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카카오, 오늘 미세먼지는?"
요즘 일어나서 제일 먼저 AI스피커에게 묻는 말이다.
그러면 AI스피커는 진짜 걱정하는 말투로 "마스크 꼭 챙겨요."라 말해준다.
마스크를 쓰고 무심코 핸드폰에 얼굴을 들이대면 얼굴을 인식하지 못해 매번 비밀번호를 누르는 게 매우 귀찮아 한국만의 특화된 기능으로 마스크 쓴 얼굴도 인식하도록 개발해야 하는것 아닐까 잠시 생각하다 것도 나라 망신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작년 겨울 아이는 한참 더 어렸고, 연일 혹한의 강추위와 최악으로 치닫는 미세먼지 덕분에 일주일 동안 현관문 문고리를 잡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는 일이 이렇게 소중한 일인지 매일 출근하던 시절엔 왜 미처 몰랐을까. 그때는 밖에 나가기 싫어 뭉그적 대기 일쑤였는데, 퇴근 해 들어오는 남편에게서 나는 밖깥의 냄새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나가지 못하고 매일같이 울어대는 아이와 집에 꼼짝없이 갇혀있다 보니 반 미친 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어른들은 요즘 나온 육아용품들을 보며 애 키우기 참 좋아진 세상이라고 혀를 차지만, 집안 어른이나 이웃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고 폭염에, 한파에, 미세먼지에 외출마저 제한받는 리얼 독박 육아의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육아 용품들이라도 좋아지고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옛날엔 기저귀, 젖병 등이 육아용품이었다면 요즘 시대의 육아용품은 공기청정기, 가습기, 에어컨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우리 집에는 거대한 육아용품이 하나 더 늘었는데, 샤오미에서 나온 외부 공기를 공기청정기가 빨아들여 내부에 틀어주는 환기장치다. 24시간 집에서 생활할 때가 많은 아이에게 환기를 자주 못해주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아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설치를 감행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너무 유난 떠는 것 아닌가 고민했지만, 막상 설치하고 나니 만족도는 대단했다. 미세먼지가 최악으로 치달아도 신선한 바깥공기를 마시는 상쾌함은 정말 짜릿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삶의 만족도는 크게 올라간다는 것 이 놀랍고도 슬펐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북유럽의 대학생 3명에게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여주고 인터뷰를 한 콘텐츠에서 굉장히 인상 깊은 대답을 들었다.
자신의 미래가 걱정되냐는 질문에 3명 모두 취업 기회는 많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걱정되는 건 자신들의 미래가 아니라 지구의 미래라고 말했다.
내 앞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 고작 5년 10년 후 나의 미래가 아니라 50년 100년 후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려면, 일단 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어야 하는구나... 깨달았다.
지금 내가 사는 이 땅은 지구의 재앙을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이지만 고작 몇 년 후 나의 미래, 내 자식의 미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 내 집값, 손바닥만 한 내 땅의 안위만을 걱정하느라 정작 우리 모두가 살아남아야 할 지구의 운명은 나 몰라라 하는 비루한 시야를 가진 국민들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아팠다.
나 또한 매일 미세먼지를 맞딱들이지만. 막상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를 10명이 한 방에 우글거리는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문제고, 어린이집 하원 시간부터 부모의 퇴근시간까지 아이를 돌봐줄 낯선 사람을 찾아 헤매야 하는 눈앞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지금의 환경은 어린아이들의 엄마들이 나서고, 청소년들이 나서고, 그들의 부모들이 나서서 대책을 세우고,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의 엄마들은 매일 극기훈련 같은 현실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청소년들은 바로 내일의 시험에 치여 마스크를 챙겨 쓸 정신도 없다.
내 아이의 대학, 남들위에 군림하는 직업을 갖게 하기 이전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아름답게 사는 환경을 지키는 게 먼저 아닐까. 그 미래를 만들어 줄 지구의 안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나의 아이가 계절의 아름다움을 맘껏 누리며 컸으면 좋겠다.
차갑고 딱딱한 그 땅을 기어이 부수고 나오는 봄의 힘에 놀라워하고,
여름의 강인한 햇살을 생동하는 온갖 생명의 소리를 온몸으로 부딪혀보길,
가을의 빛깔을 기억에 차곡차곡 담아두길
매년 겨울, 첫눈에 첫 발자국 남기는 일을 잊지 않기를
또다시 찾아올 새로운 계절들을 기대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한 치 앞만을 쫓으며 살기보다는
지구의 100년 후를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하고 생각한다.