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肥滿)

감정이 만들어 내는 신체적 반응 (9)

by 조자연

우리는 흔히 ‘먹는 문제’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정과 자율신경계의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살이 찌는 과정에는 단순한 열량 섭취보다 훨씬 깊은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감정이 몸에 남는 방식.

바로 ‘지방’이라는 형태로 말이죠.


비만은 단순한 체형의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이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 염증, 면역, 순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신체는 지방을 저장하고,

잘 빼지 못하게 되는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부신에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이 호르몬은 생존을 위해 지방을 축적하라는 신호를 내보냅니다.


특히 복부에 지방을 저장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며, 혈당은 높아지고
인슐린 저항성이 생겨 복부비만과 내장지방이 증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감정 스트레스는 식욕 조절 호르몬에도 영향을 줍니다.

렙틴(포만감을 전달하는 호르몬)의 기능이 떨어지고,
그렐린(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은 오히려 증가해
‘배는 고프지 않은데도 계속 먹고 싶은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몸 안의 염증 반응도 높아집니다.
사이토카인 같은 염증 물질이 증가하고, 지방 조직은 원래 염증에 민감한 부위이기에
이 염증은 다시 지방 분해를 방해하게 됩니다.
결국, 염증이 지방을 만들고, 그 지방이 다시 염증을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 과정은 면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과도한 지방세포는 면역 기능을 교란시켜 대사 질환의 위험을 높입니다.
실제로 비만 자체가 저등급 만성 염증 상태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감정적인 긴장이 반복되면 자율신경계의 균형도 깨집니다.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되면 혈관은 수축되고, 말초로 가는 혈류는 줄어들게 됩니다.
그 결과 위로는 열이 몰리고, 아랫배는 차가운 상태가 되며,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담음(痰飮) 정체로 이어집니다.


한의학에서는 감정이 억눌려 간기의 흐름이 막히면,
소화기가 약해지고, 수분 대사 장애가 생기며, 그로 인해 담습이 형성된다고 봅니다.


이 담습은 지방의 연소와 배출을 방해하고, 체내에 노폐물과 습기를 쌓이게 만들어
결국 체중은 점점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감정은 ‘먹는 행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간식을 찾고,
외로움이 클수록 야식에 의존하며,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단 음식을 고르게 됩니다.
이때 느끼는 포만감은 진짜 ‘배부름’이 아니라,
‘위장이 꽉 찼다는 팽창감’이 감정을 눌러주는 듯한 착각일 뿐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속이 허해서 먹었어요. 배는 안 고팠는데..."


한의학적으로 보면 이런 감정형 비만은 간기울결, 비허담습, 신허형으로 구분됩니다.
간기울결은 억눌린 감정으로 간의 기운이 막혀 위장을 억누르고,
비허담습은 비장의 기능 저하로 수분대사에 문제가 생겨 담이 쌓이며,
신허형은 장기간의 스트레스로 신장의 에너지가 약해져 대사력 자체가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러한 감정 기반의 비만은 단순한 식단 조절만으로는 쉽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감정의 정리와 체질 개선이 병행되어야 비로소 반응이 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첫째, 감정과 섭식을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무언가 먹기 전에 "나는 지금 진짜 배가 고픈가, 아니면 마음이 허한가?"를 먼저 물어보세요.
이 질문 하나로 먹는 행동이 달라집니다.


둘째, 섭식 이외의 스트레스 해소 루틴을 만들어야 합니다.
명상, 심호흡, 산책, 글쓰기 등,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습관처럼 마련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말초순환을 회복시키는 생활습관을 들여보세요.

걷기, 반신욕, 족욕, 발끝치기, 아랫배 온열관리 등은
하초의 기혈순환을 도와 몸의 흐름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넷째, 체질에 맞는 한방요법도 도움이 됩니다.
간기울결에는 소요산계 처방을, 비위허약에는 보중익기탕과 평위산을,
담습형 비만에는 이진탕이나 방풍통성산 등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단, 반드시 체질과 증상에 맞는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이건 잊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감정은 몸에 쌓입니다.

살로도, 습기로도, 무력감으로도.


살은 단순히 많이 먹어서만 찌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쌓일 때, 우리 몸은 그것을 에너지로 바꾸지 못하고 저장하려 합니다.

그렇게 지방은 몸이 만든 감정의 방어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방을 빼는 일은,
때로는 감정을 풀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keyword
이전 15화난임(難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