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프로 이사꾼

되돌아보는 나의 월세생활 (1)

by 앨리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9년째 살고 있다.

집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주인의 집을 관리하는 회사와 월세 계약을 직접 맺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마 계약조건이 년마다 월세가 몇 프로 오르는 조건으로 월세 계약을 많이들 한다고 들었는데 (틀릴 수도 있다.), 9년 전에는 계약을 하면, 계약서에 나온 월세가 오르는 조건이 무조건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의 월세 가격으로 9년째 살고 있다. (전기, 가스비는 오르고 있지만)


이 집에서 살기 전에는 아마 이사를 일 년에 한두 번은 했었다. 집 전체를 월세로 산 게 아니라, 방 한 칸을 월세로 살다 보니 더 자주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맨 처음에 베를린에서 살았던 집에는 오래된 벽난로가 있었다.

월세가 제일 싼 집이었는데, 난방을 석탄으로 해야만 했다.

겨울에 일어나면, 지하실로 내려가서 10개의 석탄 벽돌을 집으로 가져왔다.

일단,

벽난로 안에, 어제 타고 남은 석탄 가루를 잘 치우고, 석탄 벽돌을 듬성듬성 쌓는다. (너무 꼼꼼하게 쌓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불이 금방 꺼져버린다.)

그 뒤로 석탄 벽돌 앞쪽에 종이와 불을 잘 붙게 해주는 하얀색 조각(뭔지 모르겠다)과 나무 땔감을 넣고 불을 피운다. 벽난로의 문을 조금 열어두어서 불이 석탄에도 좀 붙는다 싶으면 벽난로의 문을 닫았다.

이렇게, 매일매일 베를린의 첫겨울을 보냈었다.



두 번째 집은 벽난로 집에 비하면 아주 현대식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한국식 온돌 난방은 아니지만, 창가에 히터가 있었다. 다만 집주인과 소통방식이 나와는 맞지 않아서, 반년 살다가 나왔다.



방을 구하기는 어려워서, 다시 맨 처음 벽난로 집으로 이사했다. 맨 처음 벽난로 집에는 할머니가 사시는데, 따뜻한 여름을 나기 위해서, 늘 겨울철에는 아르젠티나로 가셔서 아르젠티나의 집에서 사신다. 그래서 나는 다시 베를린의 겨울을 벽난로 집에서 할머니 없이 보냈다.



네 번째 집에서 사는 것은 좀 더 재미있었다. 방이 네 개인 집이었는데, 다들 학생이거나, 교환학생으로 베를린에 온 사람들 이였다. 우리는 다 같이 저녁을 해먹기도 하고, 파티를 하기도 하면서 살았다. 플렛메이트 한 친구가 다른 친구 둘과 썸을 동시에 타는 것을 보기도 하고. 다른 플렛메이트 친구 혼자서 베를린의 유명한 클럽을 갔다 왔다가 집 문 앞에서 바로 자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반년정도 살았는데, 살고 나서도 사람들과는 연락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다가 서서히 연락이 끊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베를린을 떠나서 다른 도시로 떠난 사람들도 있었고, 삶에서 가는 방향이 다르다 보니 서서히 연락이 끊긴 경우도 있었다.



다섯 번째 집은 한국으로 치면 일층집이었는데, 방범을 위해서 창문에 덧데어진 철로 된 커튼이라고 해야 될까, 여하튼 그것을 내리고 나면, 방이 너무 깜깜했다. 자다가 학교 수업이나 시험을 빼먹은 적이 있어서 살기 힘들었다. 여기서는 두 명의 플렛메이트가 있었고, 한 명의 플렛메이트의 파트너가 자주 집에 와서 같이 놀 때가 많았다. 역시나 이사 가고 나니, 연락은 서서히 안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여는 파티를 할 때, 가는 편이었는데, 안 가다 보니 연락이 끊겼다.


음... 글을 쓰다 보니까, 학생비자가 끝나기 전에 앞에 놓인 조그만 목표들을 해치워야겠다는 생각들로 살다 보니, 살면서 내게 왔었던 인연들을 많이 보내고 살았다. (베를린이 워낙 또 많이들 왔다가 떠나는 도시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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