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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Mar 05. 2024

벌목, 벌목, 관계, 잠, 들숨.

도와주세요

토요일.

 커튼봉이 그에겐 고민이 많다고 했다. 나는 여덟 개냐고 물었다. 여덟은 거기에서 나온 숫자가 아니었다고, 고민의 개수는 안 세어봤지만 그것보단 많다고 그랬다. 모양은 고민과 고민 끝에 얻은 결심을 말해줬다. 후드티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머리칼을 질끈 묶었다.  


일요일.

 새학기 전날 교사에게 흔한 불안증이 도진 나는 오뚝이처럼 앞 뒤로 몸을 흔들어대다가 늘어뜨렸다가 했다. 꼬여버린 관계와 다가오는 수십의 관계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태엽은 도르륵도르륵굴러갔고 컨베이어가 다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점이 같지만 수단과 경유지가 다른 동료들의 고민을 들었고, 들었기에 얼마의 의무감을 얻었다. 뒤돌아서니 와중에  기다리다가 지친 사람이 있었고 공감을 꺼내라 했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감정과 머릿속에 각진 스모그가 끼어서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었다. 접시 하나를 떨어뜨리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같아 잠에 들 때까지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린다. 은 나를 대강, 대강, 대강, 왔느냐 하고 허락한다.


이 모든 대화에 배경 음악이 깔리듯,

아파트 수목 벌목을 하려 합니다.

미관에 방해가 됩니다.

외벽 공사에 많은 불편이 있습니다.

문자 투표에 참여하기 바랍니다.


아파트 단지 내의 나무를 벌목하고야 말겠다는 안내방송이 저녁 7시 반만 되면 흘러나온다. 시작음이 나오면 방송을 피해 - 동요을 피해 - 방으로 도망친다.


얼마 전까지는 자유롭던 온갖 나무에 빨간 테이프가 붙어 있다. 꿈이 아니다.

까치 집이 두 채나 있는 나무에도 벌목을 하겠다고 테이프가 감겨있다. 그 나무가 베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함께 베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껴안고 버틸까, 올라갈까, 끊어버릴까. 인디언들은 나무를 지키기 위해 나무를 둘러 안고 버텼다. 끝까지 나겠지만 끝끝내 당신이 되고자 하는 것. 끝까지 인간이겠지만 끝끝내 나무의 곁을 지키는 것. 효율적인 외벽공사와 미관보다 나무를 살리는 것이 옳다고 진심으로 믿으며 함께 버텨줄 간이 더 많아지기를 원한다.



화요일.

 새로 만난 아홉 살 사람들 스물 네 명을 더 잘 알고자 설문을 했다. 9번 질문은 요즘 고민이나 걱정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다가가서 어떤 질문이 있는지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

 

"이런 거 없는데, 안 써도 돼요?"

파하!



 어쩌면 나는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음지에서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 몸은 수렁에 빠져 있어도 얼굴 정도는 햇빛을 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정성이라는 권력이 부끄러운 직장이지만, 이게 나를 살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나는 들숨을 쉬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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