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

20대가 지났음에 미소지을 수 있는 행복

by 만년필

어렸을 적, 행복이란 것은 자주 박장대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학창시절 행복해보이던 친구들은 사실 자기자리에 앉아 공부만 하는 친구들이 아닌 복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하던 아이들이었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으나, 나는 유난히 학교에서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던 친구 중 하나였다. 공부를 하던도중, 행복하지 않다 생각들던 것도 여러번. 그럼에도 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수 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우월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지금 행복을 다 써버리고 있는 친구들보다도 차곡차곡 행복을 모아 복리로 누리겠다는. 그게 더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상상만큼 금방 행복을 찾지는 못했다. 중, 고등학교 행복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고난 이후,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초록색 병 속의 이야기들이 행복인 줄 알았다가, 처음 사겼던 남자친구와 나누는 먼 미래의 이야기들이 행복인 줄알았다가, 고등학교보다 더 다양한 세상을 살고 있는 상위권 대학 친구들 중 하나라는 사실들이 행복인 줄 알았다가, 언젠가 나는 이미 행복하지 않는 중이구나를 알아버렸다.


지금와서 그게 언제였을까 되돌아보자면, '우리'의 초록색 병에 넣었던 이야기들이 결국엔 '모두'의 초록색 병인걸 알았을 때던가, 처음 사귄 남자친구가 어떤 대학선배와 자취방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때던가, 그 이야기가 또 모두의 초록색 병을 장식해가던 때였던가, 다른 사람의 초록병이 눈물로 채워진다는 사실 따위 본인들의 즐거운 초록병일뿐이라는 사람들이 상위권 대학의 엘리트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던 때였던가. 행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또 다른 행복하지 않은 사실을 불러올 뿐이었다.


그렇게 언젠가 내 스물은, 내 20대는 왜 이리도 반짝거리지 않을까 슬퍼했던 나날들. 어디선가 20대 청년들의 풋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왜 내 20대는 눈물로 얼룩만 져버린건지, 왜 내 20대는 저런 풋풋함보다 현실의 팍팍함을 느끼고 있는건지 참 많이도 고민했다.


그렇게 지나고 내 서른은, 내 30대는 왜 이리도 반짝이는지. 지나간 눈물들이 모아져 이제야 반짝임으로 남게된건지. 잠깐의 순간들에도 행복함이 밀려온다. 이를테면 그저 무난하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오늘, 남편도 약속이 있다는 어쩐지 홀로 쓸쓸할 뻔한 오늘, 노력해서 건강하게 먹어버릇해야한다는 생각에 1시간 가량 저녁을 준비한 오늘, 겨울에 제철인 시금치도, 새콤하게 묻힌 연근도, 밥위에 딱맞게 올라간 계란후라이도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정리하고 침실에 들어와 편안한 노래와 함께 글을 쓴다. 마음이 차오르는 행복감이다.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어 카메라를 켰는데, 이 마음이 잘 담기지 못해 결국 카메라를 닫았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그냥 따듯한 샤워 후 편안한 마음으로 글 쓸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구나.


어릴 적 다른사람과 함께 박장대소하는 일이 많아지기만을 바랬는데, 사실 행복은 혼자있을때조차 마음이 차올라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일임을. 그저 순간의 물건만을 기억하는 사진이 아닌 내 마음의 흐름을 기억하는 글로 남기고 싶어지는 순간이 행복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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