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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미 May 15. 2019

활동가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콘텐츠와 사회운동 7화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은 정치적 변화에 이어 조직적 변화 역시 가져온다. 조직적 변화는 활동가의 변화, 조직의 변화, 대중의 변화 세 가지로 나누어서 보려고 한다. 이 변화들은 대부분 규정과 역할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글에선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을 통해서 활동가는 어떤 존재로 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활동가의 변화는 다양한 역할의 가능성, 자기 성장에 대한 요청, 인플루언서로서의 활동가, 직업적 가능성이란 네 가지 측면에서 얘기해볼 것이다.


다양한 역할의 가능성


먼저 다양하지 않은 역할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겠다. 지난 글에서 기존 사회운동의 프로세스에선 오프라인 수행, 특히 조직화 과정이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모든 활동가들은 조직화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을 지녀왔다. 물론 조직화는 사회운동의 기본이고, 조직가의 역할은 어느 조직에서나 중요하다. 그러나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에선 조직가 역시 특정한 일을 수행할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특정한 일을 수행하고 있음이 더 가시적이다. 사실 어느 사회운동이든 각자 해낼 수 있고, 해내고자 하는 능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오디언스를, 대중을 어떻게 형성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활동가의 재생산에 관련한 것들ㅡ모집과 교육, 그리고 훈련 같은ㅡ은 모두가 해야 할 일도 아니고, 솔직히 모두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조직가가 조직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역할이 공통의 목적과 전략 아래 규합되는 과정이 조직을 구성한다. 운동가와 조직가를 단순히 일치시키면 그 외부가 너무 많아지고, 거기에 권위를 부여하면 역할이 곧 위계가 되어버린다. 이는 조직의 발전에 오히려 저해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은 다양한 역할 없인 지탱될 수도, 실행될 수도 없다. 이 전략에서 활동가는 기획자, 편집자, 작가, 출연자, 사진가, 디자이너, 촬영 전문가, 영상 편집자, 개발자, 장비 엔지니어, 디지털 분석가, 마케팅 전문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 이 모든 역할이 콘텐츠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하다.


한편 이런 능력이 모두 갖춰져야 이 전략이 실행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소규모 팀이라면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최소 인원들만으로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능 중 하나에만이라도 전문성이 있다면 사회운동의 과정, 즉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직무를 수행하고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역할들은 콘텐츠 전략에 따라 규정하되, 각자의 역량에 충분한 자율성을 두고, 프로젝트에 따라 필요한 인원으로 구성하여 다양하게 참여시킬 수 있다.



자기 성장에 대한 요청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은 활동가에게 새로운 관점과 기술 역량을 요청한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SNS 마케팅 전략이 무엇인지,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따위를 잘 알지 못한다. 만약 알더라도 실무적으로 이를 수행하여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기까지 꽤 오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0부터 시작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최초의 자기 성장은 시도일 것 같다. 이런 방식이 옳고 그른지, 실제 가능한지 따져보고 시작해보는 일이다. 그것이 없다면 준비하는 기간만 길어지고, 실전에서의 부딪히는 문제에서도 많이 헤매게 될 것이다. 그다음엔 자신의 역할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겠다. 이런 관점으로 앞으로 이런 능력을 가지고, 이걸 지금 못하지만 어쨌든 배워서 해야겠고, 장기적으로 이런 부분에서 어떤 전문성을 띠어 사회운동에 이런 역할을 해야겠다는 자기 비전을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간과 비용을 쓸 각오도 해야 하고, 향후 본인의 성장과 영향력에 대한 욕심도 있어야 한다.


한편 요청해야 할 것은 그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성장이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결의의 수준 같은 문제에 대한 얘기라기보단, 능력과 기술에 대한 성장에 그 자신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냐는 것이다. 사실 이 고민은 어쩌면 사회운동보다 더 큰 고민일지도 모른다. 본인의 생계나 직업에 연관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떤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되지만, 마음이 우릴 굶주리게 않게 하는 건 아닌 듯하다. 

물론 이 과정은 조직 전체의 집단적 노력 없이 달성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 기여하고 싶은지, 어떻게 드러나고 싶은지, 어떤 걸 얘기하고 싶은지, 어떻게 그걸 해내고 싶은지 정하는 건 결국 개인의 몫이다. 활동가에 있어서 자기 성장의 최종적 목표는 개인 결정해야 되는 부분과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조직은 활동가에게 그 고민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잘 제시하고 있는지, 또 그 활동가의 성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꾸준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순환이 자리 잡으면 개인과 조직 양쪽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인플루언서로서의 활동가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많은 활동가들이 콘텐츠와 연관되는 걸 넘어, 콘텐츠를 통해 오디언스와 직접 만나는 경험으로 이어져야 한다. 단체의 활동가로, 현안의 전문가로, 혹은 정치인으로 나와도 좋고, 그냥 자신의 이야기가 등장하거나 출연자로서 나와도 좋고, 목소리만 나와도 좋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오디언스에게 얼굴을 알리고, 궁금하고 익숙한 존재가 되고, 그들의 활동만큼 그들 스스로가 주목받았으면 한다.


이는 단순히 사회운동 안에서 정치인을 만들어낼 가능성 때문만이 아니다. 모두가 콘텐츠에서 가능성을 얻고, 자신이 그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주목받는 정치인이나 인플루언서로서 성장할 수 있음을 알길 바라기 때문이다. 사실 모두에게 그런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콘텐츠의 역할이기도 하다. 



콘텐츠는 틸팅 포인트, 즉 차별화 요소를 통해 특정한 오디언스 층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런 차별화 요소는 내용의 전문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어조로, 어떤 내용으로, 어떤 수준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오디언스 층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즉, 적당한 방식으로 꾸준히 좋은 콘텐츠를 낼 수 있다면 전문가가 아니어도 그 부분에 대해 얘기할 수 있고, 이를 함께 공감해주고 반응해주는 오디언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 사회운동가가 어디 있냐고들 묻는다. 실제로 많은 활동가들이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열심히 일한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과정은 보이지 않는 활동가의 존재를 수면으로 끄집어내고, 오디언스와 활동가 사이의 거리를 좁혀 사회운동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는 데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한편 보이는 곳에 놓인 활동가들은 묵묵히 헌신하는 미덕을 깨고, 스스로 반짝일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사회운동에 노력해온 모든 이들이 마땅히 그런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직업적 가능성


이 직업적 가능성이란 전업운동가로서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지탱할 재정적 토대와 기술적 역량이 운동을 통해 주어질 수 있냐라는 물음을 포함한다. 모두 알고 있지만 쉽게 흐려지는 문제는, 언제고 모두가 평생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은 수익 모델의 중요성과 기술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잘 팔리는 콘텐츠라는 건 영향력 있는 메시지이면서 곧 좋은 수익으로 연결된다. 좋은 콘텐츠는 기획과 내용을 포함한 기술 역량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직의 측면에서는 사회운동의 성장을 가져오는 힘이, 활동가 개인의 측면에서는 안정적인 수입과 직무 능력을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운동은 활동가의 기여를 통해 성장하는 한편, 개인은 사회운동으로부터 어떤 기여도 얻지 못하는 불균형을 무너뜨린다.


사회운동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어떤 인정도 될 수 없고, 이력이나 포트폴리오로 남을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한때 소모와 후회로 남는 일은 생각보다 잦다. 그런데 이 문제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헌신한 대가라고 인정하고 말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운동의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냐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평생 운동가로 살 수 있는 이들은 얼마 안 된다. 요즘 운동권이라 하면 생활수준은 최저에, 인정은 인정대로 못 받고 욕은 욕대로 먹는다. 원래 그런 건가. 정말 이런 의미에서 시대가 변했다. 운동가를 '직업적'으로 하라고 가르치지만, 실제로 운동가가 '직업'이기 위해서 갖춰져야 할 것이 여전히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직업적 가능성을 만들어가기 위해선 '무엇을 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붙잡아가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이 활동가 개인에게 가져올 수 있는 변화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 모든 부분은 활동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결코 성취될 수 없다. 오히려 대부분은 집단적인 노력, 즉 사회운동의 조직이 변화하고 갖춰나가야 할 것들에 있다. 이 글에서 흐름으로만 그려졌던 내용들을 현실로 연결시키려면 반드시 조직의 변화가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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