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듣다
일 학년 때는 원하는 수업의 선택이 없이, 기초로 들어야 되는 수업들 밖에 없었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들은 꽤 있었다. 사진, 티포그라피, 드로잉, 모션비디오, 책 편집, 이론 수업들이었는데, 매주 과제가 있었던 거 같다. 다른 수업들은 그래도 잘 따라갔는데, 사진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매주 주제를 내어주면 거기에 맞는,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나는 이 수업 전까지 사진을 공부한 적도 찍어본 적도 없었다.
학교에서 DSL 카메라를 빌려주긴 했지만, 매주 빌려서 정해진 짧은 기한 내에 사진을 찍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처음에는 가지고 있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진정한 전문가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 하였지만, 아무래도 초보인 나에게는 장비도 별로인 데다가, 기초나 아는 것 없이 그냥 찍으려니 아무래도 사진이 퀄리티가 꽝이었다. 피드백을 사진 기술에 관해서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피드백은 예술성 자체에 초점이 맞춰있었고, 게다가 좋은 사진이 왜 좋은 사진인지에 대한 교수님의 피드백에 주관성이 강하다고 생각한 나는 흥미를 잃었다. 한 번은 사진과 교수님이 나에게 일대일로 말했다. 다른 교수님들에게 나에 대해 물어봐야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내가 디자인에 재능이 없어 보이니,
다른 것을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는 사진을 잘 모르고,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수업에서의 성적은 괜찮다고 답하였다.
사람들 앞에서 좋지 않은 말이나 피드백을 말하는 것에 소심한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몰라도, 지금도 나는 나의 이 발언에 대해서 후회가 없다. 나는 배우려고 대학에 왔는데, 그것도 첫 학기에 그런 소리를 하시다니, 교수님에게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날 뽑지 말았어야지 라는 생각도 들었던 거 같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은 교수님이셨다). 사진과 교수님은 나에게 사진도 기초 과목이니 잘해야 한다 하셨다. 결국에는 DSL 카메라를 샀고, 최대한 나름 노력을 해서 사진들을 찍었지만, 결국 사진과 기초 수업은 4점을 맞았다 (1점이 최고 점수이고, 4점은 F를 면한 수준이다. 4점까지는 재수강을 할 수 없다). 아마 교수님도 나를 한 학기 더 보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 당시 사진이 나에게 아킬레스건이라서, 돈을 따로 내고, 다음 여름 방학 때, 우데카에서 여름학교에서 사진 수업을 들었다 (우데카에는 여름학교 수업이 있는데, 해마다 돈을 내고 신청해서 들을 수 있는 수업들이 다르게 있다. 그 당시에는 사진 수업이 있었다). 사진을 gif로 만드는 수업이었고, 역시 주제를 정해 사진을 찍는 것에 초점이 가 있었지만, 나는 그때서야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점들을 얼추 배웠다. 사진 전문가 눈에는 달리 보이겠지만, 이 사진들은 지금 다시 봐도 나 스스로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사진들이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의 배움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필수 사진 수업 수강 후로는 다시는 사진 수업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디자인의 세계는 넓고, 사진이라는 분야를 일찍 포기하고, 다른 분야에서 나만의 것을 찾아서 집중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8학기였던, 학부과정에서 나의 목표는 제때 졸업하자였는데, 대학 졸업은 학기 연장 없이 딱 평균 2.0 점으로 했다 (한국으로 치면 평균 3.0 학점쯤). 재능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