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뒤란 - 안현미
불멸의 뒤란 - 안현미
가끔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이 유서 같다가 그것들이 모두 연서임을 깨닫는 새벽이 도착한다
음력 6월 9일 오늘은 내가 죽은 날 불면을 건너온 혓바늘 돋은 내 불구의 시를 위로하려는 듯 막힌 골목 끝 '卍'을 대문 높이 걸어놓은 무당집에서 건너오는 징소리 징징징징 딩딩딩딩 내 불면의 뒤란에 핀 백색의 목련꽃은 말한다
아직은 조금 더 실패해도 좋다고 네가 켜든 슬픔 한 덩어리의 시도 시들고 시들면 알뜰히 썩을 운명이라고 크나큰 실패마저도 그렇게 잘 썩어갈 거라고 모든 연서는 죽음과 함께 동봉되어오는 유서라고 외롬이라고 음악이라고
왜 음악은항상 고장난 심장에도 누군가와 함께 도착하고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느닷없이 호출하는 것인지
불면으로 지샌 음력 6월 9일 오늘은 또 내가 죽은 날 너무 외로워서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뒷걸음질로 걸어갔다던 어떤 사막의 여행자처럼 불면의 밤을 뒷걸음질로 걸어가는 여자가 사라지는 손금을 들여다본다 발자국을 따라 연서 같은,유서 같은 시를 쓰고 있는 여자가 도착한다
부디 오늘은 당신에게 행복한 날이길. 내 마음속 단언. 당신을 복원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근 며칠 속에는 죽음과 같은 말들이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사랑이 사랑인 것인가? 아니면 서로를 잡아먹고 토해내는, 속이 쓰리고 자칫하면 녹아내리는 조각들을 사랑으로 칭해 행하는 것인가? 아니 행동이 사랑인 적이 있던가?
무언가 깨져버린 것을 되돌린다는 것은. 필시 상상을 동반한다. 그것이 과거의 모습이건, 미래를 기대하는 것인지는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각이다. 그럼 깨져버린 것이 우리 사랑이라고 하면, 나는 그 조각들을 보고 사랑을 회상하거나, 사랑을 기대하거나, 산산조각난 사랑을 증오하거나, 사랑하거나.
모조리 다 붙여내고 있습니다. 아주 조심히요.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 붙이는 것은 상관없지만, 잃어버리면 그것은 실패와 직결됩니다. 완성을 바라는 총알에 미완은 불발 아닌가요?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죽어보지 않아서. 하지만 사랑이 죽음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래서 당신을 만났을 때 저는 죽어있습니다. 죽은 것은 살아나지 않지만 저는 죽지 않고 사랑을 해서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죽자고 결심한다고 죽어지는 것이 아니듯, 사랑도 결심이 결정하진 못했습니다. 제가 죽었으면 하는 당신의 노여움이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 이 문단을 덧붙입니다.
결론은 결국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뚫어지게 보니, 제가 항아리를 만든 것 같습니다. 너무 작아서 잘 모르겠지만 뭐든 담길 듯 하니 항아리라고 부르려 합니다.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미안한 일이 많습니다. 저의 단어가 그대에겐 날카로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아픔이라 말한다면 철회하겠습니다. 편지로만 주고받았던 우리의 사랑이 부끄럽다면, 그 종이들을 불로 태워 철회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연서라 생각해 쓰여진 것들이 간혹 유서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사랑의 함의에는 우리가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그쵸. 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