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
대학교 첫 학기가 지나고, 같이 학교 입학한 애들 중에 어울리는 친구들이 생겼다. 학교 생활 초반에 내가 독일어에 어리바리할 때 도움을 많이 주었던 친구들이었다. 세명의 백인 독일인, 한 명의 독일 무슬림 배경을 가진 친구, 그리고 러시아인 친구였다. 초반에는 졸업하고 나서도 연락을 종종 하고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때 너무 도움만을 받은 탓이었을까, 졸업하고 나니, 백인의 독일인 친구들에게서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첫 번째 이유로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학부 때처럼 늘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것에 기분이 이상했다. 조금 더 가까웠던 독일인 친구와 나의 파트너와 같이 밥을 먹었는데, 독일인인 나의 파트너가 조금은 이상함을 느낄 정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또는 나도 이미 아는데 더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일반화를 해 보자면, 가벼운 대화 중에 조금이라도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고치려고 드는 것이 독일인의 기질이긴 하다.
"Glück Scheisser"(클룩 샤이져)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번역을 한다면 행복에 똥을 뿌리는 사람쯤 되겠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정정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가령 누군가와 가벼운 대화 중에 오늘 날씨가 해가 나서 따뜻하네요라고 했다고 가정해 보자. Glück Scheisser(클룩 샤이져)는, 현재 시간의 온도는 18도이며, 곧 해가 사라진다는 예보가 있고 따뜻한 것은 잠깐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다. Glück Scheisser(클룩 샤이져)는 이렇게 진실한 정보를 말하는 것에 많이 초점이 가 있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이유는, 졸업 후에, 친구들과 모이면 늘 서로의 회사, 연봉에 관해 제일 먼저 이야기를 했다.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얼마를 번다. 아무래도 같은 학교, 같은 고가이기 때문에, 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들이 서로에 대해 하는 비교 같아서 불편했다. 지금 떠올려봐도, 숨 돌릴 틈 없이 마치 채점지에 체크를 하는 기분이었다. 한국에서의 누가 몇 점을 맞았고, 누가 몇 등이고, 그 등수가 전교로 생각하면 얼마에 드는지 비교하는 것이 생각났다. 그땐 나도 초년생이라, 흔들리지 않을 만큼만의 나만의 경험이 없는지라 더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비교에 과민하게 큰 거부감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이유로는, 나의 성취가 항상 과소평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학교를 졸업하려면, 8학기에 졸업논문과 졸업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8학기가 시작 전에 졸업 논문과 작품 주제를 정해야 될 때쯤, 나 혼자 논문을 쓰기 어려울 테니 자기와 같이 쓰자고 다른 독일인 친구가 선심 쓰듯이 말했다.
두 명이서 같이 디자인을 연구해서 논문을 쓰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은 서로 쓰고자 하는 논문이 공통점이 있을 때이다. 보통 확고한 자신의 주제를 가지고 혼자 논문을 쓴다. 이 논문은 주제를 정해 쓰기로 공식적으로 등록한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써서 제출해야 한다. 기한을 넘기면, 다음 해에 새로운 주제로 남들과 주어진 동일한 시간에 다시 새로운 논문을 써야 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주제가 있고, 그 주제는 나 자신에 관련된, 나를 표현하는 주제라, 혼자 쓸 생각이라고 했다. 왜 나에게만 물어봤는지 모르겠지만, 독일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못한다는 것은, 내가 실은 독일어 외로는 혼자서 논문을 쓰고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나를 좀 어리바리하게 보이게 만들었던 거 같다. 시간 내에 자신의 주제를 찾지 못한 그 독일인 친구는 결국 일 년 늦게 졸업을 했다.
후에, 그 친구도 다 같이 만날 때는 좀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친구가, 자신도 지원하면, 내가 갔던 대학원을 갈 수 있겠거니 하고 말했다. 나의 성취를 쉽게 여기는 투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냥 쉽게 지원해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름 대학원을 가기 위해, 나는 지원 전에, 따로 교수님들에게 연락을 해서 미팅을 하기도 했다. 차라리 내가 준비한 과정과 방법을 물어봤다면, 나는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었을 것이다, 학부 초반에 내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내가 스스로 자격지심이 있어서, 친구의 그 말을 나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는 편이 제일 좋은데, 왜 안되는지는 모르겠다.)
가장 최근에, 이 친구가 나의 링크드인 프로필을 봤다.
이 친구는 지금도 나의 성취가 자신도 이루기 쉬운 것으로 생각할까.
나도 이 친구의 프로필을 궁금해서 보게 되었다.
자신도 대학원에 곧 가겠거니 라는 말을 들었던 2020년, 지금은 2024년,
그 친구는 2023년에 베를린에서 먼 곳으로 대학원을 가서 다니고 있는 중 인 듯했다.
기분이 묘했다. 나도 참 좋은 사람은 아니다.
독일과 무슬림 배경을 가진 친구도 세 개의 언어를 쓰는데, 한 번은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독일어를 못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학식이 있느냐를 떠나서, 과소평가를 받는다고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이 친구도 이방인 취급받을 때가 있어서 그런지, 아님 서로를 비교하지 않고, 그저 너는 너, 나는 나로 받아들여서 인지, 편안하하고, 서로 공감이 가는 것을 찾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친구와 내가 항상 독일에서, 백인의 독일인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는,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친구는 졸업하고 일찍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나의 경우는 보통 독일에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워라밸도 포기하고, 그 당시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 보통 가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
나와 통하는 이 친구를 제외하고, 나의 자격지심에 나는 더 이상 학부 때의 사람들과 더 이상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는다. 연락이 끊어지는 것은 아주 쉬웠다. 한 친구가 이직한 직장의 연봉을 물어보길래, 회사 규칙상 말해 줄 수가 없다고 했고, 그 뒤로 일하는 것이 바쁘다 보니, 시간이 안될 때도 있었고, 또한 마음이 끌리지 않는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같이 들어있는 왓츠앱 단톡방은 나가지 못하겠다. 단톡방 속 사람들은 몇 번 나의 참석 여부를 물어보다가 이제는 물어보지 않는다. 나의 불편한 마음을 친구들과 솔직하게 말하지도 않고, 단톡방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나의 그릇은 작다. 카톡처럼 왓츠앱도 조용히 나가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는데 하는 희망 사항만 있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한 거 같다. 결국 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소한 부분이 좀 다른 점도 있지만, 멀리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