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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Apr 02. 2020

미국 사는 한국인의 코로나 관련 잡담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각들

현재 미국에 살고 예전에 중국에 살았던 한국인으로서,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종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서로 전혀 다른 지점들이다. 


1. 먼저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 표현에 대한 반응이다. 한국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면 통쾌하다는 반응이 상당히 많았다. 이는 본질적으로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타자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생각을 거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한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저들은 중국 사람이니까. 그에 더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직접 쟁취한 깨어 있는 국민인데 반해 저들은 자기 국익(당익?)을 위해서는 국민의 자유 탄압과 언론 통제, 공작을 무자비하게 전개하는 시진핑 독재 정부에 저항하지 않는 동조자’라는 생각도 조금은 깔려 있다. 그런 중국에 최근 몇 년간 미세먼지, 사드 경제보복 등 좋지 않은 기억들이 많았는데 이젠 그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반중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런 와중에 우리 정부는 노골적인 친중 정책으로 중국의 심기를 아주 요만큼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보는 입장에서 심기가 불편한데 미국 대통령이 저렇게 대놓고 ‘중국 바이러스’라며 공개적으로 중국의 책임을 물으니 이 어찌 통쾌하지 아니한가.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 또는 한국계 미국인들은 이 발언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한다. 며칠 전 한국계 미국인 배우가 트럼프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트럼프의 발언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실제로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신변 안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중국인들, 정확히는 중국계 미국인들을 타자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연대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한국계든 중국계든 베트남계든, 미국에서는 다 같이 ‘Asian American’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어느 정도 그렇게 인식하고 (미국 땅에서 비슷한 외모와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차별과 편견에 맞서 살아온 동지로), 타자들에게도 그렇게 인식된다 (각기 다른 아시아인들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 따라서 트럼프의 발언은 중국을 때려 내게 통쾌한 발언이 아닌 나를 때리는 백인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자의 발언으로 들리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여전히 ‘자유세계의 리더’인 미국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공산당 (실제로는 공산주의와 거리가 먼 권위주의 시장경제 체제) 국가 자체는 완전히 타자화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30년을 산 한국인이고, 지금보다는 좀 더 실용적이고 온건하던 시기의 중국에 살며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전자에 좀 더 직접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만약 미국에 계속 살게 된다면, 앞으로 10년 후는 어떨까. 내 아이들은 미국에서 소수인종으로 살아가며 아마도 후자의 논리에 더욱 공감하게 될 것이고 그쯤 되면 나도 미국 거주 기간이 길어져서 내가 어느 쪽에 우선적으로 공감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변함없이 한국 국적자인 한국인이겠지만 정서적으로는 교포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이제 미국에 산지 7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는데 앞으로 10년 더 산다면 거의 나를 이민 1세대 교포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토종 한국인인 내가 교포라니, 낯설다. 유남생?... 과거에 해외 근무, 해외 거주를 꿈꿀 때에는 내게 이런 식의 정체성 혼란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고 확고하던 나의 정체성과 관점이라는 것이 실은 어디에 발 붙이고 사느냐에 따라 쉽게 변하고 영향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 중국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오랜만에 메시지가 왔다. ‘미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난리라는데 걱정되네요, 조심하세요.’ 걱정해주는 메시지라서 물론 고마웠지만, 뭔가 조금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아마도 바이러스의 시작점이었던 중국에 사는 중국인이 미국에 사는 한국인에게 코로나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 왠지 조금 어색하게 들렸던 것 같다. 이 지인은 상해에 살고 있는데, 상황을 물어보니 이제 상해는 괜찮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다만 해외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걸려서 들어오는 바람에 다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속으로 ‘중국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정보 전달과 통계가 투명하지 못한 곳에서 벌써 그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두 가지 대답을 했다. 먼저 ‘미국이 요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뉴욕이나 서부에서는 좀 더 심각한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현재 집과 집 사이가 30m 이상 떨어져 있고, 가끔 사슴과 여우도 출몰하는 버지니아 교외에서 재택근무 중이다)’.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한국도 현재 상당 부분 진정세인데 해외에서 걸려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라고 대답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대화를 마치고 가만 곱씹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중국 지인의 미국 걱정/상해 이야기나 내가 대답한 미국과 한국 상황 이야기는 결국 모두 ‘내 쪽은 괜찮은데 너(남들)야말로 괜찮겠니?”라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자기 상황은 실제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고 남의 상황은 실제보다 더 안 좋게 생각하며, 그것에 대한 증거를 계속 찾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의 정신건강에 좋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평면적, 자극적인 언론 보도가 이런 심리를 조성하는 데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소식은 언론뿐 아니라 나 스스로의 감각과 경험, 그리고 주변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내가 살지 않는 다른 곳에 대한 소식은 언론을 통해 주로 접하게 되는데 과거 ‘해외토픽’ 같은 코너에서 볼 수 있듯이 바깥세상에 대한 뉴스는 본질적으로 자극적이고 단면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 xx과 관련한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라는 강 건너 불구경 뉴스를 보면 그 나라 전체가 그런 상황인 것 같은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전쟁의 위험이 있는 분쟁 지역(한국)에 사는 것이 불안하지 않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소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한반도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휴전 중이고, 북한이 심심찮게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것도 사실이니 이 질문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현실 인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주관적으로 느끼는 온도차는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전쟁 걱정은 1도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웬 호들갑?’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이다 (진실은 아마도, 둘 다이지 않을까) 오늘날처럼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한 세계에서도 여전히 듣고 보는 세계와 직접 살아가는 현장 사이의 괴리는 크다.


3. 회사 팀 회의에서 (물론 화상 회의)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유럽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중국은 이제 오히려 상황이 괜찮은 것 같다는 말이 나오자 중국인 직원 한 명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중국의 바이러스 대처가 세계에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할말하않’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국이 기술적으로 매우 진보했고 공중보건 수준도 상당 부분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진실을 말했다고 잡아서 감금하고 불만을 제기한 환자를 데려다 기어이 시진핑 주석 최고예요! 같은 영상을 찍게 만드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통계 수치를 조작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중국의 대처가 롤 모델이라니... 아마 미국인 유럽인 동료들도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그런데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와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미국과 유럽이 중국에 대해 그런 식으로 코웃음 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언론의 자유, 노동자의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중요시하는 이들 국가들에서 코로나와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이들 국가 시스템의 약점을 상당 부분 드러냈다. 공중보건체계의 무력함, 중앙/지방정부 간 논쟁 등 신속하고 일관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는 정치체제, 개인의 자유를 더욱 중시하며 정부 권고에 성실히 따르지 않는 국민들, 사재기로 대표되는 시민의식의 파괴, 그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 이들이 중요시하는 사회적 가치와 전염병 대처에서의 무력함 간의 상관관계가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토론해 보아야 하겠지만 표면적으로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그 가치들 - 언론의 자유, 개인의 존중, 정책과 집행의 투명함을 선호하고 지지하는 나로서는 세계적으로 이러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후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언제쯤 진정될지 모르겠지만, 그 여파가 클수록 분명 전 세계인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큰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거시적으로는 각국 경제질서, 산업지도는 물론 정치체제와 문화 인식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영향이 클 것이라는 전망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각자 강조하는 바는 또 다르다. 일각에서는 이미 진행 중이던 걱정스러운 트렌드 - 사람들의 물리적 접촉과 소통의 감소, 정보기술을 이용한 개인정보 노출 및 감시의 일상화, 경제 불황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붕괴와 경제 양극화의 심화 - 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반면 경제의 V자형 회복, 그리고 흑사병 이후의 유럽처럼 인간적 가치의 증진과 경제 문화의 부흥을 점치는 낙관론도 있다. 후자는 아무래도 좀 나이브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차피 불확실하다면 좋은 쪽을 희망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쪼록 이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 펼쳐질 세계가 생각보다 좋은 것이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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