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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미 Apr 25. 2019

사회운동의 오디언스와 채널을 성장시키자

콘텐츠와 사회운동 3화

콘텐츠를 사회운동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콘텐츠나 소셜 미디어의 전달력을 활용하기만 하면 사회운동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환상일 것이다. 사회운동에서조차 이미 많은 이들이 카드뉴스를 만들고 영상을 만든다. 그런데 왜 잘 안 될까. 단순히 그들의 정치적 의견이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대중적이지 못하기 때문일까? 이 질문을 좀 더 물고 늘어져보자.


짧게 정리하고 가자면 더 큰 문제는 관점이다. 메시지 전달 과정이 사회운동 전체를 규정하고 룰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관점 말이다. 여전히 사회운동에서 더 중요한 건 정치성이나 진정성이기 때문에ㅡ실제로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ㅡ 콘텐츠를 그냥 좀 더 전달력 높은 방식으로만 생각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그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대중과 직접 만나는' 자리일 것이다.


앞으로는 관점의 변화라는 지점에 주목해서 콘텐츠 기반 사회운동을 통한 정치적 변화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 강조할 점은 콘텐츠 기반 사회운동이란 다름 아닌 오디언스와 채널을 성장시키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콘텐츠 마케팅의 제1원칙은 오디언스 형성이다. 즉, 콘텐츠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을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전달하며, 채널을 중심으로 일정한 오디언스 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디언스가 존재해야 채널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콘텐츠 마케팅에 대한 논의들을 생각해보면 오디언스가 최우선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일단 어떤 오디언스가 볼 것인지보다 내가 어떤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을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잘 만들 수 없는 내용, 잘 모르는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건 여러 위험이 있을뿐더러 특히 자기 지속성에 문제가 많아진다. 몇 번은 어떻게 해내더라도 금방 질려 지속할 수 없는 내용을 계속 다룰 순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콘텐츠 마케터들은 콘텐츠 전략을 세울 때 스위트 스팟sweet spot이나 콘텐츠 틸트content tilt를 먼저 찾아내라고 조언한다.

CMI의 콘텐츠 창업 모델. 조 풀리지는 콘텐츠 창업 모델을 6가지 단계로 정리하며 첫 두 단계를 스위트 스팟과 콘텐츠 틸트로 제시했다.

쉽게 설명하면 스위트 스팟은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사람들 역시 좋아하는 콘텐츠를 찾아내는 것이고, 콘텐츠 틸트는 경쟁이 없는 영역을 찾아 차별화 요소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냐에 대한 대답인 셈이다. 다만, 이 두 가지를 확정하는 과정 역시 자기 역량에 대한 질문을 제외하면 오디언스 요소가 대부분이다. 핵심 타겟 오디언스가 누구인지, 오디언스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할 것인지, 이 콘텐츠를 통해 오디언스가 얻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디언스에 대한 논의를 소셜미디어에 대한 논의에 일치시키는 경우도 많다. 오디언스에게 경청하고 그들에게 유용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과정, 그리고 채널 중 하나로서 콘텐츠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오디언스나 채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저 소셜미디어가 중요하더라는 짐작 너머로 나아갈 수가 없다. 소셜미디어도 채널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채널에 적합한 콘텐츠 형식, 채널 내 오디언스의 이용 방식이나 성향, 콘텐츠 전략에서 그 채널의 역할, 채널에 적합한 어조 같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선 이러한 논의들에 대해 각각의 중요성을 피상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이를 지탱하는 핵심요소인 오디언스와 채널의 중요성에 대해 먼저 다루고자 한다.




그럼 이제 사회운동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보자.


오디언스와 채널에 대한 강조는 사회운동이 일련의 대중 및 지지자 형성에 집중하고자 하는 방식에 있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먼저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온라인 채널을 확보하고, 이를 확대시킴으로써 오디언스 층을 지속적으로 넓혀간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특히 기존 사회운동의 경우 회원이나 행사 참여, 혹은 선거 득표 등이 아니면 지지 범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은 보다 넓은 잠재적 지지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며, 이들을 구독이나 상호작용 등의 데이터로서 보다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온라인 공간에 기반한 만큼 댓글 등 정성적인 상호작용 역시 보다 활발하게 일어난다.


한편 이 오디언스는 메시지의 내용에 따라 다양한 대중을 형성한다. 각각의 오디언스 층은 기존 사회운동이 얘기하는 여러 대중 호명과 겹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콘텐츠의 내용 혹은 채널의 스타일에 반응하고 동조하는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대중이다. 그들은 단순히 우리를 지지하느냐, 우리를 후원하느냐, 우리 행사에 몇 번 나왔느냐로 판단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오디언스와 사회운동이 채널의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점이며, 채널과 그 영향력의 확대에 함께 기여한다는 점이다. 즉 채널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오디언스 층의 정체성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오디언스는 콘텐츠를 통해 메시지를 얻고,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한다. 채널의 문법과 일련의 메시지 세트로 구성된 의식을 공유한다. 채널의 스피커는 확실한 반면, 채널이 오디언스와 공유한 일종의 규약은 쉽게 깨뜨릴 수 없다. 일관성과 꾸준함이 곧 단편적인 메시지를 특정한 편향으로 종합하기 때문이다. 채널에서 오디언스의 피드백 역할은 비교적 뚜렷하며, 이를 콘텐츠에 어떻게 반영하느냐가 오디언스 유지와 확장에 큰 영향을 준다. 이처럼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은 온라인 영역을 기반으로 사회운동과 오디언스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


한편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에 있어 핵심적인 조직화 과정은 오직 오디언스의 형성이다. 다른 조직화 과정 역시 필요할 수 있으나, 궁극적인 목표로 볼 수 없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조직화의 목표가 활동가 재생산을 위한 퍼널 배치가 아니라 특정한 오디언스 층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뀐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운동사회 바깥의 오디언스와 연결되어 기존 커뮤니티의 폐쇄성을 깨야한다는 점이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에선 오디언스의 형성이 곧 조직화라고 주장할 것이다. 기존 사회운동 프로세스에서 조직화란 곧 활동가를 조직해가는 과정이었다. 한편 CBM 프로세스에서는 조직화란 채널 운영을 통해 일련의 오디언스를 모아내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운동 조직에서 활동가 재생산의 중요성을 간과한다거나, 더 이상 오프라인 영역에선 일련의 대중이나 지지자를 구성할 수 없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문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이며, 이를 통해 어떤 효과를 얻어내고자 하는지이다.


중요한 것은 조직화 과정에서의 퍼널 배치를 어떤 관점에서 수행하는지이다. 나중에 따로 다룰 내용이지만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은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직접 행동이나 활동가 재생산을 폐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수월하도록 만든다. 기존 사회운동의 퍼널 배치는 활동가 조직화라는 단일한 목표에 의해 수행되기에 측정과 평가에 큰 난점이 있었다. 그러나 CBM 프로세스에선 퍼널을 특정한 전환에 따라 배치한다. 사회운동이 당면한 성격에 따라 측정해야 할 효과와 목표가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은 오프라인 영역을 폐기하고 온라인 영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오프라인 영역을 어떻게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지에 집중한다.


기존 커뮤니티의 폐쇄성에 대해선 피드 밖 오디언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기존의 폐쇄성은 활동가 중심의 커뮤니티 형성의 부대효과이다. 이는 현재 운동사회가 극복하지 못한 중대한 문제 중 하나이다. 운동사회 바깥의 실재하는 대중들ㅡ언제나 운동사회가 얻고자 했던ㅡ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사회운동의 확장에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영향력이다. 운동사회 내부에서 통용되기만 하는 영향력에 안주하면 안 된다. 쉽게 말하자면 활동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몇 백 명 정도의 영향력 이상으로 사회운동의 메시지가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콘텐츠를 통해 뚫어보자는 것이다.


사실 모든 운동단체가 페이스북을 쓴다. 유튜브는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모두 동영상 콘텐츠를 만든다. 그런데 왜 그것이 변화로 느껴지지 않는 걸까. 한편 우리는 왜 닷페이스에서 변화를 감지할까.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닷페이스가 십대여성인권센터와 함께 만든 'Here I Am' 시리즈는 콘텐츠 제작은 물론 피해자 지원 모금운동, 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을 위한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답은 단순하다. 콘텐츠 전략이, 콘텐츠의 대상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닷페이스의 콘텐츠는 밀레니얼 세대, 특히 20대 여성 이용자를 주요 오디언스로 한다. 특정하게는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이 많고 관련 활동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닷페이스의 성공은 단순히 뛰어난 영상을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닷페이스는 자기 미디어의 오디언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연관성 높은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해왔다. 오히려 닷페이스의 성공은 이런 콘텐츠 전략을 제대로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한편 운동단체들에서 만드는 콘텐츠들은 그런 전략이 부족할뿐더러 메세지보단 호소 자체에 집중한다. 그런 메시지에는 무엇을 할 것인데 여기에 와달라는 홍보 외에 다른 내용이 존재하기 어렵다. 이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라 예상되는 오디언스도 관련 단체의 회원이거나 그 외에는 불분명하다. 그 경우 사실 이미 확정된 오디언스 층을 제외하면 그 콘텐츠의 역할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또한 운동단체들은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일종의 미디어로서 기능하기란 더 어려운 셈이다.


사회운동의 오디언스는 활동가들의 개인 피드나 단체의 공식 페이지에 국한된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특히 페이스북은 광고 기능을 통한 노출은 강화되고 있지만, 그 외의 피드는 노출되기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 채널 영향력이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사회운동이 진정 대중을 획득하고자 한다면, 운동사회 내부나 활동가 그룹들, 오프라인으로도 알고 있는 소수의 지지자, 기존 인간관계 등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연결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콘텐츠는 영향력 있는 메시지를 가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채널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온라인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를 넘어설 가능성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이 문제들은 사실 근본적으로 대상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말과 맞닿아있다. 오디언스가 곧 메시지를 규정한다. 일반 대중에게 어떤 내용을 전할 것인지에 대해,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이 문제를 어떻게 언급하고 행동으로 전환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관점의 변화 없이 이 부분을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역시 사회운동의 무대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시킨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너무 익숙해져 중요해지지 않은 것 중 다시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는 원칙의 회귀 그 이상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해진다. 사회운동이 스스로를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그 원칙들을 이용해 새로운 모드mode를 형성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오래된 유행의 말로 표현하자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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