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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석사 Dec 23. 2020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출산할 때 너무 아프니까 둘째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분만실에 또 누워있었다니까.” 


 아이를 낳고 들어간 산후조리원에서 나름 출산 경력자들인 경산모들이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다. 다른 산모들이 모두 깔깔거리며 공감한다. 초산이었던 나에게 경산모들의 노하우는 꿀팁의 집약체였다.

 그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그중 빠지지 않는 이야기는 둘째에 대한 것이었다.


 임신은 10개월간의 보이지 않는 호르몬과의 싸움이요, 출산은 엄청난 진통을 동반하는 행위인데 이 과정을 두 번이나 해낸 경산모들이 대단해 보였다. 첫째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낳는다고 하지만 둘째는 고통을 이미 충분히 아는 상태에서 낳는 것일 테니까. 


 나 역시 아이를 낳던 날을 기억한다. 분만실의 일 인용 침대에 있는 쇠창살 같은 봉을 붙잡고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며 생각했었다. 다시는 이 침대에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그때의 내 다짐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삼 년을 조금 넘긴 아직은 분만실 침대에 눕는 일은 없었다. 사실 그때의 그 다짐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 학교에 다니는 내 상황에서 둘째까지 감당하기에는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에 추가적인 자녀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이 더 컸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의 그 고통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둘째를 낳았더라는 조리원 동기들의 말처럼 삼 년쯤 지나니 아이를 낳았을 때 느꼈던 고통도 육아를 하면서 겪었던 힘듦도 마치 바람과 파도에 돌이 깎여나가듯 시간에 깎여 기억에서 많이 사라졌다. 


 우리 부부를 힘들게 했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어땠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아이가 아파서 밤새 간호했던 날들도, 이앓이 시기만 되면 우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했던 날들도 억지로 기억을 해보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웃음소리, 아이가 처음 걷던 날, 함께 여행 갔던 날들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더 많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행복한 기억이 많이 난다.


 아이가 자랄수록 힘든 부분은 다르다고 하지만 크면 클수록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은 많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들고 다니는 짐의 양부터가 다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여분의 기저귀, 젖병, 분유, 이유식 등 짧은 시간을 다니더라도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한 짐 가득 챙겨 들고 다녀야 했다면 아이가 일반식을 먹기 시작하고 기저귀를 떼게 되면 엄마 아빠의 양손도 함께 가벼워진다. 이렇다 보니 육체적으로는 조금 편해진 현실과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이 만나 둘째, 셋째까지도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키우다가 문득 나의 인생에서 내가 멈춰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점점 사라져 버리고 결과적으로 멈춰있는 커리어만 눈에 보이니 그동안 무엇을 한 건지 자괴감만 남았다.


 아이는 성장했지만, 나의 커리어는 성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힘듦과 고통의 집약체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아이는 부모의 에너지를 먹고 자란다고.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단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조금은 키우기 수월해진) 아이는 그냥 알아서 혼자 자란 것이 아닌 몇 년간의 고통의 산물인 셈이다. 이력서에 쓸 수만 있다면 몇 년간의 육아 경력은 몇백 페이지로도 서술하지 못할 정도니까 말이다.



 예전 어떤 글에서 ‘워킹맘’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도 가정에서 일하는 엄마도 육아를 하는 엄마도 모두 일을 하는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부심을 갖자.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온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위대하고 대단한 존재들이다. 이 세상 모든 엄마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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