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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Nov 22. 2023

수락산을 그대로

(1) 포스트-(       )

기후대재앙이 일어난 지 6개월 후 2113년 5월, 거대한 폭동이 시작되었다. 포스트-기후대재앙 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이 참여한 폭동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예상처럼 우울에 의한 사람들의 자살률도 이런 적이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시간이 흐르자 폭풍우로 흘러들어온 동물의 죽은 몸으로부터 전염병까지 시작되었지만 언론이 마비되었고 피할 곳도 없는 탓에 우후죽순 전염되어 생을 마감했다.


몇몇 사람들은 생각했다. 어머니가 일부를 남겨둔 건 나머지는 그냥 두어도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끝이 나는 뻔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땅과 단절된 그들은 어머니의 너그러움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투쟁은 점점 거세어져갔다. 더 이상 ‘평화’ 시위는 선택되지 않았다. 그들은 구르고 부딪히고 달리고 박았다. 책임자를 죽일 기세였기에 우두머리들은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 판이었다.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지구를 돌릴 수 있는 모든 방법 동원하라!’

‘기후재앙을 경고했음에도 소홀히 한 기업과 정부, 책임져라!’


책임이 큰 자들은 늦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두머리들은 바지런히 여러 대응책을 내놓았다. 사실 정부가 내놓는 방안은 이제 사람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공존이 무엇인지는 풀에게 물어야 하는 것인데 그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추는 방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뿌리를 노래하고 흙 냄새를 맡는 방법을 몰랐다. 우두머리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인류를 돌이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두려워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풀고 싶어 더 이상 아무에게도 먹혀들지 않은 수법을 또 써버린 것뿐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왜인지 아기들을 지구로 초대했다.


기후대재앙 이후에 태어난, 대재앙과 그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포스트-기후대재앙 세대’, 세대를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시간이 흘러 첫 포스트-기후대재앙 세대가 거의 십 대가 다 되었을 무렵, 정부는 갑작스럽게 이런 제목의 공익광고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무너진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 드립니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엊그제 착공됐다. ‘기어코’ 해버렸구나, 생각했던 것이 출근길 버스 뉴스에 ‘드디어’라고 나오길래 슬프고 화가 났다.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 비인간동물들이 식물들이 땅이 물이 있다.

공권력과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너를 죽이는 게 나를 죽이는 것인지 모르고 죽인다.

개발도, 재개발도, 반가운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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