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직장에 복직을 하면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고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지만 용감하게 물리치고 내린 결단이었다. 남자는 일을 쉬면 안 돼, 남자가 어떻게 애를 봐… 별의별 얘기를 다 들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용감하게 결정은 했지만 나조차도 남편이 잘 해낼 수 있을까? 약간의 의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할 수 있겠어? 오빠가 다호 밥도 세끼 다 해줘야 해.” 그랬더니 남편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해야지." 대답을 해왔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과 상황에 모든 걸 맡기고, 갑자기 출근하던 남편이 집에서 출근하는 나를 배웅하는 입장이 되었다.
남편은 내 생각보다 육아를 즐기며 잘해 내주고 있고, 아이도 변화에 잘 적응해 주었다.
지금은 아이가 남편 껌딱지가 되어 약간 서운한 점을 빼고는 모든 면에서 참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나의 휴직 이후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이는 나만 찾아대고 집안일도 더 익숙한 내 차지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육아가 쉬워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의 육아와 집안일의 관여도는 이제 평등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자기에게 훨씬 치우쳐 있다고 발끈할지도)
초반의 불안하고 힘든 시기가 지나고 아이가 커가면서 우리의 삶에도 루틴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있다.
삶에서 이렇게 잠깐의 틈이 생겨나면 그 틈을 비집고 불안이라는 게 싹트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그 틈으로 밖을 가만히 보는 유형의 사람이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할 것 같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안달인 나와는 달리 남편에겐 그런 조급함이 없다.
무언가 이루려기보다 그냥 재미있어서, 단순히 즐거우려고 무언가를 하곤 한다.
아이를 재우고 찾아온 휴식시간, 남편은 갑자기 털실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익숙하게 목도리를 짜기 시작했고, 나의 동공엔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육아휴직을 오래 해서 너무 여성성이 강해졌나? 왜 목도 릴 왜??? 남편이??? 눈이 이만큼 커져서는
"왜? 목도리를 왜 짜???" 놀라서 묻는 나에게 남편은 또 덤덤하게 대답했다.
"다호 목도리 짜주려고."
이 전까지 실크스크린, 그림 그리기, 필름 카메라, 요리, 각종 게임 어떤 걸 해도 놀라지 않았던 나였지만 목도리 뜨는 남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남편은 다음날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며 까만 양복을 챙기면서 생각이 났다는 듯이 장례식장 가는 지하철 안에서 목도리 짜면 되겠다며 좋아했다.
남편의 행복한 얼굴 너머 까만 양복을 입고 지하철에서 빨간 목도리를 짜는 모습을 미리 그려보며 급격히 시공간이 분리되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 없는 광경을 내 남편이 만들어내겠구나.
"오빠... 아... 양복 입고... 아닌 거 같아…"
남편은 무슨 상관이냐며 빨간 털실 뭉치를 양복과 함께 챙겨두었다.
목적 없이 그저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일엔 동력이 잘 생기지 않는 나에 반해 남편은 언제나 수많은 취미들 사이를 부유해 왔다. 그런데 이번엔 목도리 짜기라니.
한 집에 산지 이제 5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가끔은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때가 있다.
매번 놀랍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순간순간 이유 없이 조급 해지는 나에게 ‘어차피 태어난 거 그냥 재밌게 사는 것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꽃이 예쁜 계절엔 화분을 가꾸고
필름 카메라로 아이의 모습을 담고
커피가 맛있는 카페에 들러 아이와 간식을 먹고
다음 여행지를 찾아 지구 곳곳을 기웃거리는
남편의 모습에
나는 앞만 보고 달리다가 구름을 보기도 하고,
발밑 조약돌을 주워 들 틈을 얻는다.
아이가 잠든 고요한 시간
남편은 목도리를 짜고, 나는 그걸 가만히 바라본다.
공기마저 깜빡 잠들 것 같은 이 시간이 느리게 더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육아도 느릿느릿 즐기는 남편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염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