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미래만 생각하다가 집에 혼자 있으면 과거를 생각한다. 얼마 전에 친구가 해의 사진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것을 봤다.
해는 금발머리를 하고 머리를 땋고 운동장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탔다. 엄청 화사했다. 엄청 예뻤다. 공부방 어린이들도 해의 밝은 에너지를 좋아했다. 공부방의 인기스타였다. 어린이들에게도 사랑만 줬다.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빛이 났다.
그러면서도 되게 강했다. 힘든 아르바이트를 잔뜩 골라서 하는데도 나를 만나면 웃었다.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했다. 해는 나한테 가끔 “언니~~ㅠㅠ” 하면서 올 때는 있었지만 그럴 때 외에는 거의 웃는 모습만 보여줬다.
먼저 다가가는 편이 아닌 나에게 선뜻 애정 표현을 해 주는 사랑이 흐르는 사람이었다. 해는 그냥 모두에게 그랬다. 아주 내향인인 나와 아주 외향인인 너, 우린 다른 결이었지만 해의 존재에 여러 고비가 녹았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랬던 해인지라 물어보고 싶다. 정말 너가 죽음을 선택한 게 맞는지, 왜 그랬는지, 어떤 말 못 할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소식을 듣고 고작 몇 주 전에 만났던 너가 표정으로, 손짓으로, 말로 어떤 신호를 보내지는 않았을까 수십 번을 곱씹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우연히 걷다 마주쳤던, 서로 부둥켜안았던 저녁이 캄캄했지만 어제처럼 생생하다. 학교를 나가려던 너는 나를 학교 2층까지 데려다주었다. 서로 안부를 물었다. 그때 너는 알바를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카페라도 데려갈 걸 그랬다. 맛있는 거라도 사주면서 얘기를 들을 걸 그랬다. 정말, 정말.
임용고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연락을 받고도 제주도로, 너의 장례식으로 가지 않았는데, 그땐 시험을 원망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냥 회피였던 것 같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서, 너의 그 눈부시던 모습과 장례식의 끊긴 간극이 있었지만 그걸 잇고 싶지 않아서 시험 준비를 구실로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벌써 거의 3년 전이다.
누가 그랬다. 당시에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나중에 언젠가는 그 감정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고. 그래서 어차피 겪어야 하는 감정이라면 당시에 겪는 것이 좋다고. 재작년에 엄마를 잃은 학생에게 전해줬던 말이지만 막상 나는 그걸 어떻게 하는지 아직 감도 잡지 못하겠다. 마음에 너가 계속 있다. 그리움이라기에는 슬픔과 너무 유사하고, 슬픔이라기엔 아직 너가 손에 잡힐 것 같다. 보고 싶다기엔 죽음은 다시 볼 수 없는 거라고 한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너만 생각하면 진심으로 하늘나라가 진짜이길 바란다. 그 곳은 더 행복하고 안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