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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Aug 13. 2024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써서
지원하기

코로나 시대의 구직과 세 번의 이직 (2)

이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회사를 다닌 지 2개월째였다. 

회사일은 주 40시간으로 일을 했는데, 이직준비를 하다 보니 주 60시간으로 일을 하는 것과 같던 하루였다.

(주마다 40 시간 회사 일을 하고, 아마 대강 20시간은 이직준비로 시간을 보냈다.)


UX/UI 디자이너를 찾는 공고가 링크드인에 보이면 지원부터 하고 봤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코로나로 인해, 디지털 분야에 투자를 하려는 사람과 회사들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IT 쪽의 수요가 많았다. 다만 나는 막 회사를 졸업한 처지라는 것이었다. 학생신분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포지션은 2-3년의 경력자를 찾았다. 그래서 막무가내 정신으로 여기저기 많이 지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생각하면 저절로 이불킥이 되는 순간들도 많았다. 커버레터(한국으로 하면 지원동기를 쓰는 것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를 많이 쓰다 보니, 회사에 맞춰서 좀 바꾸는 부분도 있지만, 유지하는 부분도 있는데, 회사 이름을 바꾸지 않고 지원한 적도 꽤 있었다. 당연히 면접 보자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 



한 번은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보기 전에 회사 조사를 한번 더 하지 못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대충 본 회사 홈페이지가 너무 비주얼이 좋아서, 나는 내가 디자인 회사에 지원을 한 줄 알고 면접을 보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뿔싸, 디자인 회사가 아니라 통신사였다. 이제는 기억에 나지 않을 정도로 나의 생활에 그렇게 가깝게 있던 회사가 아니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아주 화끈한 상태의 감정을 강렬하게 남긴 에피소드가 되었다. 당연히 첫 인터뷰 이후로 더 이상 초대를 받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유연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셀 수 없는 이력서를 내고 간간히 연락이 오면 면접을 온라인으로 봤다. 기억으로는 물불을 안 가리고 한 50개쯤의 이력서를 내면 한 군데쯤에서 연락이 왔던 정도였다. 이러한 나날을 사 개월을 유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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