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베었던 공간. 돼지는 사과씨를 씹었을 때 독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씨를 열심히 발랐던 공간. 엽서를 꾹꾹 눌러쓰고 주소로 삼았던 공간.
그 땅은 처음으로 내가 나보다 강하고 큰 동물을 마주한 곳이다. 그런 동물에게 경계를 당해 공격을 받은 곳이다. 동물로서 동물을 대하는 감각을 되찾은 뒤바뀜의 공간이다. 조심스러워야 함께할 수 있으니까 그의 언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고 내 의견을 전해보려고 노력했던 곳이다.
새벽과 잔디가 좋아하는 여러 풀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그저 풀이었던 존재들이 이름을 가지게 된 곳이고, 야외에서 사계절을 충분히 느끼면서 여름과 겨울의 길고 고됨과 함께 봄가을의 반가움을 비로소 인정한 곳이다.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삽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게의 물통.
땀을 흘리며 돌봄의 뿌듯함과 피로감을 감각하게 된 곳. 흙과 똥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더러운 것은 오히려 불편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깔끔하게 가리는 것임을 알게해준 곳.
그곳에서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두 시간이 채 안 되었다. 돼지동물과 인간동물은 그 땅에서 함께 동물이었지만 금세 나는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 '비동물-인간'이 되고 새벽과 잔디는 울타리 안에 갇힌 채로 남는다. 건물 안으로 문명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갈 때, 끝없이 아래로 낙하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