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던 질문
학사과정을 마칠 즈음에 나는 베를린에 거의 6년쯤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한창 혼란스러움을 격었다.
그러한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준 시작점의 질문은 남들로부터 받는 "whare are you from?"이라는 어디에서 당신은 왔나요? 라는 질문이었다. 초기에는 아주 간단하게 답을 내릴 수 있었던 질문의 답이, 베를린에 오래 살 수록 어려워져만 갔다.
이유 하나,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아주 통상적인 질문으로 대화가 이어진다. 나라는 사람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상대방이 생각하는 한국인 또는 아시안의 틀에 넣어버린다. 북한과 남한 둘 중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 그리고 일본에 가봤었다/또는 갈 예정이라는 말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의 영향으로 인해, 어떤 한국 드라마 봤냐는 질문도 나온다. 이 질문은 드라마에 관해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지만, 무턱대고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물어본다면... 나는 다시 일정하게 분류된 상자 안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유 둘,
베를린에 얼마나 살던지 상관없이 늘 이방인이라는 것을 나에게 상기시켜주는 질문이 되었다. 별거 아닌 질문이지만, 매일, 꾸준히 듣는다면... 계절 상관없이 발바닥에 매일 끊임없이 모기 물리는 기분이다.
예를 들면, 모임이나 파티에 갔을 때, 내 이름보다는 나의 출신지를 먼저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지쳤다. 같이 갔던 파트너가 놀랄 정도였다. 사람들이 백인인 자신은 당연히 독일 사람일 거라 예상하고 나의 이름을 물어보는데, 너에게는 출신지를 물어보다니... 그는 내가 왜 이 질문에 점점 지쳐가고 마음이 불편한지 조금 이해를 해 주었다.
다른 또 한 가지의 예는, 어디에서 왔냐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짐작한 바를 물어보는 것이다. 나의 이름도 알기 전에 불쑥, 일본에서 왔니, 또는 중국에서, 홍콩에서,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왔냐는 질문을 듣다 보면, 기분이 나쁠 때가 많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다른 아시아권의 언어를 다 쓸 줄 았았다면 스파이나 되돌걸 그랬나 라는 농담을 하게 된다.
이유 셋,
내가 겪은 독일은, 외국인에게는 독일 사회로의 통합을 이야기한다.
나는 사회가 원하는 대로, 언어를 배웠으며, 문화를 익혔으며 (비자 때문에 문화 관련된 시험도 통과했다.), 졸업 후에 받은 잡 서치 비자가 끝나기 전에, 때맞춰 취업을 해, 이제 세금을 왕창 내며 돈을 벌어다 주고 있다.
이만하면, 독일 사회가 원하는 만큼 잘 맞춰 통합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르만족도 아닌 아리아인도 아닌, 아시안 인종인 나는 늘 영원한 이방인이다.
아리아인: 히틀러가 말하는 이상적인 "아리아인"은 금발에, 파란 눈, 그리고 키가 큰 사람이며, 현재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다.
지금은 그래 영원한 이방인 맞지,라고 생각하고 내 편한 대로, 남들이 어떠한 편견의 상자에 넣던 상관 안 하고 살려고 애쓰고 있다. (주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도망을 가거나, 직장에서는 통장에 들어올 돈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나를 꼭, 독일에 정착해야 된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다.
늘, 독일 사람들을 만나면, 열에 열은 독일이 좋아서 내가 독일에 산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도 베를린에 살고 있지만, 결코 좋아서는 아니라고 착각을 정정해 주고 있다.
마지막,
단지 인종과 출신지를 퍼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질문의 본질이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하는 질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디에서 당신은 왔어요?"라고 직역한 이 질문의 대답은 다채로울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어디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현재 살고 있는 국가나 지역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진정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지역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장소를 초월한 공간일 수도 있으며,
아주 단순하게 본다면, 우리 모두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다.
대학교 때는, 이 주제로 졸업 논문을 쓰며 한풀이를 했다. 지도 교수 두 명을 찾아야 했는데, 한 교수는 내가 "좌익 급진주의자"라고 했다 (뭔가 내가 아주 위험한 인물처럼 들려서, 주변에서 다들 웃었다.). 여하튼 학점 상관없이 하고 싶은 데로 나는 졸업 논문과 작품을 만들었다.
한두 해를 지나, 독일에서 이 문제를 놓고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보게 되었고, 다른 학부생이 같은 주제로 졸업 논문을 쓴다며 졸업한 내게 연락을 주는 일도 있었다. 적어도 이제 어느 모임을 가면, 베를린에서는 이 질문을 갑자기 들이대는 사람이 줄어들어, 스트레스받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아마도, 이제는 )
여하튼, 지금은 많이 이 질문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정신없이 일을 하면서 이 질문을 맞닥뜨릴때는 나의 감정을 뚝 때어 놓는다. 일 아닌 관계로 만날때는 그때 그때 기분대로 내 마음대로, 토론을 하던, 도망을 가던, 답을 아예 안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