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불안, 그리고 나
베를린에서 학사 과정을 하던 때, 학교 심리 상담가분이 계셨다. 한 이년 정도 틈틈이 상담을 받았었다. 늘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는데, 오늘의 기분 또는 최근의 기분은 어떻냐는 질문이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무슨 감정인지를 정확히 인지하면, 왜 그런 감정인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감정을 어느 정도 묘사할 수 있을 때, 감정에 끌려다니는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무슨 감정인지 아예 모르는 순간이 생기면, 좀 쉬어야 된다는 적신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년의 상담을 받았음에도, 지금도 나의 기분이 어떠한가에 대한 답을 나 스스로 내리기는 힘들다. 보통은 기분이 그저 별로일 때가 많고, 왜 그런지로 스스로 질문을 해가다 보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불안한 나 자신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꿀 수 없는 과거의 환경 탓을 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졸업 후에, 일을 하면서, 감정을 아는 것의 중요함을 다른 면에서 알아가게 되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업무를 할 때, 또는 다른 이가 나와 어떤 식으로 소통할 때, 잘 되는지 안 되는지를 알고 명확하게 표현을 하면 서로에게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기분이나 한계를 잘 모를 때가 많다. 또는 불편한 주제를 어떻게 잘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숙하다. 일을 하면서 다른 이들과 소통할 때도 중요함을 느끼지만, 나는 아쉽게도 표현이 아직도 서툴다.
일이 많을 때 나는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재쳐놓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운이 나지 않을 때, 소셜 미디어나 한두 잔의 칵테일에 의지하여, 저녁에도 밤에도, 심할 때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나의 모습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원인을 들여다보기를 미루고 일에만 매진하였다.
이러려고 성실한 게 중요하다고 배우면서 큰 것인가라는 실소가 나온다. 행복한 감정은 순간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행복할 때보다는 불안함을 더 많이 느끼면서 살고 있다. 이 불안함은 내가 무언가를 성취하게 도와주었지만, 나의 삶을 만족하게 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은 나의 불안함을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