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가 '나'여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직설적으로 말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그러면서도 눈치는 보는 '나'여서,
조금 상냥하고 밝은 표정으로 무난한 관계를 만들어가도 되는데 그런 표정을 짓지 않은 '나'여서,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복잡하게 풀면서 불평을 안 하는 것도 아닌 '나'여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타협하지 못하는 '나'여서,
내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눈치챘지만,
어느 날
이런 내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문제와 원인을 알고 있음에도
그리고 조금의 해결방안을 모르는 것도 아님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나'여서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살아가는 게 조금 편한지 알고 있는 또 다른 '나'는
마음 어딘가 웅크리고 있는 고집스러운 내가 불편해졌다.
그러다
타협하지 않고,
불평불만이 많고,
늘 어두운 표정에,
말도 예쁘게 하지 않는 나를,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 고집을 가지고 있는 나를,
20년이나 만난 친구를 만났다.
아무 기회조차 없었던 시기에 대해 말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쥐어진 것이 작다는 느낌을 내심 표현했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한마디 했다.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야?
"그때 그 기회가 주어졌어봐, 너 지금 24시간 열심히 또 뭔가 만들고 있었겠지. 다달이 나갈 거 걱정하면서 마음 졸이면서 하고 있겠지."
바라면 실망도 클 테니
운이 별로 없는 나는
기대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노력에 비하면 작은 보상이 따랐고,
기회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노력이라도 많이 해야 남들만큼만이라도 살 수 있을 거라 푸념했다. 그러면서 뭔가 계속해야만 하는 삶을 부담스러워했다.
기회를 가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니..
행운은 기회가 올 때 쓰는 말 아니었나? 기회가 없는 것도 행운일 수가 있다니.. 내가 알고 있던 행운에 대한 정의에 맞지 않는다.
집에 오면서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면서
다행이라는 평범한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잔잔한 위안이 올라왔다.
내가 정말 단 한 번의 행운 없이 지나온 건 아니었구나.
지금의 나는 나라서 힘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 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어찌어찌 열심히 살아갈 테니까.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지금 상황이 내가 가지지 못했던 기회의 방향으로 갔을 때보다는 괜찮은 거 같다.
살면서 점점 여러 선택지와 경우의 수를 맞이하게 된다. 가지 못한 길이 생기고 가지지 못했던 기회들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어떤 선택과 기회는 내 삶의 방향을 틀어버릴 정도의 중요한 순간이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고 안타까움이 생기기도 했었다. 하나라도 더 가지고 더 선택할 수 있으면 내 삶이 좀 더 유리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불만이 많고 타협하지도 않는 고집스러운 '나'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해내긴 했을 것이라는 응원과
가지는 것만이 행운이 아님을 알려준 친구의 말을 곱씹어 보니,
나는 아직도 나를 알아가는 중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