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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na Oct 05. 2021

[열 권] 생각의 힘에 관한 책

[사고의 본질] - 더글러스호프스태더


‘이해하다 to make sense’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말은 일단 휴면 상태에서 깨어나면 이 혼돈에서 일정한 질서를 찾도록 도와주는 친숙한 특정 범주가 저절로 촉발되거나 무의식적으로 환기된다는 것을 뜻한다. 크게 보면 이 말은 온갖 단어가 머릿속에서 즉각 떠오르는 것을 뜻한다.
p.58


가끔 '이 책은 꼭 사아해!'라고 느끼는 책이 있는데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는 책을 위주로 사려고 합니다. 하지만, 가끔 예외적인 책들도 있습니다.

어렵고, 페이지가 많은 책들입니다. 도저히 한번 읽어서는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서점에서 구매를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고, '어려운' 모두에 해당하니 꼭 사야 하는 책이었습니다.


다만, 이 책은 바로 사지 않고 '언젠가는' 사야 할 책이라고 수식어를 붙여놓고 아껴(?) 놓고 있었습니다. 우선 4만 원이 넘는 가격과.. 이 책을 막상 사 두고 언제 다시 읽을지, 또 얼마나 읽을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은 구입할 가치가 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앞으로도 두, 세 번은 더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번밖에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책을 더 잘 알고 싶어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제 나름의 정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고의 본질], 더글러스 호프스테디 외 저, arte, 2019


이해하기 조금 어렵고, 양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이해하고 싶은 이유는 이 책의 제목대로 사고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개념을 분리하고 분석하여 그 개념들의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생각의 힘에 관한 책


이 책을 읽다 보면 앞으로 어떻게 주변을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그리고 생각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스스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종종 "몇 개 언어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은 전적으로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세상의 언어가 마치 흑백이 분명한 문제처럼 두 개의 정확한 기준, x라는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와 x라는 사람이 구사하지 않는 언어로 나뉜다는 암묵적인 생각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처음 공부한 시기, 공부한 맥락, 구사한 기간 등 많은 요소에 따라 각 언어를 다른 수준으로 말한다. (중략) 요컨대 "몇 개의 언어를 합니까?"라는 질문은 간단한 질문이 아니며, "몇 가지 스포츠를 합니까?", "얼마나 많은 영화를 좋아합니까?". "만들 수 있는 수프가 몇 개입니까?". "몇 개의 대도시에서 살았습니까?", "친구가 몇 명입니까?", "오늘 몇 가지 일을 했습니까?"라는 질문처럼 그에 대한 간단한 답도 없다.
pp 86-87

 이 책의 특징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분석해본다는 점입니다. 일상의 모든 요소에 대해 깊게 탐구하려고 하고 질문을 건네는 일이 어떻게 보면 조금 피곤(?)하게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닌가 싶다가도 사고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해줍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맞아,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는 부분이야'라며 공감하면서 읽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의 확장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2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솝의 '여우와 포도' 이야기에 담긴 통찰력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관념을 예측했다. 1950년대 이후 사회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 Leon Festinger의 선구적인 연구 덕분에 인지 부조화가 그 완화라는 개념이 심리학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 개념은 해당 이론을 설명할 때 종종 근본적인 사례로 제시되는 여우와 포도 이야기의 직계 자손이다. 이 현대적인 이론이 제시하는 기본적인 견해는 개인이 상충하는 인지적 상태에 직면할 경우 그중 하나를 수정하여 내적 긴장을 완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가령 여우는 포도를 먹으려는 욕구가 먹을 수 없는 무능력과 충돌하기 때문에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진다. 그래서 여우는 먹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거부함으로써 갈등을 초래한 두 원인 중 하나를 수정한다. 그래서 포도는 시니까 더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따라서 딸 수 없다는 사실에 더는 짜증을 내지 않게 된다. (중략) 신 포도 이야기는 사후에 자신도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자의적이고 종종 의심스러운 변명을 통해 고통스러운 상황을 덜 고통스럽게 만드는 인지 부조화의 완화라는 관념, 더 일반적으로는 합리화라는 관념의 핵심을 담는다. 여우가 한 거짓말의 노골적인 속성은 이 우화를 신 포도 범주의 이상적인 핵심 요소로 만들며, 모든 신 포도 상황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솝의 천재성은 부조화를 줄이는 대단히 단순하고 매력적인 상황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솝 우화는 수 세기 동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 심리학의 진전된 내용을 예측했다.
p.163

 위 부분을 읽으면서 인문학의 여러 요소가 나타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먹지 못하는 포도에 대해 '저건 신포도 일거야'라고 말하는 여우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속성에 대해 이솝은 문학으로 남깁니다. 그리고, 이후 2000여 년이 지난 후 페스팅거라는 심리학자는 이런 인간의 속성에 대해 변명으로 상황의 고통을 덜려고 하는 심리라고 하며 '인지부조화의 합리화'라는 명칭을 정의 내립니다. 인문학이 어떤 것일까 했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을 선뜻하기가 어려웠는데, 인간의 마음은 어떻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알려주는 부분인 것 같아 좋았습니다. 인문학을 이해하기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다니.. 그래서 사고의 본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험한 암벽을 초기에 개척한 탁월한 등반가들은 유망한 경로를 포착하는 기술, 피톤을 박기에 유리한 지점을 파악하는 직감, 앞으로 오를 등반가들이 믿고 쓸 수 있도록 피톤을 바위에 박는 능력 같은 수많은 재능을 가졌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심히 난해한 상황이라는 절벽에 수없이 박힌 개념적 피톤의 수혜자다. 우리는 창의적인 선조들이 만들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대한 일련의 개념을 물려받은 덕에 수 세대 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추상화의 가파른 비탈길을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련의 개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 모든 힘이 우리를 선조들보다 더 똑똑하고 창의적으로 만들까? (중략) 마찬가지로 문화가 물려준 표준적인 라벨을 활용하여 수많은 상황의 핵심을 쉽게 집어낼 수 있다고 해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과 지도가 없는 황야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184

 어릴 적에 만화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와 얽힌 이야기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 '왜 이게 위대한 발명이지? 정말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라고 잘못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잊고 살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린 제가 생각했던 것 중에 오류가 있었고 구체적으로 그 오류가 무엇인지를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제가 암벽에 이미 박혀 있는 피톤을 물려받아 딛고 있었기 때문에 비탈길에 좀 더 쉽게 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을 읽으며 제가 앞으로 사고를 깊게 해야 하는 이유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념은 물리적 도구와 다른 특별한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단지 외부적 기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습득한 사람의 불가결한 일부가 된다. ... 중요한 것은 그 책에 나온 개념을 내면화하여 개념 공간을 풍부하게 만들고 새로운 범주화와 유추를 할 수 있는 사상가로 변하는 정도이다. ... 개념적 피톤은 단지 도구가 아니라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고 변화시켜 더 깊고, 통찰력 넘치며, 정확한 범주화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기구다. 이 정신적 피톤은 더 이상 외부의 절벽에 있는 움직이지 않는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의 일부가 된다. ... 아인슈타인이 지금 젊은 물리학자라면 현대 물리학에 어떤 기여를 할까? ... 프로이트는 인지과학에 어떤 것을 줄까?
p.185
유추 작용은 실제로 모든 사고의 이면에 있는 원동력이다. 우리가 지닌 각각의 정신적 범주는 시간과 공간 양면에서 서로 떨어진 대상을 잇는 일련의 긴 유추를 통한 결과다. 이러한 유추는 범주의 생존과 안녕에 필수적인 유연성을 부여하는 후광을 비춘다. 유추 작용은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상황에서 생각하도록 행동하도록 해 주고, 풍성한 새로운 범주를 제공하고,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그 범주를 확장하여 풍부하게 만들고, 방금 일어난 일을 적절한 추상화 층위에 등록함으로써 미래에 일어날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유도하며, 예기치 않은 강력한 정신적 도약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p.192

 사고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유추 작용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꾸준히 범주를 확장하여 풍부하게 만들면서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사고의 본질인 것처럼, 유추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진 않습니다. 이어서 '유추는 항상 경이로 가득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단순히 '둘 다 머리, 팔다리 둘이 있으니까 나는 너와 비슷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단조롭고 생기 없는 유사성을 따를 경우 흥미로운 점이나 영향력이 없다는 것도 짚어줍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조금 괴롭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쉴 수 없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가져보는 것 같아 뿌듯함도 생깁니다.


읽어나가다 보면 범주와 무의식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요,

우리 인간은 모두 범주 덕분에 사고할 수 있으며, 우리가 공유한 범주의 목록을 집단적으로 늘림에 따라 개인적 목록도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우리는 조작할 수 있는 것이라는 범주와 부피를 가진 물체라는 범주처럼, 주위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대단히 추상적인 범주에 의존한다.
p.350
말실수에 대한 프로이트식 관점은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사람의 심리에 숨겨진 어두운 비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p.356

 범주를 늘려나가고 무의식에 대해 들여다보면서 세상과 자신을 이해 가는 내용이 이 부분의 핵심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본격적으로 심리학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고정관념에 관한 소주제는 '우리는 어떻게 유추를 조작하는가'이며, 고정관념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이며, 학생들이 개념을 형식적으로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순진한 유추를 통해 내면화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정관념은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고정관념은 사정을 상당히 단순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대단히 도움이 된다. ... 고정관념은 쉽게 지각할 수 있는 표층적 속성 덕분에 범주를 추가로 세분할 정도로 예외의 빈도가 높기는 하지만, 옳을 가능성이 충분한 ‘얕은’ 심층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범주다. 표층 혹은 더 정확하게는 표층을 지각하는 양상은 전문성과 함께 진화한다. 그 결과 한때 표층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특성이 쉽게 드러나서 새로운 심층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p.472
학생들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는 개념을 형식적으로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순진한 유추를 통해 그러니까 더 친숙한 범주와 유추를 통해 내면화한다. 이 범주는 모든 영역에서 나올 수 있으며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 영역에서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식 영역이 자립적이라는 추정은 잘못된 것이다. 학생들은 불가피하게 해당 영역에 속하는 모든 새로운 개념을 삶의 다른 영역에서 얻은 경험과 연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진한 유추는 일단 초보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수년 내에 걸쳐 학년이 높아진 동안에도 머릿속에 남는다. 모두가 간단하고 근본적인 직관을 깊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순진한 유추는 대단히 지속적이어서 특정 영역에서 학교교육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p.536

 그럼 위에서 말하는 '순진한 유추'는 무엇일까요? 작가는 바로 다음 구문에서 '순진한 유추'의 속성을 말해줍니다.

현실적인 개념들이 순진한 유추 수백 개를 통해 기술 자체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흔한 일상적 활동에 뿌리를 둔 대단히 친숙한 활동을 토대로 삼는 이 순진한 유추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기술적 개체에 온갖 종류의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속성을 최소한의 인지적 비용으로 부여해준다. 순진한 유추에 기초한 용어는 대단히 모호했을 속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때문에 쉽게 유행한다.
p.544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워서 생각을 멈추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작가가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논리를 펼쳐나가는 과정이 있어서 계속 생각을 하면서 읽어나가야 했습니다. 간단히 휴식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삶의 방향을 새롭게 다져보고 싶을 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절대로 한 번만 읽어서는 안 되는 책으로 기록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추가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요, 바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여러 나라 말 앨리스>>입니다. 독서 리스트에 넣었지만.. 도서관에는 없는 관계로 잠시만 보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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