오늘은 청소만 하고 빨래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사 온 커피를 마시며 브런치를 살포시 열어본다. 육아와 1도 관계없는 재미있는 책을 보면서. 오늘은 첫째에게 뭘 했고 뭘 배웠는지 안 물어야지. 엄마의 관심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려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