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재희 Sep 10. 2019

타코(Taco) - 1부

미국식 타코를 넘어 멕시코 타코의 세계로 

입맛의 발견 – 내가 사랑하게 된 세계의 Comfort Food 기행기 


타코벨과 치폴레로 처음 접한 미국식 타코

미국에서 타코는 어느덧 주류 음식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이미 수많은 타코/멕시칸 음식 전문점들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멕시코 음식점이 아닌 곳의 메뉴에도 점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굳이 타코 전문점에 가지 않더라도, 예컨대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바에 가면 안주로 타코 메뉴 하나 없는 집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다른 음식과의 퓨전으로 영토를 넓히기도 하는데, LA에서 유래된 한국식 타코를 파는 음식점이나 푸드트럭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이쯤 되면 미국에서는 Taco is the new burger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일부 언론에서는 타코의 인기가 최고조라며 Peak Taco라는 말도 쓰는 것을 보았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직 아닌 것 같다 (미국인들에게 치즈버거와 감자튀김 같은 존재는 아직 아니다).


내가 처음부터 타코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유학을 왔던 6년 전에는 한국이나 당시 떠나왔던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도 제대로 만든 타코를 찾아보기가 지금보다 어려웠다. 내가 처음 타코의 세계에 들어온 것은 지금은 동네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치폴레(Chipotle) 체인이었다. 2010년 미국에 출장 왔을 무렵에는 떠오르는 핫한 패스트푸드 체인이었던 치폴레는 2013년 무렵에는 이미 상당히 대중화되어 있었다 (현재는 맥도널드나 서브웨이 같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스테디셀러 프랜차이즈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치폴레 타코에 들어가는 재료는 고기 (보통 구운 닭고기, 소고기 스테이크, 그리고 Carnitas - 양념과 함께 푹 삶아 결대로 찢어낸 돼지고기 - 중 선택), pico de gallo (잘게 썬 토마토 샐러드), 살사, 양상추, 사워크림, 슈레드 치즈(가공 모짜렐라 또는 체다 치즈)다. 이들 재료 중 특히 마지막 세 가지 – 양상추, 사워크림, 슈레드 치즈 – 는 ‘미국식 타코’의 징표와도 같다(*). 미국식 패스트푸드 타코의 원조격인 타코벨 타코에도 양상추와 슈레드 치즈가 들어가는데, 정통 멕시칸 타코와는 좀 다르다. 당시에는 몰랐다.


(*) 최근에 내가 본 어떤 타코 집은 아예 Tacos gringos (‘이방인’ 타코)라는 이름을 붙여 간 소고기에 양상추, 사워크림, 슈레드 치즈를 곁들인 타코벨 스타일의 미국식 타코를 메뉴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미국의 치폴레 (Chipotle) 매장


치폴레 타코의 전형적인 모습. 토마토와 살사 위에 양상추와 사워크림, 슈레드 치즈를 듬뿍 얹어 준다. 과카몰리는 비용 추가


나는 사실 치폴레에서 타코는 거의 먹지 않았다. 치폴레에서는 거의 같은 재료로 Taco, Burrito, bowl을 만들어 파는데 가난한 유학생이던 나는 같은 값이면 밥, 고기, 야채가 들어간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쌀이 들어간 Burrito나 Bowl을 주로 먹었다. 호기심에 Taco도 몇 번 먹어보기는 했으나 밥이 없어서 아무래도 든든한 느낌이 안 들었다. 그리고 타코를 감싸고 있는 flour tortilla (밀가루로 만든 토티야)가 딱히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 별로였다. Burrito를 싸는 토티야의 경우 한번 가열해서 눌러내기 때문인지 뭔가 쫀득쫀득하고 맛있어지는데 타코를 싸는 토티야는 쫀득하지도 않고 퍽퍽했으며 맛도 그냥 그랬다. 이때까지는 내가 타코 마니아가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치폴레의 음식은 가성비가 좋은 편이었던 데다가 당시 나에게는 미국식 타코가 새롭기도 하고 입맛에도 맞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치폴레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멕시코 타코에 눈을 뜨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의 치폴레로부터 한 50미터 떨어진 곳에 Felipe’s라는 멕시코 타코 전문점이 꽤 큰 규모로 열었다. 사실 이 가게는 어떤 버거 가게의 한쪽 구석에서 셋방살이하듯 들어가서 장사를 하다가 입소문을 타고 매출이 늘자 독자 출점을 한 것이었다. 거기서 햄버거를 사 먹을 때 옆 코너가 더 북적북적하던 것은 보았는데 이렇게 크게 차려 독립했다니 흥미가 생겨서 가 보았다. 이곳의 메뉴는 더욱 다양했다. 똑같이 돼지고기이지만 Carnitas 외에도 Al pastor (돼지고기를 시나몬을 넣고 볶아 파인애플을 곁들인 것)가 있었다. Al pastor는 사실 멕시칸 타코의 기본 메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나에게는 새로웠다. 그리고 이 곳에서는 주문 시에 Chipotle보다 두 가지 질문을 더 했다. “Corn or flour (옥수수 토티야 아니면 밀가루 토티야)” 그리고 “American style or Mexican style (미국 스타일 아니면 멕시코 스타일)?”


옥수수와 밀가루 토티야 중 어느 것이 좀 더 정통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래도 옥수수지’라고 해서 Corn tortilla를 선택했다. 그리고 호기심에 Mexican style!이라고 했더니 사워크림 없이 몇 가지 다른 토핑을 얹어 주었다. 실랜트로 (고수풀)와 Queso (멕시코 치즈)가 눈에 띄었다. Queso는 스페인어로 '치즈'라는 뜻이지만 미국식 슈레드 치즈와는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 달랐다. 좀 더 수제 치즈 같은 느낌이 났다 (아마도 Cotija 치즈 - 멕시코 치즈의 한 종류 - 였던 것 같다).


처음 접한 Al Pastor 타코의 Mexican Style 버전은 대략 이런 비주얼이었다.


그렇게 서빙된 타코는 일단 예뻤다. 내용물을 토티야 위에 무심한 듯 살짝 올려서 그대로 내놨는데 갖가지 재료의 색깔이 화려하게 조화되어 식욕을 자극했다. 한 입 베어 무니 조금 낯선 맛이었는데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맛있었다. 특히 Al pastor는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약간 제육볶음 느낌이 나기도 하면서 시나몬 향과 파인애플의 상큼함이 조화가 잘 된 맛이었다. 실랜트로는 한국에서는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중국에 살면서 이미 익숙해져 있던 터라 향긋하고 좋았다. 이때부터 나는 타코가 Burrito보다 맛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타코는 일반적으로 한 식사에 3개인데, 세 가지 다른 맛으로 구성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맛으로만 끝나는 Burrito에 비해 좀 더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예컨대 피쉬 타코와 Al pastor, Carne Asada (소고기 스테이크)를 섞으면 가벼운 생선 튀김으로 시작해 소고기, 돼지고기를 모두 즐길 수 있어 식사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Corn tortilla를 철판에 한번 지져서 사용했는데 전에 먹었던 Flour tortilla보다 맛있었다. 일주일에 치폴레 보울을 최소 두세 번은 먹었던 나는 이제 점점 Felipe’s에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다.


뉴욕뉴욕

중국 상해에 있을 때 어디 지방 음식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현지에 가서 먹어보고는 실망한 적이 많았다. 왜냐면 어디 지방 음식이든 맛있는 집은 이미 상해에 있기 때문이다. 돈이 몰리는 곳이 대도시이기 때문에 지방에서 음식 잘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대도시에 와 있다. 한국도 서울에 맛집이 많다. 미국 동부에서는 아무래도 뉴욕이다.


뉴욕에서 잠시 일하던 시절, 첼시 마켓을 구경하면서 어디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이윽고 타코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3-4명의 멕시코 아주머니들이 노란 반죽 덩어리를 가지고 눈 앞에서 직접 토티야를 빚어내고 있었다. 아마도 멕시코 노란 옥수수 (Maiz Amarillo)로 만드는 것이리라. 흡사 한국이나 중국의 유명 만두집에서 오픈 키친을 통해 만두피 빚는 과정부터 보여주는 것과 유사했다. 나는 그때까지 직접 만든 토티야로 만든 타코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가 되었다. 보통 얇은 토티야를 쓰는 곳은 내용물을 지탱하기 위해 토티야 두 장을 겹쳐 깔아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노랗고 두꺼운 토티야 한 장에 내용물을 담아 주었다. 한 입 베어 무니 고소한 옥수수 맛이 확 느껴졌다. 오! 토티야가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는 거구나. 잘 구워진 고기 맛이 고소한 토티야 맛과 어울려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멕시코 전통 음료도 함께 팔았는데 내 입맛에는 Horchata가 잘 맞았다. 막걸리 같은 색깔에 크림 맛과 시나몬 향이 나는, 달짝지근해 맛있는 음료였다. 타코의 강렬한 맛과 궁합이 잘 맞았다.


현장에서 직접 만든 수제 토티야의 고소한 맛. 토핑도 완벽했다. 
수정과와 비슷한 느낌의 Jamaica 그리고 쌀음료+시나몬 맛인 Horchata 등 멕시코 전통음료를 통에 담아 판다.


어느 날은 맨해튼보다 더욱 합한 것으로 알려진 브루클린 쪽으로 넘어갔다. 걷다 보니 길가에 타코 푸드 트럭이 하나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멕시코에서 건너온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온통 스페인어로만 되어 있는 메뉴를 가지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음식이 Authentic 할 거라는 아주 좋은 싸인이다. 눈앞에서 열심히 만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타코를 입에 넣자 음! 감탄사가 나왔다. 아저씨의 비주얼만큼이나 정통 멕시코의 느낌이 물씬 나는 맛있는 타코였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사실 어떤 음식이 아무리 나에게 낯설다고 하더라고 일단 먹어보면 이 음식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요리사가 요리를 좀 제대로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대략 알 수 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이미 타코 꽤나 먹던 사람이라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뇨르, 웰컴 투 아메리카! 당신이 어떤 경로로 미국에 넘어왔든 간에 여기서 이렇게 타코만 만들어도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소. 


뉴욕을 떠나 다시 시골 동네로 돌아오니 더 이상 이런 타코를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커졌다. 물론 내 옆에는 여전히 듬직한 Felipe’s가 있었다. 그러나 맛있는 타코의 세계에 한번 눈을 뜬 나는 이제 더 이상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맛있는 타코를 계속 찾고, 계속 먹어야 했다.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타코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